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어선의 NLL침범은 다분히 의도된 목적이 있는 것이 확실하네요 일각에서는 대선의 북풍이다 뭐다라 해서 현 상황을 조금은 다르게 왜곡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이 우리 서해바다에서 우리 군을 상대로 어떤 도발들을 했으며, 그들을 상대한
우리 젊은 장병들이 어떻게 희생되어 갔는지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산화하면 지킨 이땅 대한민국을 우리는 사명감으로 지켜가야할 것이다.
얼마전 또다시 북한은 서해 NLL을 어선으로 위장한 배들을 군사적 도발을 명분으로 삼을 의도를 가지고 넘어왔다. 이제는 분쟁을 우려해서 목숨걸고 이나라를 수호하고 있는 젊은 장병들의 목숨이 희생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이 오판하지 못하게 강경한 대비태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앞으로 한발만 더 넘어오고 도발하면 그것에 대한 대가는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전쟁을 두려워하면 그 전쟁에 지는 것이다. 전쟁을 불사하더라도 반드시 지킬건 지킨다. 그리고 목숨걸고 이 전쟁을 승리하리라는 불굴의 의지가 그 모든 것을 방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머리숙여 그 젊음을 지켜주지 못함을 한없이 죄인이 되는 맘.... 그 용사들의 명복을 다시한번 빌게 된다.
제 1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오전, 서해 연평도 인군 해상에서 북한 함정이 영해를 침범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해전을 벌였다. 북한측 경비정이 1996년 6월 6일부터 NLL(북방한계선)을 매일 침범함 몇시간씩 한국 영해에 머물면서 반응을 살피고 돌아감 그러다가 9일째 되는 15일 오전.
북한 경비정4척이 꽃게잡이 어선 20척과 함께 북방한계선 남쪽 2km 까지 내려왔다.
한국 해군은 고속정과 초계함 10여척을 동원. 9시 7분부터 20분 두차려에 걸쳐 선체를 충돌시켜 밀어내기식 공격을 감행
북한 경비정은 25mm기관포 공격과 어뢰정 3척도 가담함.
이에 한국 해군도 초계함의 76mm 함포와 고속정의 40mm 기관포 등으로 응사.
북한 어뢰정과 경비정을 명중. 총 2척이 서해상에서 침몰.
다른 3척도 크게 파손된 채 퇴각함.
북한 군인의 피해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남한 장병7명이 중상을 입음
교전후 1시간이 오전 10시 지난 판문점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장성급 회담에서 교전이 거론되었으나 양측의 입장 차이만 드러낸 채 아무런 성과없이 종결. 북한측은 한국쪽이 먼저 도발했다는 억지주장을 내새우고 더 나아가 교전지역이 북한 12해리 이내여서 북한영해라고 주장. NLL은 수십 년동안 남북한 양쪽모두가 한반도 동서 해상의 실질적인 경계선으로 인정한 것을 무시. 영해문제를 다시금 부각시키려는 북한의 전술적 의도를 드러냄.
제 2 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한국 경비정에 기습 포격 일상적인 조업지도로 방심한 한국 경비정은 6명의 전사
제 17회 월드컵 축구 대회의 마지막 날 하루를 앞둔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무렵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쪽 3마일.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에서 해전이 일어남
1999년 6월 오전에 발생한 제 1차 연평해전이 벌어진 지 3년 만에 같은 지역에서 일어남 '서해교전'으로 불리다가 2008년 4월 '제2연평해전'으로 격상
북한의 꽃게잡이 어선을 경계하던 북한 경비정 2척이 남한측 북방한계선을 침범하면서 남하함 한국 해군이 고속정 4척이 즉각 대응에 나서 초계와 동시에 퇴거 경고 방송을 하는 한편, 교전 대비태세를 취함 그러나 아무런 징후없이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선제 기습포격 고속정 참수리 357호 조타실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임.
이로써 교전이 시작되고, 곧 인근에 있던 초계정과 고속정이 합류.
10시 43분경 북한 경비정 1척이 화염이 휩싸이자 나머지 1척도 퇴각. 10시 50분 북방한계선을 넘어감 25분만에 교전이 끝남.
이 교전으로 한국해군 윤영하 소령, 한상국 중사 , 조천형 중사 , 황도현 중사, 서후원 중사, 박동형 병장총 6명이 전사였으며 19명이 부상을 입음, 해군 고속청 1척이 침몰하였는데 북한 측 피해상황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음.
교전 직후 국방부는 '북한의 행위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묵과할 수 없는 무력도발'로 규정. 북한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강하게 요구하였으나, 북한 쪽의 답변을 듣지 못함.
대청해전.
2009년 11월 10일 오전 11시경 대청도 동쪽 약 9km 지점에서 한국군의 북방한계선(NLL) 침범 경고 무시하여 남한과 북한간의 해전
2차례의 해전을 격은후 해군은 경고방송 - 시위기동 - 차단기동 - 경고사격 - 격파사격 이었으나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 - 경고사격 - 격파사격으로 바뀜.
북한의 경비정 한 척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을 침범하여 남하함.(대청도 동쪽 11.3km 지점) 5차례 경고방송을 보냈으나 이에 응하지 않고 계속 남하.
해군은 20mm 발칸포로 4발 경고사격을 했으나 이에 북한경비정은 25,75mm 포로 참수리 325호를 조준사격, 한국함정에 직접 사격을 가함
한국해군도 사격(40mm함포 250발 포함 4950여발 발사)을 가하여 직접적인 교전이 이루어짐 이후 북한군의 선박이 반파되어 북상하자 남하 67분 만에 교전종료. 북한은 경고사격에 대한 언금 없었으며 귀대중인 함섬을 뒤따르며 발포했다고 언급 대한민국의 함선이 달아나며 불질했다고 언급함. 보다더 강력한 보복이 있을 것이라 협박함
서해상 남북간의 관계가 2002년 제2연평해전 이후 위기를 맞음 언론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3차 서해해전인 대청해전은 보다 신속한 우리 군의 교전절차와 우수한 화력에 힘있어 철저하게 조준사격한 북한이였지만 우리가 사정거리 밖에서 조치했기에 우리군의 직접적 피해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무력 도발에는 선제적 조치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교전능력은 북한을 월등하게 앞섭니다. 고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북한에게 보여줄 때만이 소중한 젊은 장병들을 희생시키지 않고 영토를 수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북풍이다. 대선 앞의 물타기다 등의 불순한 의도의 여론몰이에 휩쓸리지 말고 안보문제 만큼은 반드시 한마음 한소리를 낼때입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2차 연평해전때 월드컵 3,4위전이 열렸던 날이라는 것을 국가적으로 큰 행사를 치룰때 일수록 북한은 도발했습니다. 북풍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개입하기 위해서 조장하는 것임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newsview?newsid=201209230001066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