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을 하나 읽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의 성격특성 요인 이라는, 다분히 학술적인 서적이죠. 2005년 출판인데다 표집단이 대학생 500여명 정도라는 한계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휘를 사용해서 타인의 평가를 하고 상대적으로 평가받는 현실이 있는데다 대학생이라는 사람들의 인식구조가 그 때까지의 사회교육적으로 받은 사회적 충격을 은연중에 드러낸다고 보면, 이 연구의 가치는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이 연구를 통해서 봤을 때 한국인의 성격특성은 다음과 같은 단어들로 표현될 수 있다는 논점을 던집니다.
요인 1 유능성 - 용기, 담력, 의지, 능력, 통찰력, 진취성, 지도성, 결단력, 숙련성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어휘 선택
요인 2 부정가 - 무례함, 부도덕, 거만, 교활, 우둔함, 비열, 악함, 거침 등의 특징을 나타내는 어휘선택
요인 3 친애 - 인자함, 자애, 봉사, 온순, 예의 등을 나타내는 어휘
요인 4 사교성 - 명랑성, 사교 및 친근감, 기지, 개방성 등을 나타내는 어휘
요인 5 대인 부조화 - 대인관계에 있어서 반친화적인 특징 및 심리적 불안정성, 특이성 등과 관련된 어휘가 특징적
요인 6 정서적 동요 - 불평이나 불만, 조급, 불안정 등이 특징적
요인 7 교양 - 요인을 구성하는 어휘의 수가 불과 7개로 나타남. 교양있다, 우아하다, 고상하다, 여성적이다, 품위있다, 예술적이다, 문학적이다 의 어휘만 포함.
순위별로 이야기 할 수 있는 문제이구요. 이 점에서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나는데, 개인적으로는 자기존중감에 집중이 되더군요.
항상 가졌던 질문,
한국인들의 자기존중감은 왜 이리도 지리멸렬할까,
요 부분에 관한 쓸만한 자료이지 싶었습니다.
해외에서 성격특성을 조사하는 요인을 보통 5요인이라고 합니다. 이 5요인은 정서적 안정성, 개방성, 외향성, 친화성, 성실성이라는 항목으로 표시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5요인에 대해서는 제가 읽은 서적마저도 범세계적 보편성을 추구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 외의 토착적인 요인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렇게 토착적인 요인을 찾아낸 것이 위의 요인들과 같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부분은, 해외의 이 성격특성 조사에서는 자기존중감이라는 특성을 개방성이나 외향성 등에 집어넣을지언정 유능성에다가 집어넣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그런데 위의 연구결과로는 한국 대학생들은 그것까지도 유능성의 영역에 집어넣는 답문들이 많았다는 것이죠.
이 결과는 2005년 결과임에도 조금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사들을 예로 들면, 집단주의적인 풍토에서 개인주의적 (이걸 부정적이라는 고정관념은 좀 버리고 봅시다)인 풍토의 극심한 변환을 겪습니다. 물론, 모든 것이 바뀐 건 아닙니다만, 유교적 사상과 충돌이 많은 개인주의적인 시각으로는 극단적 충돌을 빚어내게 마련이죠. 이는 귀스타프 르봉의 군중심리에서 설명하는 내용들과 맞물리면서 사회적 양상으로 번집니다. 대체적으로 이게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적 요인입니다. 여러모로 민중이 움직여온 역사라는 환상을 걷어내고 본다면 말이죠.
지금도 이것이 안정적인 국면이냐면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회사라는 곳은 집단주의적 개념으로 움직이려 하는데 구성원들은 개인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기업인들 중에서 수평적 구조를 유지하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하지만 그러기엔 사회에서 학습된 집단주의적 태도가 이 인식을 어정쩡하게 만듭니다. 때문에 구성원 개개인들은 자신들이 삶의 터전을 가지는 곳에서 인식을 추구하는 협소함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이 대물림 됩니다.
그러나 대물림 받은 구성원이 그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이런 결과 나타나는 수많은 스펙트럼들은 사회를 정돈된 형식으로 보이지 않게 만듭니다. 오히려 더 편협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속에서도 기본적인 것은, 어쨌든 아직도 기득권적 메카니즘을 만들고 있는 집단주의 속에는 발을 들이고 살아야 '먹고 살 수 있다는' 현실입니다.
그렇게 봤을 때, 이런 일견 혼란스러워 보이는 속에서도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해 갈구하는 긍정적 평가의 제1덕목이 유능성이라고 정의된다면, 그런 유능성에 비춰 자신의 자아의 욕망과 위치가 현실적으로 어긋나 있을 때가 가장 자기존중감을 박탈당하는 경우가 되겠지요. 그것만이면, 차라리 다른 길을 찾아서 그에 맞는 현실을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집단주의적인 특질들까지 끼어듭니다. 또래집단 속에서조차 리더쉽 혹은 사교성의 계급을 형성하는 것이 인지상정. 또한 집단주의 속에서는 항상 집단 구성원들의 평가라는 것이 따라온다는 점. 집, 차, 지위, 누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대, 누가 얼마를 번대. 누가 어떻더래. 평가. 평가. 평가.
집단 속의 구성원은 항상 집단이 요구하는 어떤 기준 혹은 상향선을 항상 강요받게 되는 거죠. 그것이 자아가 요구하는 상향선과 어긋난다 해도 말입니다.
즉, 결론적으로 보자면, 자아의 상향선을 만족시키기도 힘든 현실인 판에 집단주의적인 현실 강요가 꽤 큰 상황에 한국인들이 놓여있다는 형국.
자기존중감을 외향성 정도로 생각하는 해외의 인식상황에 비추어본다면, 한국인의 위와 같은 상황은 훨씬 더 그 압박이 심각한 상황이 될 겁니다. 그럼 추론해볼 수 있는 결과는 이와 같습니다. 집단의 강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아로 대체하든가, 자아와 현실의 타협점을 찾아 헤매든가, 완전히 외면하든가. 하지만 완전히 외면한다는 것은 곧 빈민 혹은 특이이상자의 위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공포감을 내재하죠. 이와 같은 상황에서 탈피하는 또다른 방법이 있습니다. 이민가는 것.
그럼, 도대체 한국인이라는 입장으로 자기존중감을 획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안해볼 수가 없겠죠.
(요 부분에 대한 개인적 주장은 다음 기회에.......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