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문 분향소 습격, 그 자리에 세워진 '죽음의 꽃밭'

가자서 작성일 13.04.06 16: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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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문 분향소 습격, 그 자리에 세워진 '죽음의 꽃밭'  [다람쥐주인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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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의 양자 진짜 이강석. 오른쪽 두번째>

 

 

1957년 어느 여름 날 밤 한 청년이 경주경찰서 서장실로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나, 이강석인데” 당시 자유당정권의 실세 이기붕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막강한 권세를 누리던 이강석의 전화에 깜짝 놀란 경주서장은 그를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아버지(이승만)의 밀명으로 풍수해 상황을 시찰하고 공무원의 비리를 내사하러 왔다”는 청년의 말에 서장은 그를 최고급 숙소로 모셨고, 다음날 업무를 팽개친 채 경주시내 관광지로 그를 안내했습니다. 청년은 이런 식으로 극진한 영접을 받으며 경주, 영천, 안동, 봉화, 의성지방을 사흘 동안 돌아다녔고, 가는 곳 마다 경찰서장, 경무계장, 은행지점장, 군수, 군내무과장 등이 나타나 봉투를 내미는 바람에 주머니가 두둑해졌습니다. 결국 진짜 이강석을 알고 있던 사람에 의해 이 청년이 가짜임이 밝혀졌고, 그는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습니다. 청년은 검찰조사에서 대통령의 양자가 된 이강석이 서울법대에 무시험으로 편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는 죽어라 공부해도 못 들어가는 서울법대를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하여 무시험으로 들어가는 현실에 권력을 조롱하고 싶어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습니다. 권력에 기생해 부조리한 영화를 누리고자 했던 아첨꾼들을 한껏 조롱했던 이 청년의 행동에 국민들은 통쾌해 했고 ‘귀하신 몸’이라는 조롱섞인 유행어를 만들어냈습니다.

 

얼마 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지난달 4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 계정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운을 이르켜(일으켜;;) 세울 지도자께서 구청장까지 일으켜주시니 감사합니다. 서울의 중구를 세계인의 역사 문화도시로 발전시키겠습니다"라는 낯뜨거운 맨션을 보냈습니다. 문제는 최 청장이 박 대통령의 공식 트위터 계정(@GH_PARK)이 아닌 패러디 계정(@GH_BARK)에 맨션을 보냈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뒤 최 청장은 해당 글을 삭제했지만 캡처된 화면은 이미 네티즌들에게 일파만파 퍼져나갔고 망신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중구청 측은 "아이디를 착각해서 잘못 글을 올린 것이라 해당 글을 공보실에서 삭제했다"며 "중구를 잘 운영하겠다는 취지로 남긴 글"이라고 해명했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은, 심지어 맞춤법까지 틀린 최 청장의 아부트윗은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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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모두 일으켜를 '이르켜'로 쓴걸 보니..>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짝퉁에 대고 아부를 했다는 점에서 두 사건은 맥락이 같습니다. 국민들이 가짜 이강석 사건을 보고 분개했던 이유는 실력이 아닌 아부와 아첨에 의해 영달을 얻고자 했던 관리들의 행태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아첨꾼들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합니다. 최 청장을 망신시켰던 트윗역시 그 속성이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죽은 자들의 넋 위에 세워진 '죽음의 꽃밭'

 

최창식 중구청장은 4일 오전 5시 50분경 직원 50여명과 경찰 200여명을 동원해 대한문에 세워져 있던 쌍용차 분향소를 기습적으로 철거하고 집기를 압수했습니다. 쌍용자동차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쌍용차 정리해고사태 뒤 목숨을 끊은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대한문 앞에 분향소와 농성장을 차린 것은 작년 4월5일입니다. 분향소는 딱 1년이 되기를 하루 앞두고 기습철거됐습니다. '작전'은 동이 트기 직전 세명의 관계자들이 텐트에서 잠들어있는 사이에 그야말로 기습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아수라장 속에서 공사를 강행하려는 중구청측과 이를 막는 범대위 관계자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은 범대위 관계자들을 포함해 소식을 듣고 달려온 노동자·시민 36명을 연행했습니다.

 

죽은이의 넋을 기리던 분향소를 철거한 자리에 만들어진 것은 놀랍게도 화단이었습니다. 중구청 직원들은 철거가 완료되자 마자 흙 4톤을 붓고 꽃과 나무를 심어 '긴급하게' 화단을 조성했습니다. 중구청이 천막을 강제철거한 이유는 농성촌이 시민들의 통행과 덕수궁 문화재 복원공사에 방해된다는 이유였지만, 농성촌을 대신해 들어선 화단역시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분히 분향소 재설치를 방해하려는 비열한 작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쌍용차 범대위는 "중구청장과의 면담을 포함한 협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중구청이 기습적으로 철거했다"며 조성된 녹지 앞에서 항의 농성에 들어갔습니다.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나선 후보 중 진보정의당 김지선 후보만이 유일하게 이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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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공명심은 곤란

 

조선일보에 따르면 최 정장은 올 3월부터 314억원을 투입해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당시 살았던 신당동 가옥을 원형대로 복원하고, 그 일대를 기념공원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최 구청장은  지난해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많은 개발도상국가들로부터 국가를 발전시킨 지도자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공과가 있지만 그의 업적을 외국 관광객들에게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바 있습니다. 대명천지에 대한민국의 중심 서울 중구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최 청장은 이전에도 두 차례 쌍용차 대한문 분향소를 기습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대한문 분향소는 그에게 왜 그렇게도 눈에 가시였던 걸까요?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최 청장이 아닌 '그분'의 눈에 가시였다 해야 맞을 것입니다. 쌍용차 분향소옆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조사 약속을 이행하라",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습니다(어제철거). 자신의 관내에 '그분'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현수막이 버젓이 걸려있었으니 최 청장의 마음이 오죽 불편했을까요. 그러나, 윗 사람에게 잘보이고픈 공명심이야 이해하지만 그것이 남에게 고통을 주는 방식이어선 곤란합니다.    

 

아첨꾼을 키우는 방법은 아첨하는 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첨꾼이 사라지게 하려면 아첨에 대한 보상을 주지 않으면 됩니다.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요?

 

관련글 : 의자닦는 소방관과 ‘동원의 정치학’ http://v.daum.net/link/4070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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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리에 피워질 꽃들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

 

지금 이시간에도 대한문에는 저 이상한 화단을 둘러 싸고 중구청 직원들과 시민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습니다. 쌍용차사태의 원인은 다른 곳에 있지만, 대한문 분향소가 지금까지 남아 있었던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2009년 무려 2600여명의 대량해고가 발생한 쌍용차사태 이래 지금까지 22명의 노동자와 가족들이 자살 또는 병으로 사망했고, 일부 직원들이 복직하긴 했으나 여전히 대다수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은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치열하게 맞붙었던 양 후보는 공히 쌍용차사태에 대한 조속한 해결과 국정조사를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대선이 끝난 뒤 쌍용차 노동자들을 찾아온 것은 승자 박근혜 대통령이 아닌 패자 문재인 의원이었습니다. 어찌보면 대선에서 패한 입장에서 면목이 없을 수도 있던 문재인 의원은 지난달 노동자들이 고공농성중인 송전탑을 찾아 "이제 그만 내려오시라"며 그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태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한달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 쌍용차문제와 관련해 일언반구가 없습니다. 사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사람은 패자 문재인이 아닌, 대선에서 승리한 현직 대통령 박근혜입니다. 국민대통합을 부르짖던 대통령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87년 6월항쟁 당시 전경들의 가슴에 꽃을 꼽아주던 아주머니들을 기억합니다. 그 꽃은 비폭력과 평화의 상징이었습니다. 어제 쌍용차 분향소를 짓밝고 심어진 화단에도 곧 꽃이 피어나겠죠. 꽃이라는 아름다운 대상이 이토록 극명한 대비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최창식 중구청장은 가장 평화적인 상징을 이용해 노동자들의 죽음을 모욕했습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했던 옛 말을 무색케합니다. 죽은 노동자들의 넋 위에서, 노동자들의 눈물을 먹고 자라난 그 꽃들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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