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짱공 엽게의 열열한 팬이자 단순한 눈팅족이다.
잼있는 글을 읽고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간단한 추천 댓글을 다는 수준이다.
어쩌면 이 게시판과 맞지않는 글을 두 개나 쓰게된 이유는 일부 글에 달린 덧글 때문이었다.
타블로 관련 1인시위 사진에는 ‘정신병자 아냐?’ ‘할짓 없네’ 등의 덧글이 달렸다.
넓게 보면 사회에 만연한 학력위조에 관한 내용이였다. 또 20세 이하 청소년 들에겐 정치인보다 수억배는 영향력 있는 연예인이 학력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고 인기를 얻은 소위 출세를 하였으나 그 학력에 의혹이 있으며 학력의혹 이외에도 상당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학력의혹 자체를 부정하거나 악플러로 매도한다(최진실씨 사건의 영향이 있는 듯 하다.) 이런 반응은 정말 의외였다. 지금 글을 또 쓰는 이유도 비슷하다. 폭행경찰을 내부고발한 경찰이 해임된 사건에 대해서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당처우에 관한 리플이 아니라 ‘고딩이 맞을짓 했으니 폭행당해도 싸다’ ‘그럴만 했겠지’ 등의 상식 이하의, 민주국가에서 상상할수 없는 리플이 쏟아진다.
여기있는 사람들은 경찰을 믿는 것을 넘어 숭배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내가 재미있는 얘기들을 좀 해보려 한다.
그리 오래지 않은 이야기라는 걸 밝히기 위해 떨떠름 하지만 내 신상을 좀 내보여야 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나는 1년을 재수하고 대학을 다니다가 늦은 나이에 입대했다. 현재 나이는 28세로 제대한지는 이제 3년이 되었다. 이 이야기는 물론 일부의 경찰관에 관한 것일수도 있으나 내가 직접 보고 겪은 100% 사실임은 분명하다. 나는 군생활 대부분을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기소중지자(수배자) 검문하는 업무를 했는데 살인자나 *등 중범죄자도 잡히기 때문에(실제로 내 선임이 살인용의자를 잡았었다) 검문을 거부하고 차로 치고 도망가거나 흉기를 휘두를 위험성이 있어서 경찰관이 총기를 소지하고 전경들과 같이 검문하게 되어있다(그당시 실제로 검문을 거부한 범죄자의 차에 치어 사망한 전경들에 관한 팩스가 지속적으로 하달되어 와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검문업무를 지휘하고 전경들을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경찰관이 내가 2년 가까이 군생활 하면서 근무에 참여한 때는 지방청 감찰, 경찰 서장 순시, 본서 청문관 감찰 이렇게 세 번이다 이마저도 미리 알고 정확히 우리지역 감찰 시간에만 근무를 선다. 일수로 따지면 정말 후하게 잡아야 월 2번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럼 감찰의 활동은 어떻게 미리 알까? 서장실의 여직원은 서장의 감찰 스케쥴을 입초소의 전경에게 제공해 주고 이를 토대로 서장탑승 관용차량의 출입을 확인하여 실시간으로 근처 감찰대상 지구대나 검문소로 전파한다. 청문감사관의 감찰도 같다 그런데 3급서의 청문관은 거의 한패라고 보면 돼서 청문관으로서 의미가 없어 보였다. 지방청 감찰의 경우 대략적인 감찰기간은 미리 알고있으며 인근 어느 경찰서에 감찰이 왔었으며 다음으로 그곳에 방문할수 있음으로 조심하라 라는 식의 정보를 인근 경찰서 끼리 공유하기 때문에 눈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감찰이라 다 피해갈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규정과 어긋난 사항이 발각되어도 청문관실이나 지방청의 경찰관 역시 다들 로텐이션으로 보직변경이 되고 지방의 경우 한다리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보통은 구두경고 선에서 넘어간다. 청문관 실에서도 실적을 올려야 하므로 한다리 건너도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이면 실적의 제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경찰 내부에서도 빽이 중요하고 많은 사람들을 알고지낼 필요가 있다.
내가 있던 검문소에는 2명의 경찰관이 2교대로 근무하고 7명의 전경들이 있었는데 경찰관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근무를 하지 않는다. 경찰관이 작성해야할 문서들을 모두 전경들이 맡아 작성하며 검문 근무에는 전혀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총기보관 업무까지 전경들이 맡게된다. 때문에 이는 총기도난이나 총기를 이용한 전의경 자살 또는 타살에까지 악용될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무면허 및 기소중지자 검거를 하면 경찰차를 몰고 100여 미터 운전하여 피의자를 데리고 들어오는게 경찰관의 유일한 임무라면 임무이다. 경찰관이 하는 일이라곤 앉아서 진급시험을 준비하는 것과 스카이라이프 보는 것 정도였다. 검문소 내에서 티비를 보거나 인터넷을 하면서 전화받는 업무도 매우 귀찮아해서 지루하면 2층에 있는 방으로 쉬러가곤 했다. 그러면서 근무일지를 2개 만들어 감찰에 대한 대비를 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해가 안되는게 경찰관 1명의 방과 대원 7명이서 생활하는 방크기가 동일했다. 7명이서 누울 자리가 안나온다. 다행인 것은 검문소내에 근무인력이 무조건 1명은 상주해 있기 때문에 7명이 잘 공간은 필요없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경찰관은 인간적으로 좋은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었는데 고질적 근무태만은 공통적이었다. 그럼에도 꽤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자랑했던게 기억이 난다.
어느 군인이나 그렇듯이 고단한 육체와 가족이나 친구 애인에 대한 그리움 또 자유에 대한 갈망을 잊을수 있는 때는 잘때와 먹을 때 뿐이었다.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먹는 것이 그때 누릴수 있는 최고의 사치였는데 계급이 오르거나 생일, 실적이 좋을 때 자축하기 위해서 부식을 시켜먹곤 했었다. 식비를 아껴서 대거나(검문소 특성상 지급된 식비로 직접 장을봐서 매 끼니 밥을 해 먹었어야 했다.) 후임의 진급이나 생일은 보통 선임이 사주곤 했다. 한 경찰관은 항상 빼앗아 먹고 단 한번도 사준적이 없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한번은 휴가갔다가 복귀하면서 불쌍한 후임들 맛있는것좀 먹인다고 인원수에 맞춰 초밥을 포장해 갔는데 경찰관이 지구대의 친구들에게 전화해서 초밥 있으니까 먹으러 오라고 했던게 기억이 난다.
이제부터 진짜 비리에 대해 말해보겠다.
검문을 하면 가장 많이 예상외로 많이 검거되는 사람이 무면허 운전자이다. 뭐 무면허 운전자가 얼마나 많겠냐 하겠지만 하루에 적게는 한두명에서 많게는 8~9명까지 있던 것 같다. 이 무면허 운전자는 대부분 면허 자체가 없는 사람이 아닌 음주로 인해 정지 또는 취소인 사람들이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되는데 이사람들 중 상당수가 운전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다. 야채장수, 택시기사, 직업상 운전을 해야 하는 사람들... 대부분 울며불며 빌고 선처를 호소한다.
매일봐도 마음이 아프다.
내가 겪은 7명 정도의 경찰관중 한명 정도는 누가 검거되든 공정하게 실제로 처리했고 두명정도는 처리하려 적어도 노력은 했다. 물론 그들도 근무시간에 나가서 검문근무를 제대로 서거나 정상적으로 근무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누가 검거되었을 때 차등을 두고 처리하려 하진 않았다.
여기서 노력은 했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면 일단 검거를 해놓으면 빽이 있는 경우 빽에게 연락을 하고 연결연결되어 전화가 온다. 봐주라는 것이다.
그것이 윗급의 경찰관일 경우 거절하다가도 결국은 받아 들이더라
이정도만 되도 a급 양심을 가진 경찰관이라고 생각해야 하는게 현실이다
그 외의 경찰관들은 굳이 공정하게 처리하려 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봐준다. 기준은 이익이 될 것인가 하는 것과 친분관계. 본서로부터 온 부탁은 거절할 이유가 없다. 내가 풀어주면 부탁한 직원이 빚지는게 되는 것이므로 언젠가 비슷한 부탁을 내가 할 때 유리한 것이다.
또한 해당지역 유지라던가 유지와 친분있는 사람이 검거되었을때는 자연스럽게 인사하고 놔준다. 그러면 당일이나 몇일후에 명함과 음료를 들고 인사하러 온다. 대부분 불쌍하고 힘없는 사람은 잡혀서 울부짖고 돈있고 능력있는 사람은 전화한통에 유유히 빠져나간다. 이게 현실이다.
나는 제대를 하고 결심을 했다. 그리고 먼저 아직 제대하지 않은 후임에게 양해를 구했다 내가 총대매고 찔러볼려는데 혹시 조금 힘들더라도 참아줄수있냐, 못하겠다면 니가 제대하고 하겠다. 다행히 후임도 동의를 해서 지금 쓴 글과 같이 지방청에 제보를 했다. 새벽에 글을 올렸는데 두어시간이 지나고부터 전화통에 불이 났다.
같이 근무한 경찰관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다들 전화를 했다.
후임말로는 감찰이 떠서 한동안 fm으로 근무를 한게 전부였다고 한다. 진술을 요청하면 응할 의사도 있었으나 부패 경찰에 대한 징계도 어떠한 조사도 없이 넘어갔다. 심지어 내가 제보한 지방청에서도 처리에 대해 일절 피드백이 없었다. 얼마후 마지막 후임도 제대를 해서 이후사정은 모르지만 아직도 이런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을 경찰들이 많을꺼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