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과 5.18)
박지원은 1981년 1월 전두환의 미국 방문 때 환영위원장으로서 환영행사를 치뤘고 같은 해 KBS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인 결단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전두환은 레이건 미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는데 LA에선 호남향우회가 광주학살의 책임을 물러 관을 들고 전두환 규탄 시위를 하였으나 뉴욕 한인회장이었던 박지원은 전두환을 환영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여 후에 전두환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박지원은 전두환 대통령의 미국 방문 시에 환영위원장을 맡아 적극적인 협조를 한 사람이다. 그리하여 전두환의 성공적인 미국 방문의 공로로 국민훈장(동백장)까지 받았으며, 그 이후로도 전두환 정권에 모든 것을 올인(All in)한 사람이었다.
특히 전두환 대통령의 아우 전경환과 특별한 관계를 맺었고, 전경환의 후광을 이용하여 전국구의원이 되고자 하였으나, 부친과 숙부, 고모 등의 좌익경력으로 인해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이에 박지원은 이를 숨기기 위해 호적 등 관계서류를 파기, 변조하고 1992년 2월 20일 처음으로 대한민국 주민등록을 취득한 것으로 위장하였다.
그 이후 전두환 정권 하에서 박지원의 행적은 상식을 넘는다. 공천에서 탈락하자, 전경환과의 관계를 과시하기 위해 함께 군함을 타고 진도에 착륙하여 진도 사람들에게 위세를 부리기도 하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82-83년에는 무려 세 번이나 쾌속정으로 전경환과 함께 진도군수와 경찰서장의 영접을 받으며 진도를 방문하였다. 이는 전경환의 위세를 이용하여 빨갱이 가족이라는 오명(汚名)을 불식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판단된다. 호가호위(狐假虎威), 간교한 여우의 속셈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바로 그해 박지원은 K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과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인 결단이었다.’고 말하였다. 아마도 5.18이 영웅적인 결단이라고 말한 사실이 지금도 유효하다면, 박지원은 그의 숙부 고모가 진도사람들로부터 당한 것처럼 광주사람들로부터 석살(石殺)당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다가 박지원은 1984년 전경환의 미국 방문 때 환영만찬을 주최하였다가 계란과 케찹 세례를 받았고, 그해 망년회에서 호남향우회 사람들로부터 의자로 머리를 맞아 20바늘을 꿰매는 테러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박지원 그는 전두환 정권 최대의 협력자였고 칭송자였다. 반면 5.18 광주시민의 적이었다. 그런 그가 오늘날 김대중의 뒤를 이은 후계자인양 광주 시민과 호남인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금은 스스로 종북주의자 빨갱이로 자처하면서, 호남인의 머리 위에서 군림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박지원을 길러준 조우승 박사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박지원이 연좌제로 인해 미국에 건너가지 못할 때, 그의 신원보증을 서주기 위해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부탁하였다.”
당시, 뛰어난 한의술로 청와대까지 출입하였던 조우승 박사의 부탁을 받고 신원보증을 서 준 이 중에는 정보를 담당하던 분들도 있었다.
그가 아무리 부친 박종식의 좌익경력에 관한 서류를 파기하였다 해도, 우리 사는 세상 도처에는 박지원의 모든 것을 밝혀줄 증인들과 진실들이 눈을 부라리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전두환 시절 공천 신청 시에 그의 신원을 조사한 서류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좌좀들의 이중성. 민주당에 이런 인물이 원내대표인데 어떻냐 기분이?
또 쫄리니깐 욕만 쓰고 가지 말고 ex)노동쟁의,브랜든히트,올레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