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국정원 ‘거세’ 이유는 ‘권력 애완기구화’
1998년부터 시작된 국정원 대숙청은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갖고 있던 일말의 야성까지 없애버린 사건이다.
제2공화국 때 중앙정보위원회로 시작한 우리나라 정보기관은 중앙정보부를 거치면서 세계 유수의 정보기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 됐었다.
냉전 시절에는 서방 정보기관들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대북첩보, 대공산권 정보수집에서 뛰어난 역량을 드러냈다.
중앙정보부 시절에는 AIU(육군첩보대), UDU(해군첩보대), OSI(공군첩보대) 등과 함께 북한에 휴민트(HUMINT)를 보내 스파이망을 구축하고, 해외에서 다양한 비밀공작을 펼쳤다.
냉전이 절정이던 제5공화국 때는 대북침투용 코스모스급 잠수정을 도입하고, 신세기함과 신천지함을 건조했다.
정보요원들의 공작비용도 ‘넉넉하게’ 지급했다.
“너희가 과거에는 군사권력의 시녀였으니 이제는 우리의 시녀가 돼라.”
'슬픈 일'은 이런 권력층에 호응하며 자기 역할을 잊어버린 국정원 요원들도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의 아프간 납치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테러조직과는 공식협상을 해서는 안 된다'는 서방국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으로 "탈레반과 협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2007년 샘물교회 선교단 납치 당시 '선글라스맨'과 김만복 국정원장. 정보기관 요원이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놓고도 '해맑게' 웃고 있다.이어 김만복 국정원장이 직접 아프간 현지로 가는 등 국정원이 나서 탈레반과 협상을 했다.
국정원은 탈레반에게 수천만 달러 상당의 '몸값'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들어간 돈이 국정원의 '특별활동비 예산'이라는 소문도 세간에 퍼졌다.
김만복 당시 국정원장과 그 옆에 선 '선글라스맨'의 태도도 세계 정보기관의 비웃음을 샀다.
국정원장이 현지 백색요원(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정보요원)도 아닌 비밀요원을 옆에 세워놓고 세계 언론들 앞에서 '자랑질'을 해댄 것이다.
국정원 현장요원들 사이에서는 '최악의 언론플레이'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이후 우리나라 정보기관들은 '테러와의 전쟁' 중이던 서방 정보기관들과의 협조관계가 눈에 띠게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던 시기 국정원 요원 채용도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 노량진 등에는 ‘국정원 대비 학원’이라는 게 생겼다.
국정원 출신도 아닌 강사들이 이상한 말을 퍼뜨려 대중에게 잘못된 ‘국정원상’을 심어줬다.
“방송국이나 공사 시험 준비하다가 국정원에 간 사람이 많다.
국정원도 다른 곳과 별반 차이 없다.
그냥 공무원 조직이다.
사명감?
그런 거 안 중요하다.
성적만 좋으면 된다.
좋은 곳에 배치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것 같은 힘들고 어려운 일 그리 많지 않다.”
‘국정원 대비 학원’들은 자기네가 합격시킨 사람 명단 일부를 인터넷에 공개하기도 했다.
그래도 국정원은 이런 학원들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우수한 인재’를 찾는다며 공채와 특채를 진행했지만 국정원에 지원하는 이들 중 ‘애국심’이나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스펙’이 최고라는 말만 돌았다.
이런 상황이 언론을 통해 ‘바깥’에 알려지면서 전 국민이 국정원을 우습게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계를 넘나들며 목숨을 걸었던 국정원 요원 이야기는 ‘구전’으로 남게 됐다.
세계 테러조직의 저승사자 모사드, 부활 이야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고생했던 국정원 요원들은 이때를 [돼지로 살던 때]라고 부른다.
나오는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괜히 권력의 눈 밖에 나는 일을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런 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니 국정원이 자랑하던 ‘대북 인간정보(휴민트)’ 능력과 비밀공작능력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2011년 2월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사건도 그 결과다.
거의 비슷한 경험을 했던 이스라엘 모사드를 살펴보자.
모사드는 1930년대 시오니즘 운동 때 활동하던 무장조직 ‘하가나’, ‘팔막’ 요원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이스라엘 독립 후 군과 내무부, 외교부 정보기관들이 불필요한 경쟁을 벌이자 총리실이 직속 정보기관을 만들어 교통정리를 한 것이다.
정식 명칭은 ‘중앙공안정보기관(ha Mossad le Modiin ule Tafkidim Meyuhadim)’이다.
인원은 2000년대 들어 1,500여 명으로 늘었다.
국정원의 ○분의 1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은 ‘머릿수’에 연연하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유대인 협조자(Sayanim) 수만 명이 이들을 헌신적으로 돕기 때문이다.
“나는 레바논에 참전했을 때 가문끼리의 싸움이 초래한 비참한 결과를 본 적이 있다.
한 족장의 머리가 깨져서 뇌가 거리에 흩어져 있었다.
주변에는 족장의 부인과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있었다.
이때 살아남은 한 아이가 족장의 뇌수를 한 움큼 쥐더니 집어삼켰다.
이것이 레바논 사람들이 가문끼리의 싸움에서 하는 행동이다.뇌를 먹어 삼켜라.
그렇게 힘의 근원을 취하라.
나는 여러분의 뇌가 다른 자들에게 먹히기를 절대 바라지 않는다.
뇌를 먹는 사람은 여러분이어야 한다.”
다간 국장은 취임과 함께 하루 14~18시간씩 일하며, 직접 현장을 뛰며 솔선수범을 보였다.
그의 행동으로 ‘무기력’했던 모사드는 새로운 개념의 [테러와의 전쟁]에서 다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때 모사드가 ‘과거’에서 발굴한 무기는 [예방]과 [보복]이라는 목표, 그리고 [최고의 인간첩보] 능력이었다.
모사드 "깡패들에게는 말로 하지 않는다."
그들의 부활을 알린 사례 중 우리나라에서 '공작'을 펼친 것도 있다.
2004년부터 시작한 '북한-시리아 핵커넥션' 저지 공작이다.
2004년 4월 22일 남포로 향하는 북한 열차 한 대가 폭발했다.
당시 언론에는 화공약품 폭발로만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은 달랐다.
폭발한 열차에는 납 등으로 밀봉한 화물칸과 함께 12명의 시리아 과학자가 타고 있었다.
시리아 과학자는 폭발 사고로 모두 사망했고, 북한 당국은 화생방 방제요원을 보내 폭발사고 주변을 격리한 채 방제작업을 벌였다.
모사드는 이 열차에 55㎏의 플루토늄이 들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2004년 여름, 모사드 비밀요원들이 서울로 날아왔다.
이들은 모사드 요원임을 숨기고 탈북자들을 만났다. 그 중 북한 395공장에서 생산 지배인이었던 탈북자를 만나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과 수출에 대해 파악한다.
이 탈북자는 북한 395공장에서 생산하는 미사일 유도장치에 들어갈 부품을 일본인들이 수출하고 있다는 사실과 북한 전역에서는 20여만 명이 핵무기와 화학무기, 생물학무기를 만들고 있다는 구체적인 첩보를 제공했다.
모사드 요원들은 서울에서 북한의 무기 수출 커넥션에 대한 정보를 꾸준히 수집했다.
2005년 9월에는 북한청천강무역회사가 이란에 로켓 액체 추진체를 수출했다는 첩보도 입수했다.
시리아와의 무기 커넥션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북한은 시리아에 스커드-C 미사일 60여 기를 수출했다.
2005년 10월 18일 메이어 다간 모사드 국장이 중국 베이징을 찾았다.
다간 국장은 중국 정보당국에 "북한이 이란과 시리아에 대량살상무기 수출을 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같은 달 모사드는 북한이 H5N1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무기로 만들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이 무기가 이란이나 시리아 손에 들어가면 이스라엘은 심각한 위협에 빠지게 된다.
모사드는 중국이 움직이지 않았다고 판단, 북한과 이스라엘 커넥션을 막겠다고 결심한다.
2007년 9월 3일 시리아 타루투스항.
한 사람이 항구로 들어오는 1,700톤급 화물선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화물선 이름은 '알 하메드'. 태극기가 달려 있었다. 인천항에 등록된 배였다.
'알 하메드'호는 북한 남포항을 출발, 인도양을 가로질러 희망봉을 돌아 타루투스항에 들어왔다.
'알 하메드'호는 항해 중 국기를 바꿔 달고 선박 등록처를 인천으로 꾸미기 위해 이름을 바꿨다.
이 화물선에는 북한에서 생산한 플루토늄이 실려 있었다. 플루토늄은 곧 시리아군 트럭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다.
2007년 9월 5일 오후 11시 59분 이스라엘 공군 69비행전대 기지에서 5대의 F-15 I 전투기가 떠 올랐다. 비슷한 시각 이스라엘 최정예 특수부대 '사예렛 매트칼' 요원들이 시리아 핵시설 인근에 잠입했다.
1시간 20분 뒤 올메르트 수상은 작전명 'Sunburst'가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리아 핵단지 폭격이 성공한 것이다. 여기서 일하던 시리아와 북한 핵기술자들도 모두 사망했다.
이 작전 외에도 모사드는 지난 10년 동안 다양한 암살 및 파괴공작을 성공시켰다.
그 결과 모사드는 세계 테러조직이 가장 두려워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났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훨씬 적은 예산과 자원, 인원을 가진 모사드가 [테러와의 전쟁]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이에 정보 관계자들은 [실전감각]과 [야성]을 꼽는다.
‘임무수행에 목숨을 건다’는 말이다.
국정원이 모사드와 같은 [야성]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쉽지만 실행은 무척 어렵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안보기관은 북한이 '사고'를 저지를 때마다 "좌시하지 않겠다"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좌시(坐視)'하지 않고 '입시(立視)'만 하면 되나?
미친 김정은 정권의 행패를 언제까지 지켜만 볼 건가?
모사드가 테러조직의 저승사자가 된 이유는 간단하다.
누군가 협박하면서 까불면 인정사정 없이 그냥 패 버린다.
'미친 북한'의 핵문제가 점점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국정원의 [야성 부활]이 시급하다.
출처:뉴데일리
??분명 중앙정보부 및 안기부가 과거에 정권의 불법적인 일을 한 전과가 있음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안보에 기여한 것은 절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라 사려됩니다.
마치 식칼을 무기삼아서 강도질을 한다고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식칼을 무디어지게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좌파/우파........ 안보에서는 이것을 따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과의 관계가 어떻든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눈은 최고의 시력을 유지하여야하고 몽둥이는 윤이나게 반질거리게 닦아놓아야 한다는 것은 상식일 겁니다.
힘없는 평화는 오히려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