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역 5년형 사기범 전경환은 감옥에 없다

가자서 작성일 12.08.10 21:5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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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5년형 사기범 전경환은 감옥에 없다

 

65일 복역 뒤 뇌경색 등 이유로 풀려나 2년 넘게 감옥 밖 생활… 치료받는 병원에 이름 없고, 주소지로 제출한 곳에서도 행방 확인 못해

전경환(70) 전 새마을운동중앙본부 명예회장이 2010년 5월13일 사기 혐의로 징역 5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65일 복역한 뒤 형집행정지를 받고 풀려나 지금껏 형집행정지 상태인 사실이 < 한겨레21 > 의 취재 결과 밝혀졌다. 구속집행정지 기간을 포함하면, 전 전 회장은 법률상 감옥에서 복역해야 할 3년3개월 중 2개월을 제외하고 계속 풀려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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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회장님만 믿고' 맡긴 돈 14억원

경기도 수원지법 성남지원 형사1부(당시 재판장 구회근)는 2009년 5월14일 사업자금을 외국에서 유치해주겠다며 돈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로 불구속 기소된 전경환 전 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공모한 혐의로 함께 기소된 ㅎ서비스 대표 서아무개(69)씨도 유죄 선고를 받았다. 전 전 회장은 과거 자신의 지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전 전 회장과 서씨는 2004년 4월22일 광주의 ㅇ건설 사무실에 갔다. ㅇ건설은 아파트 1천 가구를 신축하는 데 자금이 필요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전 전 회장과 서씨가 돈이 필요한 ㅇ건설에 찾아간 것이다. ㅎ서비스는 용역업체에 불과했지만 ㅇ건설 경영진은 서씨와 '외자 금융 도입 컨설팅 약정서'를 작성했다. ㅇ건설 대표이사가 이 자리에서 6억원의 자기앞수표를 전 전 회장에게 줬다. 그는 "저는 전 회장님만 믿고 하는 것이지 ㅎ서비스라는 회사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믿고 계약을 체결하겠습니까. 전 회장님께서 직접 서명을 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전 전 회장은 모두 6차례 걸쳐 여러 사업가에게서 14억원을 가로챘다. 서울고법과 대법원도 전 전 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을 확정했다.

전 전 회장은 1심 선고일인 2009년 5월14일 감옥에 갔어야 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뇌경색으로 인한 편마비로 독립적인 보행 및 거동이 힘든 점 등을 고려하여 법정 구속은 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2심 재판부도 같은 이유로 법정 구속하지 않았다. 형이 확정된 죄인을 풀어줄지는 검찰이 결정한다. 죄인의 주거지나 병원을 관할하는 해당 지검장이 최종 결정권자다. 실제로 죄인이 아픈지 점검하는 주체는 지청장이다. 형사소송법 '470조'(자유형집행의 정지)가 근거 조항이다. '관할하는 검찰청 검사의 지휘에 의하여 심신장애가 회복될 때까지 형의 집행을 정지한다'고 규정한다. 주거지는 '병원 기타 적당한 장소'로 제한된다. 관행상 집과 주거지로 제한된다. 점검 기간이나 횟수는 따로 규정이 없다. 검찰이 '수시로' 판단해 형집행정지 연장 여부를 결정한다. 풀려난 죄인은 자신이 어디 있는지 검찰과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이런 구체적인 업무들은 '자유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 사무규칙'에 따른다.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2010년 5월13일 전 전 회장은 성동구치소에 수감됐다. 당시 < 연합뉴스 > 기사를 보면, 전 전 회장은 자신의 경기도 성남 분당 집을 관할하는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형집행정지 신청을 냈으나 성남지청은 그해 6월3일 "전씨가 수형 생활을 감내하기 어려울 정도로 건강이 안 좋다고 보기 어렵다"며 불허했다. 전 전 회장은 이번엔 성동구치소를 관할하는 서울동부지검에 형집행정지 신청서를 냈다. < 뉴시스 > 기사를 보면, 서울동부지검은 3개월 동안 형집행정지를 하는 결정을 2010년 7월15일 내렸다. 당시 서울동부지검은 "성동구치소 쪽에서 뇌경색 등을 앓아온 전씨가 혼자 거동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아 풀어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건의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전씨는 65일 징역을 살았다. 그리고 그 뒤부터 2012년 8월3일 현재까지 감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거듭된 확인 요청에 8월3일에야 임검

형집행정지 업무 담당은 몇 차례 바뀌었다. 검찰의 설명을 종합하면, 전 전 회장은 2011년 3월 성동구치소에서 안양교도소로 이감됐다.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바뀌었다는 게 공식적인 이유다. 수원지검 안양지청은 다시 형집행정지 의견을 올렸고 수원지검장은 이를 허락했다. 그러다 지난 2월께 전 전 회장의 관할 검찰청이 수원지검 성남지청으로 바뀐다. 지정 병원이 바뀌었다는 이유다. 성남지청은 지난 2월·4월·5월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전 전 회장을 '임검'했으며 수원지검은 이를 근거로 현재까지 형집행정지를 연장해오고 있다. 임검이란 검사가 직접 죄인의 집이나 병원을 찾아가 진짜 아픈지 점검하는 것이다. 성남지청은 구체적인 병원과 주소지는 밝히지 않았다.

< 한겨레21 > 의 취재 과정에서 전 전 회장의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정황이 드러났다. < 한겨레21 > 은 전 전 회장이 진료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러스크분당병원'에 7월18일과 7월25일 두 차례 방문해 입원실을 모두 점검했으나 '전경환' 이름의 입원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재활전문병원인 러스크분당병원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아 5~8층에만 입원실이 있다. 5층은 재활치료실을 겸하고 있어 사실상 러스크분당병원 입원실은 6~8층에만 존재한다. 독실은 거의 없었고 거기에도 '전경환' 이름은 없었다. < 한겨레21 > 이 입원 여부를 확인 요청했으나 러스크분당병원은 "전 전 회장이 최근 사생활 보호 요청을 해 입원 여부는 물론 언제부터 진료를 받아왔는지 등 아무것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5월29일을 끝으로 전 전 회장을 임검하지 않은 성남지청은 < 한겨레21 > 이 전 전 회장의 소재를 확인 요청하자, 8월3일 임검을 실시했으며 전 전 회장이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같은 날 밝혔다. 윤웅걸 차장검사는 "검사가 의사와 함께 전 전 회장을 확인했고, 의사 소견서를 보면 전 전 회장은 강직성 편마비와 뇌경색 등으로 보행이 어렵고 인지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러나 러스크분당병원은 구체적인 입원 일시를 밝히지 않고 있다.

검찰의 이런 해명에도 불구하고 의심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전 전 회장이 지금까지 자신의 소재와 관련해 보여온 '거짓 행동' 때문이다. 1988년 이후 전 전 회장의 집으로 알려진 곳은 모두 3곳이다. 서울 종로구 팔판동 집은 2002년 3월 전 전 회장이 세금을 내지 않아 강제 경매됐다. 사기 혐의 재판 때 전 전 회장이 법원에 낸 주거지는 2곳이다. 1심 당시 주소는 아내 손춘지씨 소유의 분당동 ㄱ빌라 105호다. < 한겨레21 > 이 7월18일과 7월25일 두 차례 집을 방문했으나 아무도 없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를 취재한 결과, 손춘지씨는 지난 6월 미국으로 출국했다고 한다. 미국에 있는 아들을 만나려는 목적으로 추측된다. 주민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손춘지씨는 4~5년 전부터 빌라에 혼자 거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전 전 회장은 사기 혐의로 재판받을 때 법원에 허위 주소를 신고한 셈이 된다.

자꾸 바뀌는 동거인… 누이, 처제, 동서

전 전 회장은 2심 때 법원에 경기도 하남시 신장동으로 주소지를 바꿔 신고했다. < 한겨레21 > 이 신장동 집을 찾아가봤다. 재건축 대상으로 보일 만큼 낡고 오래된 벽돌 연립주택의 1층이었다. 이 연립주택의 반지하에 사는 주민은 "노인은 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인근 부동산중개업자 등 주민 4명도 기자에게 "머리가 벗겨진 노인을 수년간 연립주택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전 전 회장이 위장전입을 했을 수 있다. < 한겨레21 > 이 하남시에 전 전 회장이 전입신고를 한 적이 있는지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하남시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8월2일 비공개 결정했다.

전 전 회장은 재판 과정에서도 의심 살 행위를 여러 번 저질렀다. 전 전 회장이 주거지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탓에 법원은 문서 송달에 늘 애를 먹었다. 2심 재판부가 전 전 회장에게 소송접수통지서를 보냈으나 '이사 불명'으로 송달에 실패했다. 뒤늦게 6월30일 재판부는 문서를 송달했다. 법원 기록을 보면, 송달받은 사람은 '동거인(제/누이)'으로 돼 있다. 전선학(84)씨와 전점학(77)씨 등이 누나다. 최근 경찰이 잡았다 풀어준 조일천씨가 전점학씨의 아들이다. 전 전 회장 주장대로라면, 하남시 신장동의 낡은 연립주택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인 누나와 함께 거주하며 병수발을 받았다는 말이다. 노인들이 거주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는 주민들의 증언과 배치된다. 2009년 7월8일 재판부는 피고인인 전 전 회장에게 피고인 소환장을 보냈으나 '수취인 불명'으로 송달하지 못했다. 문서를 송달받은 '동거인'도 누이, 처제, 동서로 계속 바뀐다.

전 전 회장은 진짜 아픈 걸까? 성남지청은 지금까지 모두 4차례 시행한 임검과 의사 소견서를 근거로 전 전 회장에게 형집행정지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전 회장은 과거 한 차례 형집행정지가 불허된 바 있다. 2010년 6월 전 전 회장의 형집행정지 신청을 불허했던 당시 수원지검장 박영렬 변호사는 < 한겨레21 > 에 "신청 불허 이유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시 성남지청장으로 불허 의견을 올렸던 한무근 현 춘천지검장은 통화를 거부했다. 전 전 회장이 형집행정지 결정을 받을 당시 안양지청 차장으로 근무했던 김회재 군산지청장도 전 전 회장과 관련해 기억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 1심 재판장인 서울중앙지법 구회근 부장판사는 "정확한 병명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전 전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왔으며, 진술은 했지만 몸이 안 좋아 보였다"고 밝혔다. 2심과 3심 때 전 전 회장을 변론한 변호사는 전 전 회장이 실제로 중증이었다고 말했다. 2심 당시 공범인 서씨 변론을 맡은 변호사는 "전 전 회장이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나왔지만 손을 흔드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며 "진짜 아픈지 반대 심문을 하려고도 했다"고 말했다.

중증 뇌경색은 장애인 등록하는데…

복수의 전문의 의견을 종합하면 '뇌경색 및 뇌경색으로 인한 혈관성 치매'라는 병명만으로 전 전 회장이 정말 심각하게 아픈지 판단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병명이 아니라 정도다. 정도에 따라 크게 다르다. 가벼운 뇌경색은 치료를 받으며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다. 감옥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이면, 사람을 아예 못 알아보고 내내 누워 있어야 한다. '꾀병'인지 가릴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중증의 뇌경색으로 언어, 인지능력,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은 건강보험공단에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건강보험공단 쪽에 전 전 회장이 장애인 등록을 했는지를 확인 요청했으나 '민감한 개인정보'를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한겨례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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