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댓글이나 다른 글에서도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런 강의를 무려 중학교 1학년 도덕 수업에서 받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그 때의 도덕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여자분이셨죠. ㅎㅎㅎ
그 때 당시에는 아주 간단한 딜레마였습니다.
내가 아프다. 그런데 노인이 있다. 자리를 양보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그리고는 해야 하는 사람들과 안해야 하는 사람들을 편을 가릅니다.
그리고는 마이너스 점수를 따져서 운동경기 하듯 논쟁을 하죠.
어찌 보면 이분법적이고 편협한 구도 같지만, 사실 그게 그 맘때쯤에는 가장 효과적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논쟁이라는 것과 타인의 생각을 듣는 법이라는, 기초적인 태도들을 배우는 데는 말입니다.
여기서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룰입니다.
상대방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중간에 말을 끊거나 공격적인 혹은 감정적인 태도로 상대방의 의견을 묵살하게 되면 페널티를 받게 됩니다.
페널티가 많은 쪽이 반대편에 사탕을 사주게 되어있죠. ㅋㅋㅋ
이런 식으로 5-6개의 딜레마를 하나에 수업하면서,
정말 반 아이들이 그렇게 몰입한 수업은 보기 힘들었을 정도입니다.
재밌는 것은 어떤 상황 하나를 주었을 뿐인데 거기에 발언자의 상상력이 계속 더해진다는 겁니다.
위의 예만 해도,
노인이 서서 갈 수 있을 정도라고 가정하는가 하면, 내가 죽을 지경으로 아프다라는 것을 가정하기도 하는 등등.
그런 식으로, 애초에 룰은 스포츠처럼 승패가 갈릴 것 같았는데 끝나고 보면 그렇지도 않았고,
오히려 방과후까지도 그 이야기를 계속 하고 있는 반 아이들을 볼 수 있었죠.
마이클 센델의 정의에 대한 강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덕적 딜레마를 던져주고 거기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지적 방식들을 통해서 도덕과 정의의 문제를 말하죠.
물론 수업받는 사람들은 중학교 수업 때처럼 점점 상상력을 덧붙이는 경우도 있고,
그에 따라서 교수의 코멘트가 따라가며 강의하는 식이죠.
사실, 상황가정 자체도 따지고 보면 헛점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100km로 달리는 멈출 수 없는 기차 앞에 5명의 인부가 일하는 철로와 1명이 일하는 철로가 있다,
5명을 죽일거냐, 1명을 죽일거냐.
강의의 상황가정은 이런데, 이건 철저하게, 받쳐주는 상황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을 구분하면
행동의 루트가 나오게 되어 있죠.
할 수 없다면, 그 상황 자체를 내가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구요.
애초에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는 자체가
내가 이 상황에 개입할 수 있다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고,
그렇다면 그 상황에 가장 효율적으로 개입하는 방법을 생각해보면,
첫째, 내가 기차 회사에 전화를 할 수 있는가,
둘째, 인부들이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가, 등등등.
뭐 생각하면 많겠습니다만.
이런 식의 생각들을 끊임없이 해보게끔 만드는 수업이
청소년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수업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이런 훈련을 한다는 것은, 나중에 그만큼의 인지력과 사고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습득해왔던 도덕관과 사고관에 대한 비판적 고찰도 될 수 있을 뿐더러,
이후 사회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거나, 논쟁할 때 등등에서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