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에 졌습니다. 하지만 체념은 안됩니다.

가자서 작성일 12.04.12 16: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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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 졌습니다. 하지만 체념은 안됩니다.  [권종상님 글]

 

새벽, 번쩍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네시 반,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오후 여덟시 반일테니 대략 그림이 나오겠다 싶어 컴퓨터를 켰습니다. 뭐? 순간 저는 눈을 의심해야 했습니다. 54%? 투표율이 70%를 넘기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건 뭐지?

 

그리고 나서 눈에 보이는 소식들, 솔직히 계속해서 '암담한' 소식들이었습니다. 출근시간에 쫓겨서 집에서 후다닥 나가야 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인터넷 카페에서 한국 소식을 들여다보다가 노트북을 탁 덮어버렸습니다. 기가 턱 막혔습니다. 이게, 이게 결과야?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거야?

적지 않은 사람들은 김용민을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아니,이건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김용민을 원망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가슴이 싸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거 때문이었구나. 당신들, 정말 쫄았었군.

 

일단 지금 상황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은 '투표를 한 사람들' 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변화에의 갈망을 가지고 투표를 했던 사람들의 체념입니다. 그렇지만, 이건 분명히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들은 적어도 투표했고, 당신들 때문에 국회로 가서 우리 대신 싸워줄 사람들도 생겼습니다. 문제는 분명히 '투표 안한 당신들' 때문입니다. 귀찮아서 투표 안한 사람들, 내가 아니어도 투표를 해 줄 다른 사람이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당신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미리부터 체념해버린 당신들 때문입니다.

 

김용민 탓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투표율의 숫자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투표용지를 조작할 수는 있을 겁니다. 그렇지만 54.3%라는 숫자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숫자가 70%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걸 넘어갈 거라고 믿었습니다. 적어도 투표를 통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만큼의 숫자들을 기대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기대를 배신한 건, 바로 '투표 안한 당신' 입니다.

 

물론 어쩔 수 없어서 투표를 못한 분들도 있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그 한 표가 당신들이 더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아주 소중한 한 표였습니다. 그 한 표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겁니다. 물론 김용민 효과 덕에 수구 계층이 결집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김용민을 감싸겠다는 마음으로 조금만 더 많이 투표했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겁니다. 그것은 절대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번 결과가 적어도 민의의 완전한 반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투표를 안한 당신들의 잘못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선일보의 프레임에 갖혀 미리 쫄았던 민주당. 오히려 더 거세게 김용민을 보호해주지 못한 정당. 애초에 정봉주를 보호해주지 못했을 때부터 기대하지 못할 정당이란 걸 알았지만, 그리고 김진표를 쳐내지 못했을 때 이런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 안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에 완전히 그 한계의 바닥을 드러내 보여 주신거나 다름 없습니다. 이정희 대표의 희생으로 극적으로 만들어낸 야권 연대의 바람을 죽인 것은 당신들 스스로임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지금같은 모습으로라면, 정권교체는 고사하고 '이번에 투표하고 나서 체념한 사람들'의 실망 때문에 정당 기반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가지 멀리서 이 모습을 보며 제안하고자 하는 것은 투표의 체제 자체를 바꾸면 어떨까 하는 겁니다. 선거에 진 이유 중 하나는 민의가 완벽하게 반영되지 못했던 시스템 때문이기도 합니다. 지금과 같은 종이에 도장찍는 식으로는, 강남 을에서 제기됐던 형태의 선거부정 의혹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합니다. 인터넷, 통신을 제대로 활용해 직접선거 참여율을 높여야 합니다. 이것이 아니면 제도상으로 일부 선진국에서 채택하고 있는 선거 의무제를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금 졌다는 것에 쫄지 말고 서로를 위무해야 합니다. 참여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우리가 사는 시스템에 상식이 자리잡도록 하는 것은 전쟁입니다. 우리가 이번 전투엔 졌습니다. 그러나 상식을 바로잡는 전쟁에선 질 수 없습니다. 친구가 한국에서 전화를 걸어 제게 말해 주었습니다. 파토스에 매몰되지 말고 로고스로 생각하자고. 지금 우리는 이 패배에 눈물흘리고 분할 수는 있어도, 이것 때문에 체념해야 할 이유도, 여유도 없습니다. 정권교체라는 커다란 과제가 다시한번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체념하지 말고, 전열을 함께 다집시다. 그리고 이번의 실수들을 거울삼아 더욱 감동적인 대선 드라마를 만들어내야 하겠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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