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김일성의 첫째 부인인 김정숙이 낳은 자식이며 김일성의 장남이다.
김정일은 1961년,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중일 때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데
이때 당시 북괴에서는 김일성이 정적인 남로당파, 연안파를 숙청하고 자신의 독재체제를 굳히고 있는 때였다.
김일성이 빠르게 정적들을 숙청하자 김일성에게 대항하는 세력은 거의 사라졌고
김정일은 내각 수상이며 아버지인 김일성의 뒷받침으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 과장, 선전선동부 부부장, 조직지도부 부장으로 고속승진하게 된다.
※북괴에는 '조선노동당'이라는 정당이 있다.
(북괴 내에서는 정치기관, 군대보다 '당'이 우선이며 제일이다.)
조선노동당에는 중앙검사위원회, 중앙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는데
중앙위원회는 휘하에 중앙군사위원회, 정치국, 비서국, 검열위원회 등의 기관을 둔다.
김정일의 직책명인 선전선동부, 조직지도부는 중앙위원회에 속해있는 기관이다.
1973년 9월
김정일은 자신의 가장 위험한 적수인 삼촌 김영주를 조직지도부 부장에서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김영주의 후임으로 김정일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부장직에 임명되었다.
1974년 2월, 공식적으로 김일성의 뒤를 이을 후계자에 임명된다.
이때 김정일의 나이는 42세였다.
아서 보니파스 대위는 후송 중에 사망하였고
마크 바레트 중위는 행방불명되었으나 제방 부근에서 찾아내 후송하였으나 역시 후송 중 사망하였다.
아서 보니파스 대위는 1976년 8월 20일, 귀국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발생한 북괴군의 만행으로 죽임을 당하였고 그는 가족들과 만나지 못 하였다.
마크 바레트 중위는 판문점에 부임한지 1달된 신참 중의 신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