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장악 의도 없다”?···행동으로 보여줘! [오주르디님 글]
연일 강공이다. 여야가 제대로 얘기할 틈도 없다. 새누리당을 제치고 박 대통령이 직접 야당과 맞서는 형국이다. 종합유선방송(SO)과 관련된 권한을 정부가 행사해야 한다며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 이관을 요구하고 있다.
여야 협상 불발, 선수치는 대통령 때문?
여야가 협상을 재개하기로 한 지난 12일, 이 날도 대통령이 앞질러 ‘원안 고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여야는 앞서 “서로 상대방이 주장하는 안을 담은 대안을 가지고 12일 협상에 임하자”라고 약속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의 주장대로 SO를 정부가 가져는 대신, 여당은 SO 이관 요구가 방송장악과 무관하다는 ‘물증’을 민주당의 손에 쥐어 주기로 한 것이다.
민주당이 정부가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면 이 정도는 들어달라고 내놓은 제안은 세 가지다. ▲공영방송 이사 추천시 방통위원 2/3 찬성으로 의결 ▲MB정권 언론장악과 관련한 국회청문회를 개최 ▲김재철 MBC 사장의 사퇴 등이었다. 새누리당이 일차 이 제안을 거부했지만, 다시 만나 수정논의하기로 약속한 날짜가 지난 12일 이었다.
바로 그날 박 대통령이 선수를 쳤다. 12일 서초동 소재 IT벤처기업을 방문해 미래부를 거론하며 “(정부조직법개정을 거론하며) 타협과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SO의 정부 이관이 담긴 ‘원안 통과’를 또 다시 주장한 것이다. 야당의 제안을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완벽에 가깝다. 이러니 어떻게 ‘이명박근혜’ 정권의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사심 없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대통령의 전위부대로 전락한 새누리당이 어쩌겠는가. 12일 협상에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민주당 우원식 수석부대표는 대통령과 새누리당을 향해 “헛된 이중 제스처를 취하지 말라”며 “안보 선풍 속에 민주당의 백기투항을 강요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연타를 날렸다. 어제(13일) 국가원로를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하면서 “사심 없이 경제부흥에 대한 일념으로 오랜 숙고 끝에 (미래부)를 만든 것인데 새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려고 한다는 주장이 있어 안타깝다”며 “그것(방송장악)은 있을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또 다시 ‘원안 아니면 절대 안 되며 야당의 제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대단한 불통이다.
박 대통령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SO까지 정부로 이관되면 MB정권에 이어 두 번째 단계의 방송장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최소한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SO가 정부로 돼서는 안 되고 그나마 정부의 영향력이 적게 미치는 방통위에 둬야 한다는 민주당의 판단이 옳다.
SO를 정부가 가져가면 제2 방송장악 ‘식은 죽 먹기’
SO는 채널배정권을 통해 PP(방송채널사용업자)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황금채널을 배정할 수도 있고 시청률이 떨어지는 뒷 채널로 밀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O는 5년마다 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허가권이 미래부로 넘어갈 경우 SO가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정부가 SO에게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SO는 채널배정권 등을 통해 정부의 입맛에 맞게 PP를 움직일 수 있다. 결국 SO와 PP는 정부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에 순종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SO 자체도 지역뉴스를 내보낼 수 있으며 선거 토론회 등을 개최할 수도 있다. SO 가입자수는 1500만. SO가 정부의 손에 들어가면 MB정권보다 더 치밀한 방송장악이 가능해진다. 제2의 종편이 무더기로 탄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는 게 진정이고 꼭 SO를 정부가 가져가야 할 상황이라면, SO 대신 KBS와 MBC 등 공영방송의 공정성이라도 담보해 달라는 게 민주당 제안의 요지다. 민주당 제안대로 실행된다면 공영방송 이사 선임에 정당 등 정치권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제안 아닌가.
MBC-KBS 만신창이, 방송장악 때문
공영방송이 만신창이가 된 이유가 있다. 정당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행태에 의해 KBS와 MBC(방송문화진흥회), EBS 등의 이사들이 선임된다. 집권다수당일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공영방송을 멋대로 주무를 수 있는 구조다. KBS와 YTN사태, MBC 사태 등은 MB정권과 새누리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하려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KBS와 MBC(방송문화진흥회)이사 선임권이 있는 방통위원은 5명. 이중 3명은 대통령과 여당이, 2명은 야당이 지명하거나 추천하도록 돼 있다. 의결 정족수가 과반이면 정부여당의 입맛에 맞는 인물로 채워지기 십상이지만, 정족수를 2/3으로 높일 경우 위원 4명 이상 동의가 필요하게 돼 여당의 전횡이 사라지게 된다. 여야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중립적인 인물이 이사로 선임될 수 있어 자연스럽게 정치편향 시비가 해소될 수 있다.
KBS와 MBC가 국민을 위한 공영방송이 아니라 정권을 위한 방송으로 전락했다. 게다가 종편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정권의 ‘홍보매체’ 역할을 한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뉴스를 내보내는 방송이 사라졌다. 오죽하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국민TV’를 만들려 하겠는가.
민주당 제안, 유력한 ‘해법’될 수 있는데도
노조는 공정방송을 부르짖고 사측은 잔혹하게 노조를 탄압해 왔다. MBC 기자 9명, YTN 6명 등이 해직됐다. 김재철 MBC 사장은 온갖 추문에도 버티고 앉아 공정방송을 주장하는 앵커와 아나운서로부터 마이크를 빼앗고, 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빵 만들기를 시키고 있다. 익숙한 얼굴들 다수가 사표를 냈으며, 지금도 37명이나 되는 직원들이 방송 일선에서 밀려나 황당한 교육을 받고 있다.
▲비밀리에 외주제작하고 있는 '박정희 미화 다큐' 제작 중지를 요구하는 노조원들(출처: KBS노조)
정권의 입맛에 맞는 프로그램 제작에 매달리기도 한다. KBS가 박정희를 미화하는 현대사 다큐멘터리를 봄부터 편성하겠다고 하자 노조와 PD·기자협회가 크게 반발하며 시위를 벌였다. 외주제작사를 통해 비밀리에 ‘박정희 미화 다큐’를 만들면서 일부 시사프로그램을 폐지하려 하는 사측을 향해 노조는 “편파방송 종결자 길환영은 각성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노종면 해직기자가 속해 있는 YTN노조는 MB정권의 ‘YTN불법사찰’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을 횡령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노조는 “MB정부가 사장 교체, 인사 개입, 노조 탄압 등을 통해 KBS·MBC·YTN 등을 장악 대상으로 삼았다”고 규탄했고, 노종면 해직기자는 “MB를 감옥으로!”라는 멘트를 자신의 트위터에 남기기도 했다.
“방송장악 의도 없다”? 행동으로 보여라
정부조직법개정을 놓고 여야가 출동하는 이유가 뭔지 들여다보면 논란의 크기에 비해 사안이 단순해서 헛웃음이 나올 정도다. SO 때문에 이런 소동이 벌어지다니 어처구니없다. 국가의 미래가 SO에 달렸단 말인가. 여당의 협상권까지 좌지우지하려는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의회정치가 실종된 ‘파쇼정권’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난다.
“(SO를 통한) 방송장악 의도가 없다”는 말이 진정이라면 야당의 제안 가운데 한 두 가지라도 받아들이는 게 이치에 맞는 행동이다. MBC가 만신창이고, KBS가 몸살을 앓고 있다. 그 원인이 공정성을 훼손한 방송장악에 있는데도 딴전을 피우며 관심을 두지 않는 ‘이명박근혜’ 정부의 대통령. 이러니 “없다”는 말이 “있다”로 해석되는 거다.
민주당의 제안에는 방송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해법’이 담겨 있다. “방송장악 의도 없다”는 게 진정이라면 말로 아닌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박 대통령 자신의 말이 진실하다는 걸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방통위법령 개정은 점차 논의한다고 하더라도 MBC 사장의 사퇴 요구와 언론청문회 등을 즉각 받아들이면 된다.
진심을 입증할 수 있는 단순한 행동 한 가지조차 보여주지 않는데 어찌 그 말을 신뢰할 수 있겠나. “방송장악 의도 없다”는 말이 진심이라면 입증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라도 해보란 얘기다. 마땅한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의 말은 ‘죽은 허언’이나 다름없다. 성서에 나오는 말이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