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조선일보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28/2013042800447.html?ns
2009년 서울시는 ‘북촌문화센터’ 조성을 위해 141억원에 백인제 가옥을 매입했지만, 지난해 11월 시장 공관 이전 대상지로 확정했다.
서울시는 2012년 11월 ‘북촌문화센터’로 사용하려던 백인제 가옥의 용도를 시장 공관 이전 대상지로 바꾸고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대지 2459m2 (745평)·건물 499m2(151평)인 ‘백인제 가옥’을 개조하는 데 책정된 예산은 22억원이다. 건물매입비용으로 이미 지출된 141억원을 합하면 시장 공관 조성에 최소 163억원이 드는 셈이다. 서울시가 ‘시장과 그 가족이 거주하는 집’을 마련하는 데 이처럼 세금을 쏟아부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종로구 혜화동 서울시장 공관. 문화재청은 서울시에 수차례에 걸쳐 공관 이전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지만, 박원순 시장은 혜화동 공관에 입주했다. 당시 공관 개보수 비용은 3200만원이다. 박원순 시장, 공관 안전성 지적에 이전 결정했나?
현 시장 공관이 한양도성 성곽복원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소재 서울시장 공관은 1940년 일본인이 한양도성 혜화문 성곽에 걸터앉은 모습으로 지어졌다. 이에 따라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이후 언론은 박원순 시장의 공관 입주에 큰 관심을 가졌다. 혜화동 공관에 입주할 경우, 2015년까지 ‘한양도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던 서울시 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2011년 11월 박 시장은 “(서울시장 공관이) 낡아서 불편하지만, 혜화동 공관으로 가는 게 적절하다 생각한다”고 밝히고, 2012년 1월 2일 입주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 입주를 위한 공관 개·보수 비용으로 3200만원을 들였다. 그러나 공관에 입주한 지 한 달도 안 돼 박 시장은 “공관 입주 전에 성곽 길을 걸어봤다면 공관에 입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즉 박원순 시장은 혜화동 공관이 성곽복원에 방해되는지 몰랐다는 얘기가 된다.
2009년 4월 완공된 한남동 공관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결정에 따라 중소기업인을 위한 비즈니스 공간인 ‘서울파트너스하우스’로 바뀌어 문을 열었다. 이와 관련 권오중(權五仲) 서울시 정무수석비서관은 2012년 11월 16일 서울시의회 운영위원회 행정사무감사에서 “(박원순 시장도) 꽤 몇 년 전부터 문화재청에서 성곽보존을 위해서 비워달라는 얘기가 공문으로 계속 요청이 있었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 공관 이전 이유에 대해 “배부름 현상이나 이런 것들이 있었을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어서 관사에서 나와야 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배부름 현상’이란 성곽 틈에 스며들어 있는 물이 얼어붙으면서 벽체 가운데 부분이 바깥쪽으로 삐져나오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이 심화할 경우 붕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권 비서관에 따르면 박원순 시장은 혜화동 공관 철거 관련 문화재청 요청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공관에 입주했고, 성곽복원사업과 무관한 안전성 문제 때문에 공관 이전을 결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박 시장이 공관에서 접견한 기록 찾기 어려워
관사는 관선 단체장의 임시 거처이므로 ‘자치(自治)’와는 상반된 ‘관치 시대의 유물’이라는 게 전국 시민단체의 중론이다. 1995년 광역·기초 단체장 선거가 시작된 이래 전국 시민단체들은 각 지자체에 ‘관사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예산 절감 차원에서 공관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10년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는 ▲예산 낭비 ▲낮은 활용도 등을 이유로 ‘공관 폐지’ 취지의 ‘자치단체장 관사 운영 개선방안’을 각 지자체에 연간 2~3차례씩 권고하고 있다.
서울시장 공관 연간 운영비(전기, 도시가스, 상하수도 요금)는 평균 1760만원이다. 여기에 최소 규모로 추산한 공관 관리직원 3명의 인건비를 합하면 연간 1억원 안팎의 세금이 공관 관련 비용으로 지출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평소 ‘예산 절감’을 강조한 시민운동가 출신 박원순 시장이 공관에 입주한 가장 큰 목적은 ‘내외빈 접견’인 듯하다. 2011년 10월 박 시장은 공관 입주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접견 같은 거 하려면 필요할 것 같기도 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2013년 3월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중소기업·디지털 경제·혁신장관이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시장과 면담하기 전 악수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 일정표와 공개된 기사를 통해 조사한 결과 박 시장의 접견은 집무실에서 이뤄지는 일이 많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운영 기사검색 사이트 ‘카인즈(KINDS)’와 ‘네이버 뉴스 검색’으로 박 시장 내외빈 접견 기록을 조사했다. 관련 키워드 검색 결과 기사는 ▲박원순 면담 1772건 ▲박원순 접견 277건 ▲박원순 공관 면담 8건 ▲박원순 공관 접견 23건 등 총 2080건이었다. 여기서 중복된 내용을 제외하고, 일정 직위를 가진 국내외 주요인사 관련 기사만 추려 박원순 시장 공식 사이트에 있는 ‘일정표’와 대조했다.
그 결과 취임 이후 박원순 시장의 내외빈 접견은 총 58회로 나타났다. 이중 공관에서 이뤄진 접견은 단 1건도 없었다. 접견 횟수 자체는 집계 기준이 다르므로 서울시 통계와 차이를 보일 수 있지만, 2000건이 넘는 기사 중 시장 공관에서 접견이 이뤄졌다는 내용을 찾는 건 어려웠다. 취임 이후 기록의 중요성, 행정 투명성을 강조한 박 시장의 일정표에서도 관련 기록은 보이지 않았다.
“관사 폐지 후 7년 동안 불편한 점 없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적지 않은 돈을 들여 공관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서울시는 “시장 공관은 거주 기능 이외에 일과 시간 이후 발생하는 각종 재난·재해 등의 긴급상황에 적시 대응할 수 있도록 24시간 상시 상황유지하고 국내외 주요인사 접견 등을 수행하는 공적 공간으로 활용된다”면서 “시장의 효율적인 직무수행, 시민의 안전 및 삶의 질 향상 등 제반여건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큰 비용이 아니라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염홍철 대전광역시장은 “2003년 관사 폐지 후 7년째 시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행정상 비효율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오래전에 관사를 없앤 광역자치단체들의 사례에 비춰 설득력이 떨어진다. 현재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대구, 대전, 울산광역시는 시장 공관을 운영하지 않는다. 울산은 1995년, 대전은 2003년 시장 공관을 어린이집으로 만들었다. 대구는 2006년 민간에 팔았다. 서울시 주장대로라면 이 세 곳은 그동안 관사 폐지로 시정에 차질이 생겼을 수 있다. 이와 관련 대구시는 “긴급상황 대응은 시청사 종합상황실에서 하고, 근무 외 시간이라도 접견은 시장 집무실에서 한다”며 “관사 폐지로 시정에 문제가 생긴 적은 없었다”고 밝혔다. 대전, 울산광역시도 같은 입장이었다.
특히 2003년 공관을 폐지한 당사자 염홍철(廉弘喆) 대전시장은 “천재지변과 같은 긴급상황과 관사 운영은 연관성이 없다”며 “‘관사는 시장 개인의 편리를 위한 것’이라는 시민단체 비판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어 “2003년 시장 관사 폐지 후 7년째 시장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만, 행정에 불편한 점이 없다”며 “예산을 절감하고, 시민 속에서 생활하기 위해 앞으로도 관사를 복원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