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느닷없이 프레이저 보고서가 인기라지. 예전에 니네 80년대 선배들이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로
규정하고, 반제, 반봉건, 반파쇼 의식화 교육받을 때 존나게 우려먹었던 자료가 그거야. 새로운 자료라거나 극비문서도 아닌, 전대갈이 담배피던
시절에 실천문학사에서 국내판으로 완역하여 시중에 다 공개된 거니, 굳이 원문 잡고 낑낑 대지 않아도 돼. 거기에 나온 내용들은 학자들이 이미 다
한번씩 훑고간 내용일뿐만 아니라, 박정희 시대 미국의 원조정책과 관련된 논저들을 찾아보면 NSF라 해서 각주달고 이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방대한
자료들이 다 분석되어 있다.
2. 자료를 왜곡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은 편집이야. 알지? 편집. 그렇지~ MBC에서 하던 짓을
생각해보면 간단한데, 그렇게 원문을 가위질해서 편한대로 붙여놓으면, 누구 하나 개.새.끼 만드는 건 쉬운 죽 먹기고, 반대로 누구 하나 영웅만들기도
쉬워. 악의적 편집으로
독립운동가 김구를 반병.신으로 만드는 기법은 저번에도 시전한 바 있지만, 미국 외교문서를 짜깁기하는 방법으로 5.16 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고 박정희는 난세의 영웅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지. (이건 다음 포스트에서 보여준다)
3. 어느 정부든
정책실패라는 게 있어. 근데 정책실패가 곧 시장실패를 의미하지도 않고, 정부실패를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야. 예를 들어볼까? 소비를
진작한답시고 신용카드 남발하여 범국민적 신용불량자 양산하고, IMF의 고금리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가 수많은 기업들을 도산시키고, 양극화에
중산층 몰락을 초래한 김대중을 이런식으로 비판하면, 니들이 동의하겠냐 이거지. 아니지? 그러니까 니들은 개.새.끼들이라는거지.
4.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한국 경제의 당면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어. 50년대 후반부터 달러가치가 급락하면서 그때부터 미국의 원조정책은
더이상 무상이나 시혜성 원조가 아니고, 개발차관 정책으로 바뀌었어. 소위 BA 정책이는게 등장한 이유도 바로 그거지. 이거는 박정희가 등장하기도
전에 이미 장면정부때부터 그런 조치들이 취해졌고, 이른바 미국식 경제에 대한 한수 가르침이라는 명목으로 AID라는 기구를 이용해 국가 경제
전반에 대한 감시와 지도, 개입을 했다고 보면 됨. 요컨대 미국의 간섭주의는 장면정부부터 시작되었기에 박정희 정권만의 문제도 아니고,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거지.
5. 프레이저 보고서의 전문을 읽어보면, 섬유협정이나 주한미군철수 문제, 외자도입 문제에 박정희가 얼마나
고민을 했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음을 알 수 있지. 이 자료는 다른 측면에서 보면, 박정희의 국가발전에
대한 헌신과 노력, 그리고 그의 결단이나 리더십, 통찰력을 거꾸로 입증하는 자료가 될 수도 있어.
그 한 예로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이런 얘기가 있지. 섬유협정이 난관에 봉착하자 케네디는 박정희를 대놓고 무시하지. 너네 돈 없잖아. 섬유공장 짓는 다고 힘빼지말고 기존의
공장 수리해서 쓰는게 훨씬 돈이 덜들고 효율적이라고 박정희를 설득하지. 박정희는 미국의 요구대로 섬유수출의 쿼터제를 도입하면, 일본이나 홍콩과
달리 국내에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므로 개솔이 말라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어.
협상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간의 특수한 관계, 경제적 위협의 정도에 대한 인식 차로 인해 한국은 가장 다루기 힘든 상대였고,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 측은 엄청난 압력이 가해질 때까지 꿈쩍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들의 저항은 일시에
무너졌다"
즉, 모든 수단을 통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 어쩔 수 없이 굴복한거지, 동영상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아무 생각없이 미국이 하라는대로 끌려다녔던 것은 아니야. 이제 막 시작한 후진국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얼마나 많이 있겠어.
우리가 미국의 개입에 완강히 저항한 덕분에 미국은 우리와 절충점을 찾지 않을 수 없었고, 미국의 정책을 이식하는 과정에 있어, 우리의 동의와
협력을 구하지 않을 수 없었어.
그 실례를
들어보자면『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수정과정에서 우리가 미국에 어떻게 대응했는지 확인해보면 됨. 동영상에서 보여준 것처럼 일방적으로
고쳐라. 해서 고친 것이라기 보다는 당시 계획 입안자들이 여러 그룹이 있었고, 그것을 최종 조율하는 과정에서 기업이나 이익단체의 여론을 종합해서
판단을 내린거지. 미국의 의중이 대다수 반영이 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우리측 현실에 맞도록 조정과정을 거쳤어. 그 표를 보자면 다음과
같아.
빨간 박스의 정책변화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미국측 입장과 우리측 입장의 교묘한 절충점과 타협점을 찾은 내용들이 더 많아.
이것을 가지고 박정희의 비굴성을 논할 수 있을까? 니들은? 생각해보자고. 미국의 경제지도와 개입들이 항상 옳았던 것은 아니고, 걔네들은 걔네들
나름대로 미스한 것 있어. 걔네들 말대로 했다고 피박쓴 것도 있고. 또 걔네들과 다르게 우리가 독자적으로 추진했다고 항상 실패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의 뚝심으로 밀어부친 것들이 나중에 성공을 가져와서 1968년 이후에는 미국의 개입과 간섭을 현저하게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어.
그 실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포철 등 국가 기간산업 완성이지. 미국이 얼마나 반대한 줄 알아? 니네 주제에 무슨 고속도로며, 제철공장이냐 이거지. 그런
돈있으면 기존 공장들이나 수리하라고. 미국은 소비재 중심의 경공업을 발전시켜 비교우위의 상품을 많이 만들어 수출하라고 틈만나면 개입을 했지. 그
양반들 조언대로 했으면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겠어?
미국은 해방직후 우리나라에 자본주의 체제를 이식하면서 엄청난 삽질을 많이 했고, 특히나 PL480이라는
잉여농산물 원조 따위의 정책을 추진해서 우리나라 농산물 가격의 폭락과 농업의 피폐를 가져오는 실책을 저질렀어. 이것은 강만길이나 박현채 같은
양반들도 인정하고 있지 않어?
박정희는
쿠데타 직후 이러한 농촌을 그냥 두고서는 국가발전이 없다는 걸 알았어. 농업 위기로 인하여 국내시장이 위축되고 따라서 자본형성을 위한 자금의
국내 조달이 곤란하다고 판단하여 제1차경제개발계획 원안에는 농촌소득의 증대를 포함한 농촌경제의 회복을 집어넣은 거야.
6. 동영상을 보면 박정희의
수출전략이라곤 토끼털 많이 깎아서 팔고, 생선을 많이 잡고, 돼지를 많이 잡아 내다 팔자는게 전부인 것으로 호도하고 있어. 그런데 계획의 원안을
보면 농촌 경제와 자급자립형 공업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안을 같이 내놓고 있는데, 동영상을 제작한 민문연측은 당시 경제상황이나 배경은
무시하고 지들 편리한대로 왜곡한거지.
초기 경제 개발시에는 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수출을 하고 싶어도 수출할 품목이 없어서 가발이나 생선의
간유(肝油), 미역, 톳, 토끼털 같은 이런 1차 산품위주로 짤 수 밖에 없었어. 니네 대가리에 든 그 허여멀건게 뇌가 맞다면 이게 비웃을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알겠지? 밥도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쳐먹는 니네라면 어땠을 거 같아? 돈이 되는 거면 무엇이든 팔아서 자본을 만들어야 했던
눈물겨운 살아남기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알턱이 없거니와 이런 것을 가지고 ㅋㅋ 거리는 병.신들을 보면 참 답이 안나오네. 박정희가 온갖 수모와 핍박을
받아가며 일구놓은 국부의 업적에 숟가락만 올려놓은 것들이 대선 시즌이 다가오자 집단적으로 뇌내병변이라도 온 것일까.
7.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자기들의 입안과 계획들은 언제나 한국에 주효했고, 그 결과 놀랄만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이런 천조국의 견해를 무시하는 박정희
정권에세 원조중단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했다는 식으로 나오지만, 조사의 결론에는 이런 말이 나와
"수많은 요인들이 이런 현저한
업적들에 기여를 했다. 무엇보다 가장 주요한 요인은 교육받은 근면하고 훈련된 한국 사람들 자신이었다. 한국 사람들이야 말로 한국의 가장 중요한
천연자원이었다. 한국정부는 경제성장에 주안점을 두고 확고한 신념으로 경제를 주도했기 때문에 (미국의) 신뢰를
얻었다."
8. 정책이라는 것은 아무리 신중하게 추진한다 해도, 성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음.
미국은 당시 박정희에게 이자율을 높여 저축률을 재고하면, 국내의 내자가 확충되어 산업투자가 증가할 것이라며 금융개혁을 촉구했어. 프레이저
보고서를 인용하자면,
"1965년 9월, 미국의 충고로 한국정부는 저축수준을 제고하기 위해 은행이자율을 30%로
인상시켰다. 그 정책은 명백히 성공적이었다. 1년 이내에 저축액은 3배가 되었다. 동시에 생산부문과 여러 산업체처럼 각 부서에 수출목표를
할당시키면서 이러한 개혁들은 병행되었다. 특혜금융, 수출특혜, 관세특혜, 수출증대 보상제들도 자발적인 수출상품 생산을 고무시켰다. 이 정책
도한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1964년부터 1966년에 걸쳐 수출액은 2배 이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자화자찬과는 별도로 몇페이지를 건너 이런 얘기도 나온다.
"이자율 또한 문제가 되었다. 1965년 이자율을 16%에서 30%로
인상하였지만그것은 문제를 파생시켰다. 즉 국외자본을 빌려오는 것이 더 싸게 먹히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고금리 정책은 실패로 귀결된 것임을 자인한 셈이지.
이 부분에 대해 좀더 첨언하자면, 미국의 이런 고금리
정책은 결과적으로 자본시장의 왜곡을 가져왔고, 사채시장과 암시장의 횡행으로 8.3조치가 있을 때까지 국민들과 일반 힘없는 중소기업들은 살인적
고금리로 비명을 지른 반면에, 각종 수출지원책으로 현금이 풍족했던 대기업들은 이들을 상대로 사채놀이를 하면서 벼룩의 간을 빼먹느라 영일이
없었지. 즉, 엄청난 금리의 인상은 미국의 의도대로 저축률의 급격한 신장은 가져왔지만, 조달비용의 증가로 저축이 투자로 이어지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한 셈이지.
9.
경제정책을 입안하면서 미국과 마찰이 잦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경제계획이라는 국가주도의 발전구상 자체가 일본식 관치경제의 산물인데다 미국식
신고전주의 경제적 관념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지. 그런데 동영상을 보면 마치 우리의 노력이나 능력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이 모든 성공이 미국의
개입과 지도 덕분인것처럼 말을 해.
웃기는 거
아냐? 미국식 종속경제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프레이저 보고서를 써먹을 때는 언제고, 이제와 경제발전은 천조국 미국느님의 덕분이라는 결론으로 포장을 하냐 이거지. 프레이저 보고서에도 나오지
않냐? AID를 위시한 미국식 개입은 1970년 들어서 현저히 약화되었다고.. 3차와 4차 경제개발 계획 입안시에는 미국의 조언없이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실행했다고 나와있어. 그런데 한국경제발전의 전부가 다 미국때문인거야? 니들은? 쓸개빠진 놈들 같으니.
10. 환율문제만 해도 그래. 고정환율 제도는 사실
미국이 해방직후 우리나라에 도입한 것이거든? 동영상에서는 비정상적 환율을 고집하는 박통 ㅋㅋㅋ 이런 나레이션을 하지만, 박정희 쿠데타 당시
수입대체산업 위주였고, 대충자금이라고 해서, 한국은행에다 예치하는 자금이 있어. 이 돈은 환율이 변동하면 갚아야 할 돈도 같이 쌓아야 하는데,
환율이 급격히 인상되면 대충자금 적립도 같이 늘겠지?
생각해봐. 박정희가 왜 환율을 가지고 고민했을 거 같니? 니들 대가리로 짱구 좀 굴려보라고. 단순히
물가인상의 압력을 식량원조라는 당근책으로 넘어갔다는 식으로 염.병삽질하지 말고.
11. 세재개혁은 어떨까? 미국은 당장 하라고 압력을.. 박정희는 좀 있다가.
미국은 그럼 원조 중단. 박정희는 쫄아서 당장할께. 이런 식으로 썰을 풀었던데.. 프레이저 보고서를 보면 "1963년도에 킬렌은 한국정부가 예산결손의 규모를 줄이기 위한
세제계혁을 단행할 때까지 9개월 간의 원조금 방출을 거부하였다. 그 결과 세수는 엄청나게 증가하였다"고 되어 있어.
그런데, 박정희는 킬렌이 AID 사무처장으로 부임하기 이전인 1961년 쿠데타 직후에 대대적인
세제개혁에 이미 착수를 한 상태이고, 1967년에 제2차 세제개혁을 단행하지. 세제개혁은 미국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킬렌이
원조자금방출을 거부한 것은 미국의 원조자금 지원정책이 의사일정 지연으로 처리가 안되서였고, 경제개발 계획에 비현실적이라거나 문제가 있어 지원을
안한 것은 별개의 사안이라고 봐야함. 이 부분은 프레이저 보고서의 오류인듯.
1963년 12월 24일자 경향신문
12. 결론적으로 말해서, 민족문제연구소가 이런 쓰레기 동영상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는 얘기는 지금껏 친일인명사전을 편찬, 간행하면서 지들 입 스스로 정파에 휘둘리지 않는 객관적 학문적 업적이라는 자화자찬을 스스로
무색하게 하는 쪽팔린 짓거리라는 걸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 자들의 의도와 정치적 파행은 이번 동영상으로 충분히 목도했으니, 그것이
나름의 성과라면 성과겠지.
출처 : http://parshas.net/bg/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