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의 발화점 김주열을 기억하는가? 부정선거 무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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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이 자 보다 더 심각하고 심층을 헤아릴수 없는 죄인도 없다 할 이승만 이 잔악무도한 자가 3.15 부정선거를 하고 급거 좀도둑처럼 도망치게 했던 4.19혁명 그 발화가 김주열의 주검이였다. 이승만은 체포하여 국내에서 조사했어야 했다. 얼마나 큰 여죄가 있었는 지 뒤도 안돌아보고 도주했다. 존과 루이처럼 목을 배어 버렸다면 부정한 역사의 재귀는 없었을 지 모른다.
김주열의 주검사진 몇 컷으로 헌정질서를 파괴하고 헌법이 보장한 참정권을 무참히 짖밟은 부정선거 끝을 말하고자 한다.
김주열(金朱烈, 1944년 10월 7일 ~ 1960년 3월 15일)은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에 참여했다가 사망한 학생이다.[1]
27일동안 행방불명이었던 김주열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중앙부두에서 발견되었다.[2]
전라북도 남원군 금지면 옹정리에서 3남 2녀 중 둘째 아들, 넷째로 태어나 1956년에는 용지국민학교(현 금지동초등학교) 졸업하였고, 3년뒤에는 남원 금지중학교를 졸업하였고, 마산상업고등학교(현 마산용마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 규탄 시위 참가 후에 실종되었다가 4월 11일 부산일보 허종 기자의 기사에 의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시신이 발견되면서 그의 죽음과 참혹한 시체의 발견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3] 묘는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구암동 국립 3.15 민주묘지에 있다. 실묘는 그의 고향인 전북 남원시 금지면에 있다.
사후 김주열을 기리는 범국민장이 50년 만인 2010년 4월 11일 마산중앙부두에서 거행되었다.[4]
<참조인용 : 위키백과>
<사진출처 : 4.19 기념도서관 >
"진실은 거짓을 이긴다. 역사는 그것을 입증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