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총리의 망언과 MB의 침묵사이 [바람부는언덕님 글]
이명박 정권 출범이후 대체적으로 한일 관계는 양호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출신이 일본 오사카인 점과 2008년 이상득 국회부의장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당시 주한 미대사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은 뼛속까지 친미·친일이니 그의 시각에 대해선 의심할 필요가 없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 외교 전문을 통해 밝혀졌기 때문에 친일대통령이라는 오명까지 쓰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명박 정권의 대일국정기조는 일본에 우호적이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대한민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한 이후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의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정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 일왕의 사과 요구,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며 일본 정부를 자극했고, 이에 일본 정부는 기다렸다는 듯이 독도의 국제분쟁지역화를 노린 국제사법재판소 제소, 한일 통화스와프 재검토 움직임에 이어, 노다 일 총리의 서신 반송을 두고 양국 정부가 "무례하다", "이성을 잃었다"는 등의 외교적 결례를 무릅쓴 설전을 이어갔으며, 급기야 노다 총리가 일본이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증거가 없다는 망언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문제는 이번 노다 총리의 발언이 일본이 과거 스스로 인정하고 사과한 역사적 사실마저 부정하는 것으로, 점점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일본의 강경보수 흐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빌미를 바로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 이전의 대일외교의 근간은 "조용한 외교"였습니다. 우리 정부의 "조용한 외교"에 대한 옳고 그름의 논란이 내부적으로 제기되어 왔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도발에 말려들 필요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는 독도의 국제분쟁지역화를 노리는 일본의 전략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한결같은 외교 전략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이명박 대통령의 독보방문으로 "조용한 외교"를 표방해온 우리 정부의 외교 전략이 한순간에 뒤집혀졌습니다. 만약에 이명박 정부의 거듭된 일본 자극이 그동안의 대일외교 전략을 수정해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공세적으로 전환시키려는 적극적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나마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독도방문과 일왕사과 발언 및 8.15 축사에서의 위안부 문제 언급 이후 우리나라의 대일 외교의 기조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는 대통령의 독도방문이 청와대의 말처럼 2~3년 전부터 준비된 일이 아니라, 한마디로 이후의 한일관계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즉흥적인 깜짝쇼였다는 것을 짐작케합니다...
일본사회는 지금 보수우경화의 바람이 거셉니다. 중국, 러시아에 이어 이제 독도문제까지 영토문제가 수면 위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보수우경화의 중심에 과거사에 대해 비교적 전향적이었던 민주당 정부와 총리까지 최전선에 나서 “한국이 독도를 불법점거하고 있다”, “위안부 강제 동원 증거가 없다”는 망언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전의 글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20%대로 떨어진 일본 민주당 내각은 정치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마찬가지이지요. 경제 기사를 보니 현재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선진국 중 최악 수준입니다. 올해 말에는 24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그리스(190%)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일본 민주당 정권은 지금 정치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또한 민주당 분당사태로 인해 조기총선을 앞두고 있기에 더더욱 설상가상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당과 노다 총리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독보방문은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격입니다. 그리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다 총리는 한발짝 더 나갑니다. 노다 총리와 내각의 각료들이 한꺼번에 고노 담화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지요. 노다 총리는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고노 담화는 위안부 설치 관리에 일본군이 관여했다고 사죄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직접 조사한 끝에 나온 것이며, 정권 교체와 관계없이 일본 정부의 기본방침처럼 지켜져온 것입니다. 그것을 일본 정부가 부정하고 폐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총리까지 나서서 과거사를 부정하고,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비인도적인 만행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태도는 강력한 비판을 받아야 합니다만, 그럼에도 한가지 의문은 남습니다....
과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하는 점입니다. 일본 정부는 위에서 말씀드린대로 자국의 정치적 경제적 위기상황을 영토 분쟁으로 국면 전환하려 하고 있고, 노다 총리와 내각의 계속되는 강경 대응으로 지지율이 상승국면으로 돌아서는 등 일정정도의 성과를 보고 있습니다. 반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 올라 29%대를 보이고 있고, 대통령의 속시원한 깜짝 대일 강공모드 속에서 통쾌함을 잠깐 맛 본 것을 제외하면 어떤 실익을 거두었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독도가 국제분쟁지역이라는 대외 이미지만 부각시켰고,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양국이 쌓아온 신뢰와 원칙이 무너졌으며, 그동안 물밑에서 양국의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협력관계들과 한류 열풍에서 기인한 활발할 문화교류도 반한 분위기 속에 위기를 맞게 된 작금의 상황을 보며 이명박 대통령의 뜬금없는 이벤트성 대일공세에 문제 제기를 안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제 생각이 짧은 것일까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자국의 정치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구실을 얻은 셈이고, 이명박 대통령은 독도를 최초로 방문한 대통령이란 칭호와 함께 독도에 친필 표지석을 남겼다는 것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겠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이명박 정부의 대일 공세 속에 우리 정부와 국민이 얻은 것은 거의 없다고 보여집니다...
P.S...
일본 노다 총리가 “위안부를 강제동원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이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는 망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망언의 빌미를 제공해 준 당사자가 바로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사실 일본 정부가 외교적 분쟁과 국제적 비난을 무릎쓰고 일관되게 이 문제를 철저하게 무시해버릴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 준 것은 바로 박정희 대통령때 체결된 한일협정이었습니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에 의해 위안부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한반도 강점으로 입은 피해나 손실에 대해 청구하는 권리(청구권)는 "무상 3억 달러, 차관 3억 달러"로 끝났으니 더 이상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바로 이 조항으로 인해 생명과 재산을 약탈당한 한국인들이 개인적으로 배상받을 길은 원천봉쇄됐고, 또한 협정 이후 새롭게 조명 받은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일본이 회피할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조약체결로 일본에 빌미를 준 것도 화가 나는데...
그의 딸은 아버지의 과오는 인정하려들지 않고 5.16 쿠데타마저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태도로 일관하며 대통령에 도전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 참으로 참담할 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