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끝나고, 집에 오는 동안
그를 생각하니 담배가 생각나 한 대 물고
담배를 피우다 보니 또 그가 생각나
대여섯 대가 날아간 후에야 키보드를 당겨와 글을 씁니다.
나는,
노무현은 물러가라고 외쳤던 사람입니다.
혈기와 분노가 가득찬 30대 시절에, 홈에버 노조소속원으로, 그 사태의 한가운데에서, 그랬습니다.
그 때는,
그래도 되는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무현의 연설을 들었던 것도 아닙니다.
노무현이란 사람을 잘 알았던 것도 아닙니다.
경선부터 시작해서, 화살이 퍼부어지는 들판을 달리고 있다고 그 스스로 표현하던
그 질곡들의 단면을 한 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노무현의 이름 옆에 날인을 찍어주었던 것은,
그들의 지지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진짜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각기 다른 위치에 선 사람들이 보이는 한결같은 표정.
무언가를 받은 것도 동원된 것도 아닌, 정말 자신이 지지하기 때문에, 보일 수 있는 표정.
그걸 보고, 선택은 끝났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 사람이 오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 사람이 왔는데, 그런 세상이 왔는데, 이런 비정규직 같은 불합리가 말이 되느냐.
해고자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하면서까지 포스에서 장사질을 해대고 있는 그 상황들과,
그렇게 또 일을 하고 있는, 외주계약 날파리 같은 목숨들의 연쇄.
그래서 분노했고, 뛰어들었고, 결국 그와 같은 사람은 되지 못했지만 인생의 한 단면을 갖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노무현은 물러가라고 외쳐서는 안되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그런 세상이 오지를 않았거든요.
그가 죽었고, 10년이 가까이 흐르고, 그동안에 느낀 건,
그 순간에도 세상은 전혀, 그리고 지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상황과 어줍잖은 주제에,
산전수전 다 겪은 불도저를 보고 이제 삽 한번 뜬 놈이 물러가라고 하다니.
분노는 가슴 아래로, 묵히고 삭혀져서 뒤틀려진 채로 비겁함의 껍데기를 쓰고 차곡차곡 쌓여진 채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도 하면서 심장 한 구석을 꽉 쥐고 놓지를 않았습니다.
피를 토하는 듯이 도와주십시오 외치는 그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 분노가 왜 그렇게 나를 놔주지 않고 또아리를 틀고 있었는지,
겨우 깨달을 수 있었죠.
나는, 그에게 빚을 진 겁니다.
그것도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단순히, 물러가라고 외쳐서 미안하다 따위의 빚이 아니라
진짜 싸워야 할 것을 보지 못했고 진짜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못했던 자신을 보는 거울.
그것을 빚졌습니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은, 똑같은 정신적 부채를 알게 모르게 안고 있겠지요.
그리고 그 결과가 촛불광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기회가 왔습니다.
벌써부터 온갖 지엽적인 문제들이 고개를 들고 날을 세웁니다.
아무리 개같은 짓거리들이 넘쳐나도 이번 기회만큼은,
절대로 전처럼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다가 잃고 싶지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