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쉬신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 늑장보고
지난 2008년 금강산 여자 관광객 피살사건때 이명박 대통령이 쉬고 있다는 이유로 사건 보고를 100분이나 늦춘 사실이 드러나, MB정권의 안보위기 관리 능력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이었나를 재차 실감케 했다.
27일 <중앙일보>에 따르면, 2008년 7월 11일 오전 11시40분. 청와대 엄종식 통일비서관이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실 문을 두드렸다. “금강산에서 우리 여자 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는 급보를 전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청와대 전 고위당국자 Q씨는 “청와대는 10여 분에 걸친 확인작업 끝에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됐다는 것을 최종 확인했습니다. ‘질병에 의한 사망일 수 있다’는 보고 등이 올라와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2시간 정도 늦어졌다는 당시 언론보도는 사실이 아닙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왜 지연됐을까. 이와 관련해 처음으로 입을 연 Q씨의 증언에 따르면 늑장 보고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다.
“김 수석이 정정길 비서실장에게 보고했고, 정 실장은 김 수석에게 VIP(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김 수석이 부속실에 전화를 걸었더니 ‘잠시 쉬고 계신다’는 답변이 오자 김 수석이 보고를 점심 식사 이후로 미룬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 수석은 이에 대해 “당시 상황이 복잡해 더 알아볼 것이 있었고, 부속실에 전화를 건 대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수석은 점심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후 오후 1시20분쯤 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한다.
문제는 이날 오후 2시20분에 이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을 통해 기존의 대북 강경기조를 어느 정도 누그러뜨리는 입장을 천명하기로 예정돼 있었다는 점이다. ‘6·15 선언의 이행방안을 협의할 용의가 있다, 남북 대화가 재개돼야 한다’는 점을 밝힐 연설 원고는 이미 기자들에게 배포된 상태였다. 피살사건 직후 대통령 주재로 대북기조의 전환과 고수 여부를 놓고 긴급 대책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일부 참석자는 북한군에 의한 관광객 피살이라는 충격을 감안할 때 원고 내용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사건의 정확한 진상이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큰 대북정책의 골격 변화를 즉흥적으로 바꿀 수 없다’고 주장한 측의 손을 이 대통령이 들어준 것이다.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 비서관이었던 김두우씨의 증언이다. “그날 오후 1시40분쯤 국회로 가는 소형버스 안에서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홍보기획관 등과 함께 사건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관광객이 북한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한 엄청난 일이 발생했으니 ‘북한을 유연하게 대하겠다’는 대통령 개원 연설이 그대로 가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원래 대통령 원고는 이랬는데 이런 사태가 벌어져 이렇게 바꾸었다’고 하면 국민 도 납득할 것으로 판단했죠. 그러나 아쉽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통령의 국회 연설은 ‘ 관광객이 피살됐는데 무슨 대화냐’는 비판을 초래했다.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됐다면 설사 김 수석이 보고를 늦게 했더라도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었던 비서실장이나 다른 당국자들에 의해 2중, 3중으로 걸러져 대응책을 내놓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중앙>은 비판했다.
<중앙>은 전날에도 천안함 사태 발발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이 합동참모본부으로부터 “초계함 바닥에 파공이 생겨 물이 새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보도하는 등, 연일 MB정권의 위기관리 시스템을 비판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