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되기까지 -이명박-

땅크나가신다 작성일 13.01.11 10:4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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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노무현에 이은 이명박 대통령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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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 이명박(李明博) 1941. 12. 19~

1941년 12월 19일,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인 이충우는 조선에서의 삶이 너무 어려워, 일본으로 건너갔고 일본 내에서 일용직 노동을 하는 사람이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망하자 1945년 11월, 이명박 일가는 일본을 떠나 경상북도 포항으로 귀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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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당시 9세이던 이명박은 미군의 오인 폭격으로 눈앞에서 누나와 동생을 잃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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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의 유년 생활은 매우 가난하여 술집에서 술지게미를 받아다가 끼니를 때울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이명박의 주위에만 가면 술냄새가 났고, 이명박은 학교에서 술냄새가 난다고 놀림을 받았었다고 한다.

이명박의 어머니인 채태원은 이명박에게 평소에 말하기를,

"너는 우리 집안이 많이 어려워 모든 자식들을 교육시키지 못 한다는 것을 잘 알거다."

 "너는 장남인 네 형(이상득)을 위해서 살아야한다."

이에 이명박은 동지중학교를 졸업하는 것을 끝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려 했다.

하지만, 이명박의 담임 선생님은 이명박에게 말하기를

"명박아, 상고에 진학하는건 어떻겠니? 네 성적이라면 상고에 진학하면 3년간 장학금 받으며 공부할 수 있어."

이에 이명박은 동지상업고등학교 야간부에 진학하게 되고, 3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게 된다

 

이명박은 야간에는 학교에 나가 공부하고, 아침과 낮에는 여고 앞에서 과일 장사를 했다.

이명박의 자서전인 '신화는 없다' 를 읽어보면 대략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는 여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과일 장수를 하게 되었는데, 여학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밀짚 모자를 푹 눌러 쓰고 있었다.'

'어느 날은 리어카에 과일을 싣고 가다가 리어카가 차에 부딪혀 과일이 쏟아진 일이 있었다.'

'차 주인은 나에게 뭐라고 고래고래 소리쳤고, 지나가던 여학생들은 나를 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나는 너무나도 창피하여 쓰고 있던 밀짚모자로 내 얼굴을 가린 채로 과일을 주워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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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동지상고를 졸업한 이후에 고려대학교 입학 시험에 응시했다.

이명박의 자서전인 '신화는 없다' 에는 이명박이 고려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에피소드가 나온다.

하지만, 형편이 되지 않았기에 이명박은 생각했다.

'고려대학교 입학 시험에 도전해보자. 합격하여 등록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중퇴로 여겨지겠지.'

하지만, 이것은 이명박의 크나큰 착각이었다.

주위 사람들이 말하기를,

"야, 이놈아. 등록을 안 하는데 어떻게 중퇴가 돼? 등록을 하고 자퇴를 해야 중퇴가 되든가 말든가 하지."

이에 이명박은 실망하였다. 하지만, 이왕 시험을 치루기로 한거 시험을 치루었는데

이명박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하게 된다.

 

이명박은 고려대학교에 경영학과에 입학하고 2학년 때에 군에 입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유는 공부하랴, 돈벌어서 생활비에 보태랴 하는 삶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의 자서전에서 이명박은 밝히기를,

"군의관은 나의 몸을 보더니 면제 판정을 내렸다."

"나는 이의제기하며 군에 입대하기를 희망하였으나 의사가 군대가 환자 돌보는 병원인 줄 아냐면서 핀잔을 주었다..."

 이명박은 3학년 때, 경영학과 내 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다.

하지만, 이명박의 집안은 가난했기에 선거에 쓸 자금(?)이 없었다.

이에 이명박은 도와주는 이 없이 홀로 유세를 펼쳤고, 상대방 후보와의 토론회 or 연설회 등에서 점점 주목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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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사진이 아니란 설도 있음

사진에 보이는 배경이 강남터미널 건너편 한신아파트쪽인데 그쪽에 아파트가 들어선 시기가 70년대 후반이나 80년대 초반이라고 함 해당 사진이 찍힌 시간의 범위는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이명박이 현대건설 입사한 시기가 1965년, 1977년에는 현대건설 사장이 되지 현대건설 사장이 저꼴로 돌아다닐 가능성은)

끄응 사진이쫌


이에 상대방 후보측에서는 이명박에게 돈을 주며 말하기를,

"그 정도면 너의 이름을 많이 알린 격이 되지를 않느냐? 이 돈 받고 이제 그만 물러나라."

하지만, 이명박은 이 돈을 받지 않았고 결국 선거에서 당선되었고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학생회장에 당선된다.

이명박의 자서전에서 이명박은 밝히기를,

"과 내의 학생회장 선거는 직접 선거였지만 총학생회 회장 선거는 대의원들의 간접선거였다."

"나는 학교 내에 인맥라인이 없었기에 출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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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6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의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이 모여 시위를 벌였고 이명박 또한 경영학과 학생회장 신분으로 참석하였다.

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이명박은 지명 수배자가 되었으며 경찰의 눈을 피해 지인들의 집을 옮겨다니며 피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이명박은 '나 때문에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는 생각으로 경찰에 자수하게 되고, 결국 재판을 받게 된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의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이 수감중일 때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셨는데 하시는 말씀이

"명박아, 네가 네 형보다 낫다." 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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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6.3시위로 인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간 서울교도소에 복역하였으며,

이명박은 복역 후에 현대건설 입사 면접에 응시하였는데

이명박의 자서전에서 이명박은 밝히기를,

"사원 면접에 사장인 정주영 사장이 사원복을 입고 나와 있었다."

"그는 내게 '건설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했고,"

"나는 '창조라고 생각합니다. 무(無)에서 유(有)가 되기 때문입니다.' 라고 했더니"

"정주영 회장은 껄껄껄 웃으면서 '요즈음 친구들은 말을 참 잘 해.' 라고 하였다..."

이명박은 1965년 현대건설에 입사하게 되었고,

1967년에 대리로 승진

1970년에 이사로 승진

1977년에 사장으로 승진

1988년에 회장으로 승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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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1970년, 김윤옥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에서 항쟁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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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경호실장인 차지철은 이명박을 비롯해 과거, 반정부 시위에 가담하여 전과가 있었던 자들을 청와대로 소집한다.

이명박의 자서전에 이명박은 밝히기를,

차지철이 말하기를

"너희들, 각하께서 지금 얼마나 힘들어 하시는 줄 알기나 해!"

하면서 뭐라고 적힌 쪽지를 거기에 모인 자들에게 돌리게 됐는데,

이명박이 읽어보니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을 찬양하고 자신의 죄를 자아비판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이에 거기에 모인 자들은 하나같이 이를 외우고 있었는데, 얼마 안 있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자리에 나타나게 된다.

일동은 한명씩 번갈아가면서 차지철이 건네주었던 내용의 쪽지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좔좔좔좔 외우는데,

그 자리에 있던 노인 한 명이 말하다가 까먹어서 말문이 막히고 만다.

이에 그 자리에 출석한 일동은 모두 긴장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웃으면서 말하기를

"까먹으셨군요?"

라고 하고서는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이명박은 자신이 본 박정희 대통령은 초췌하고 많이 늙어보였다고 했다.

얼마 안 가 박정희 대통령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암살당하여 서거한다.

이명박은 1992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이명박의 자서전에 이명박은 밝히기를,

"나는 정주영 회장에게 김영삼에게 자금 조달을 하며 지원을 하라고 했으나 정 회장은 듣지 않았다."

정주영은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여 3위의 기록에 그치고 만다.

이명박은 1992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여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이명박의 자서전에 이명박은 밝히기를,

"나는 정주영 회장에게 김영삼에게 자금 조달을 하며 지원을 하라고 했으나 정 회장은 듣지 않았다."

정주영은 14대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여 3위의 기록에 그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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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종로구에 출마한다.

그 때, 자신의 상대로 나온 이종찬과 노무현을 상대로 승리하였으나

얼마 안 가 측근인 김유찬의 선거비용 논란 문제로 자진 사퇴하게 된다.

재보궐 선거에서 이명박의 빈 자리는 노무현이 차지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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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명박은 서울시장에 당선되었고

청계천 복원 공사, 숭례문 개방, 대중교통 버스 카드 제작등 활동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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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명박은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승리하여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다.

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은 정동영 후보,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된다.

<대한민국 제 17대 대통령 선거>

유권자 : 37,653,518 명

투표자 : 23.690,385 명 (62.9%)

이명박 후보 : 11,492,389 표 (48.7%)

정동영 후보 : 6,174,681 표 (26.1%)

이회창 후보 : 3,559,963 표 (15.1%)

위키백과, 이명박 자서전 <신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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