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대통령 서거의 날 10.26

땅크나가신다 작성일 13.01.04 18:2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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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6을 계기로 박정희 대통령의 두터운 신뢰를 얻게된 차지철 대위(오른쪽)
또한 이때부터 박정희의 옆에서 그분을 지키는 임무를 맡았던 박종규 소령(왼쪽)
'피스톨 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박종규는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 경호실장직을 사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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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불의의 사고란, 1974년 8월 15일에 발생한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이다.

박종규 경호실장은 이 사건에서 영부인이 사망하게 된 책임을 스스로 물어 자진사퇴하게 되고
그 후임에 차지철 공화당 의원이 발탁된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니었다.
그런만큼 육사 출신 관료, 박정희 대통령의 측근들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고한다.
이에 그는 경호실장에 발탁된 이후에 막강한 권세를 휘두르게 되는데
 그 명목이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충성이었을 지라도 그의 횡포는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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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이었다.
차지철이 경호실장이었다면 중앙정보부에는 김재규가 있었다.

김재규는 5.16군사혁명 때 혁명주체세력(김종필, 박종규, 차지철 등)으로 참가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혁명 당시(1961년 5월 16일) 육군대학교 부총장이었는데, 反혁명세력으로 낙인 찍혀 모든 직을 박탈 당한다.
그런데, 김재규는 혁명의 주체인 박정희 소장과 동향(경상북도 선산군)이고 한국 육군사관학교 동기(2기)였다는 것을 알아낸다.

이에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 박정희 소장에게 찾아가서는 취직을 부탁하는데
박정희 소장은 김재규에게 대구중석(現 대구택)의 사장직을 주고, 후에는 육군 중장으로 예편할 수 있게끔 도와준다.
또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의 후임에 김재규를 임명하여 5.16에 참여하지도 않은 자에게 크나큰 권세를 누리게끔 해준다.

김재규의 시점에서 바라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운명을 뒤바꿔준 정말 최고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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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듯이 1974년에 차지철이 경호실장에 발탁되고 1976년에 김재규가 중앙정보부장에 발탁되자
두 사람은 자연스레 박정희 대통령의 신임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이게 된다.
그런데 이게 선의의 경쟁이 아니라 한명을 물어뜯어 죽이려는 살벌한 경쟁이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경호실장은 대통령과 같이 청와대에서 근무를 하지만, 중앙정보부장은 남산에 위치한 중앙정보부에서 근무를 한다.
또한 경호실장은 대통령을 호위하는 임무가 주어져있다.

차지철 경호실장은 김재규 중정부장보다 박정희 대통령에게 가까운 곳에 있어 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았으며
비서실장이든 중정부장이든 장관이든 박정희 대통령의 가족을 제외하고서는
박정희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서는 차지철 경호실장을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신변을 위해서'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차지철은 그 수준이 너무 지나쳤다.
실제로 차지철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올려지는 서류 또한 '독이 묻었는지 않았는가'하는 이유에서
자신이 먼저 검토한 후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하게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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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차지철에게 발탁되어 경호실에서 근무하던 전두환은 위의 짤방처럼 후에 증언하기를

"우군 싸움(차지철과 김재규의 대립)이 김일성이와의 싸움보다 더 심하다"

이렇게 평할 정도로 대립이 심했었다.
이에 전두환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하여 청와대에서 몸을 빼 군으로 복귀하게 된다.
차지철과 김재규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다.
실제로 이러한 전두환의 행보는 그가 후에 12.12쿠데타를 일으키는데에 크나큰 도움으로 작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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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은 삽교천 준공행사에 참석한다.
이 때 박정희 대통령을 수행한 사람은 차지철 경호실장, 김계원 경호실장.

김재규는?
김재규 또한 준공행사에 참석하여 박 대통령을 수행하려 하였으나
경호실장 차지철이 김재규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서 말하기를

"아, 김 부장? 1호기(대통령 전용 헬기)에 자리 없으니까 저기 뒤에 2호기에 타고 오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요!"

이 한마디에 김재규는 대통령 1호기에 탑승하지 못 했고 화가 나서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중앙정보부에 박혀 있는다.

삽교천 준공식을 마친 후에 비서실장 김계원이 박 대통령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각하, 오늘 궁정동에서 연회를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박 대통령은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고 차지철 경호실장을 불러 묻고 말씀하시기를

"차 실장, 김 부장은 왜 안 왔어? 김 부장도 오늘 오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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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철은 김재규가 참석하는 걸 싫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늘같은 박 대통령의 명령을 어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차지철의 연락을 받은 김재규는 오후 4시 20분에 궁정동 안가에 도착한다.
그리고서는 궁정동 안가에 배치된 자신의 개인 집무실에 있는 전화의 수화기를 들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하기를

"정 총장, 나 김재규입니다. 혹시 시간 되시오? 오후 6시 30분까지 궁정동 안가로 오시오. 식사나 같이 합시다."

이에 정승화는 김재규의 제안에 응하게 되고 "그렇게 하겠습니다."하고 대답을 한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6시 궁정동 안가

김재규는 박 대통령과 차지철보다 먼저 궁정동 안가에 도착한 김계원 비서실장과 사담을 나누게 되는데
김계원은 김재규만큼은 아니더라도 차지철에 대해 꼴불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차지철은 육사 출신이 아니어서 육사 출신들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김재규같은 경우는 육군 중장으로 전역을 했고 김계원은 육군 대장으로 전역을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차지철은 육군 중령으로 전역을 한 사람이기에 두 사람보다 그 계급이 한참 낮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둘이 차지철에 대한 흉을 보기 시작하는데
김재규는 그 분위기가 진지하고 심각한 반면 김계원은 그저 낄낄 거릴 뿐이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박 대통령이 궁정동 안가에 도착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두 사람은 황급히 박 대통령을 맞으러 나갔다.


(여기서부터는 심수봉의 증언에 따라 재구성된 내용)

가수 심수봉
은 TV프로그램 출연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오후 4시 30분경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심수봉과 만나 얘기를 나눈 후에 심수봉을 궁정동 안가로 데려간다.
심수봉의 증언에 따르면 그 때 차에서 신재순을 만났다고 한다.

심수봉은 오후 6시경 궁정동 안가에 도착하여 박선호 의전과장에게 보안각서를 써서 제출하였다.

그리고 오후 6시 40분경

심수봉은 신재순과 함께 박 대통령이 계신 궁정동 안가 연회장에 들어서게 된다.
박 대통령이 계셨던 연회장은 (나)동이다.

 

박 대통령 왼쪽이 심수봉, 오른쪽이 신재순
김재규의 옆에 앉은 사람은 김계원 비서실장

심수봉과 신재순은 박 대통령에게 인사를 드렸고 심수봉은 안면이 있는 차지철, 김재규, 김계원에게도 눈인사를 하는데
심수봉의 증언에 따르면 김재규는 심수봉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줄곧 무거운 표정이었다고 한다.
비서실장 김계원의 증언에 근거하면
당시 연회장 내에서는 '부마사태'에 대한 내용이 오고갔다고 한다.
오후 7시 10분

김재규는 연회장에서 나와 궁정동 안가 (가)동으로 가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김정섭 중앙정보부 제2차장보를 만났다.

"정 총장, 미안합니다. 생각보다 연회가 길어지고 있어요. 김 차장보께서 정 총장좀 대접하고 계세요."

김재규는 그렇게 말하고서는 자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고 자신의 집무실에서 권총을 가슴에 품고 연회장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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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0분

김재규
는 연회장 자리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부관이었던 박선호와 박흥주를 호출한다.
※박선호는 김재규가 교사로 재직 중일 때 가르쳤던 제자였다.

김재규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 둘에게 말하기를


"오늘 죽인다"


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놀랐다.


김재규 : 자네들 어떻게 생각하나? 나라가 잘못되면 다 죽는다. 각오는 돼 있나?


박선호 : 예. 각오가 돼 있습니다.


박흥주 : ….


박흥주가 망설이자 김재규는 권총을 보여주며 말하기를


김재규 : 총장(정승화)과 제2차장보(김정섭)도 와 있다. 오늘 결행한다.


박선호 : 각하도 포함됩니까?


김재규 : 그래.


박선호는 깜짝 놀랐고 김재규에게 암살을 미룰 것을 제안한다.


박선호 : 오늘은 경비원이 너무 많습니다. 다음으로 미루는게 어떻겠습니까?


김재규 : 안돼. 보안이 샌다. 똑똑한 놈으로 두세 명만 준비시켜.


박선호 : 그럼 30분만 주십시오.

김재규의 명령을 받은 박흥주 수행비서는 유성옥, 이기주를 불러 김재규의 계획을 말한다.

이 세명은 궁정동 안가 요리실의 주변에서 대기를 하게 된다.

이들의 임무는 '김재규의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요리실 내에 있는 경호원들을 진압하는 것'이었다.


박선호 의전과장은 '연회장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호실 소속 경호원 두명을 제압하는 임무'를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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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38분


김재규가 부하들에게 임무를 하달한 후에 연회장 자리로 돌아온다.
이 때 김재규는 품에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3분이 지난 오후 7시 41분

김재규
가 갑자기 옆에 있는 김계원에게

"형님, 각하를 좀 똑바로 모십시오!"

연회장 내의 분위기가 갑자기 이상해졌다.

김재규는 멈추지 않고 박 대통령에게

"각하, 이 따위 버러지같은 놈(차지철)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 정치가 똑바로 되겠습니까!"(신재순의 증언)

이렇게 말하고서는 총을 뽑아서는 차지철의 왼팔을 쏜다.
차지철은 경호실장이라는 사람이 총 한 자루 가지고 있지 않았다.
차지철은 총에 맞자 급히 총에 맞은 팔을 붙들고는 연회장 내에 있는 화장실로 도망쳤다. 

차지철은 도망쳤고, 김계원 또한 말없이 자리에서 황급히 빠져나갔다. (심수봉의 증언)
박 대통령의 옆에는 심수봉과 신재순만이 있을 뿐이었다.
김재규는 그렇게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가슴에 총을 쐈다.

?
각하께서는 아무 말씀없이 자세를 고쳐 앉고 고개를 조금 숙이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김재규가 각하를 향해 1발을 쏜 것입니다. (심수봉의 증언)

그 때 김재규의 권총이 갑자기 고장 난다.
이에 김재규는 새로운 총을 구하기 위해서 황급히 연회장에서 빠져나갔다.


그러자 화장실에 숨어있던 차지철이 문을 열고 나와서는

"각하, 괜찮으십니까?"

박 대통령께서는 가슴에 피가 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괜찮아

 

그 때 심수봉도 박 대통령에게

"각하, 정말 괜찮으세요?"

박 대통령은 심수봉에게

괜찮아

라고 말씀하시고는 이내 쓰러진다.

김재규의 총소리가 울려터지자 궁정동 안가 요리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박흥주, 유성옥, 이기주 세 사람은 그 총소리가 김재규의 신호탄인 것을 알았다.
총소리가 들리자마자 요리실에 무차별적 난사를 감행하여 요리실에서 놀고 있던 경호원, 요리사들이 대다수 사망한다.

권총을 바꾸기 위해 연회장에서 빠져 나온 김재규는 정인형, 안재송을 사살한 박선호를 만났다.
이에 김재규는 박선호의 총을 가로채듯이 가져가서는 다시 연회장으로 향한다.
그 때 연회장에 들어서자 김재규는 차지철과 맞닥뜨린다.
차지철은 주위에 있던 찬장을 이용하여 김재규를 제압하려 하지만,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먼저 총을 쐈고 차지철은 쓰러진다.
김재규는 피를 흘리고 있는 박 대통령에게 다가간다.
그리고서는 김재규는 박 대통령의 머리에 대고 총을 쏜다.
심수봉과 신재순은 이 모습을 보고 놀라서는 안가 부속실로 도망쳤다

 

김재규는 연회장 (가)동으로 달려갔다.
그리고서는 김정섭과 식사를 하고 있는 정승화를 붙들고서는

"정 총장, 큰일 났소! 빨리 자리를 떠야 하오! 빨리 나를 따라오시오!"

이에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당황한 정승화와 김정섭은 김재규의 다급함에 이끌려 황급히 궁정동 안가를 떠나게 된다.
세 사람이 (가)동에서 나오자 박흥주가 차를 몰고 와 세 사람을 태웠다.

이들이 탑승한 차량은 황급히 궁정동 안가를 빠져 나갔다.

 

김재규 일행이 궁정동 안가를 빠져 나가자 몸을 피했던 김계원 비서실장이 궁정동 안가 경비원 두 명을 대동하고 자리로 돌아와서는
황급히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국군수도병원으로 향하게 한다.

한편 김재규와 같이 동행하는 정승화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정승화가 김재규에게 묻기를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김재규가 정승화에게 엄지 손가락을 들었다 내리며

"이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정승화는 깜짝 놀랐다.

"사실입니까? 어떻게 돌아가셨습니까?"

김재규는 뻔뻔하게 거짓말하기를

"저격당하셨소."

 

김재규는 본래 정승화를 중앙정보부로 데려간 후에 사건을 장악하여
'차지철이 각하를 쐈다'고 공식 발표하여 자신의 죄를 덮어씌울 계획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심코 운전을 하고 있던 박흥주 대령에게 자신의 운명을 가르는 한 마디를 하게 된다.

"박 대령, 중정(중앙정보부)으로 갈까? 육본(육군본부)으로 갈까?"

그 때 정승화가 나서기를

"김 부장, 육본으로 갑시다."

그러자 박흥주도 얼떨결에

"육본으로 가는게 낫겠습니다."

이렇게 이들은 육군본부로 향하게 된다.

 

김계원 비서실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국군수도병원에 급히 모시고 갔다.
그 때 근무하고 있던 의사, 간호사들은 환자가 누군지도 모른 채로
바락바락 성을 내는 비서실장의 압박에 의해 그 환자를 치료하게 됐다.

"살려, 이 분은 무조건 살려야돼! 살려야만 해! 알아들어!"

그러나... 이미 박정희 대통령은 서거한 이후였다.
의사들이 고개를 젓자 김계원은 망연자실한다.

김계원은 자신을 수행한 두명의 경호원을 국군수도병원에 배치해놓고 박 대통령에게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국군수도병원에서 떠나 최규하 국무총리, 국무위원 등을 소집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한다.

얼마 후에 국군수도병원장 김병수 준장이 의사들의 보고를 받고 밤중에 병원에 도착한다.
김 준장이 환자를 확인하려 하자 경호원들이 이를 막았다.
 그러자 김 준장은 환자의 상처부위를 보기 위해 옷을 벗겼는데 낯이 익은 상처자국을 보게 되었다.

그렇다.
자신이 주치의 시절 봤었던 박정희 대통령의 흰색 상처자국이었던 것이다.

"각하, 그 상처는 어떻게..."

"아, 이거? 내가 어렸을 적에 불에 데인 적이 있었어. 그게 지금까지도 남아있어. 하하하

 

 

 

한편 청와대에 도착한 김계원급히 최규하 국무총리, 신현확 부총리 등 국무위원들을 소집한다.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은 최규하 국무총리였다.

"김 실장, 무슨 일입니까?"

"큰일났습니다.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범인은 김재규입니다."

최규하는 깜짝 놀랐다.
때 신현확 등 국무위원들이 속속 청와대에 도착한다.

국무위원들이 최규하와 같은 질문을 할 때였다.

김재규가 김계원에게 전화를 걸어 육군본부로 오라는 말을 한다.

이에 김계원은 국무위원들을 대동하고 육군본부로 향하게 된다.

이 때까지 김재규의 범행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최규하 국무총리
김계원 비서실장
박선호 의전과장
박흥주 수행비서
가수 심수봉
모델 신재순

그런데 문제가 된 것이 하나 있다.
대통령 유고 시에 그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 최규하가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무위원들이 육군본부에 도착하자 김재규는 열을 내며 주장하기를

"계엄령을 선포해야합니다"

그러자 부총리 신현확이 화를 내며

"대통령이 어디 계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계엄령을 선포합니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때 김계원이 나섰다.

"각하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

이 김계원의 한 마디에 당시 육군본부에 있던 국무위원들, 장성들은 모두 멘붕했다.
그런 와중에 신현확이 김계원에게 물었다.

"각하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국군수도병원에 계십니다..."

이에 자리에 모여있던 이들은 모두 국군수도병원으로 가 박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그 때 김계원이 은밀히 신현확 부총리,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불렀다.

그리고서는 말하기를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했습니다. 김재규가 범인입니다."

이에 신현확은 김계원에게 왜 진작 이 사실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질책하고
김계원은 "박흥주(김재규 수행비서)가 나를 감시하는데 어떻게 말을 합니까..."하며 변명한다.

결국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육군본부 내에 있는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김재규와 박흥주의 체포를 명령한다.
김재규와 박흥주는 저항 한 번 해보지 못 하고 체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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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된 재규는 법정 최후진술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향해 쐈다"고 발언하였으나
이는 박 대통령 서거 직후 민주화의 물결이 불 것을 예상, 그 세력에 의해 자신이 구제받기 위해 꾸민 거짓말에 불과하다.(김종필씨의 증언도 김재규가 차지철과 충성경쟁을 벌이다가 밀린 김재규가 일을 저질렀다고 함)

김재규1980년 5월 24일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


박흥주는 현역 군인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사형당했다. 1980년 3월 6일 총살형으로 사형 집행


박선호1980년 5월 24일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


유성옥1980년 5월 24일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


이기주1980년 5월 24일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


김태원1980년 5월 24일 교수형으로 사형 집행


유석술징역 3년 복역 후 출소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 김계원사형선고를 받았으나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 후에 특별사면으로 풀려나 지금까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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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1월 3일 오전 10시 중앙청 앞

박정희 대통령의 국장이 거행되었다.
국장에는 유족과 41개국 조문사절, 각계인사 3천명이 참석했다고 한다.(위키백과)
전국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2,000만여명 이라고 한다

 

 







흥x쟁이님의 글중 일부를 첨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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