조사위에 따르면 대표적인 친일파 백작 이완용은 15만엔을 받았다. 당시 1엔의 가치는 요즘 돈으로 환산하면 약 2만원이다. 이완용은 나라를 팔고 30억원을 받은 셈이다.
이완용보다 공로가 덜한 이지용은 10만엔(20억원)을 챙겼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 연봉이 634엔(1268만원)이었으므로 200배에 육박하는 돈을 은사금으로 받은 것이다.
자작 중에는 일제를 도운 공이 큰 송병준과 고영희가 10만엔(20억원)씩 지급받았다. 두 사람은 을사조약과 정미칠조약을 주도했다. 민영휘 권중형 김성근 윤덕영 등은 5만엔(10억원)씩을, 박제순은 3만엔(6억원)을 받았다.
왕족 출신으로 후작이 된 이재각과 이재완은 16만8000엔(33억6000만원)씩 받았다. 조선귀족회 회장으로 중추원 부의장까지 오른 박영효는 28만엔(56억원)을 타냈다. 순종의 장인인 후작 윤택영도 50만4000엔(100억8000만원)을 받았다.
가장 많은 은사금을 받은 사람은 이재면이었다. 그는 궁내부 대신으로 한일병합조약 체결에 참가한 대가로 무려 83만엔(166억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의 시조신을 모신다는 신궁봉경회의 총재로 활동한 이준용은 16만3000엔(32억6000만원)을 받았다. 귀족은 아니지만 한일병합을 도운 이용구도 10만엔(20억원)의 은사금을 챙겼다. 가장 낮은 작위인 남작도 2만5000엔(5억원) 정도를 받았다.
일제하 고위 관료나 중추원 고문의 월급과 수당도 일반인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1920년 기준으로 고급 관료를 의미하는 주임관 1급은 3100∼4500엔, 2급은 2700∼4100엔, 3급은 2400∼3800엔을 월급으로 받았다. 군수급인 8급의 월급은 1200∼2000엔을 받았다.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월급으로 2400만∼9000만원을 지급받은 것이다. 중추원은 부의장, 고문, 찬의 등 급수에 따라 400∼2000엔씩 수당도 지급된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위 관계자는 "친일파 대부분은 일본 정부로부터 직접 하사받은 돈 외에 일제 권력과 유착해 따낸 각종 특혜를 통해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부를 쌓았다"고 말했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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