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좌좀, 라도, 슨상, 요런 단어들만 써가며 어그로를 끄는 종자들이 있다. (이후 이것을 어그로 화법이라 칭하기로 한다) 이들의 기본적인 특징은 자신들이 보수주의이며 애국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항상 나라와 국가를 생각하고 있고, 나라와 국가의 지침들을 방해하고 비판하는 것들은 부정적이며 제거해야 한다는 식의 논설을 위주로 삼아 여러 사람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 또한 특징이다. 그것은 사실 일종의 프레임으로 이미 자리잡혀 있는 것들을 표면으로 끌어내어 과장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항상 그러한 프레임들은 있어왔고, 그것들은 권력적 필요에 의해 사회적으로 조장되어 왔다. 물론 혹자들은 그런 프레임들이 정말 '감정적으로' 싫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한 켠으로 제껴놓고 보면 그런 보수적 프레임 속의 사고방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이 땅에 발붙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없다. 때로는 보수적 프레임이 중지를 모으는 데 효과적인 부분도 있다는 점에서 그 효용성을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국방 프레임이 대표적인 예이고, 이 국방프레임 속에서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동의하는 기본들이 있기 마련이다.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어그로에 심기를 난자당한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심기가 불편해 진다는 것은 다른 사고방식 체제를 용납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일들이 절대로 아니다. 오히려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라 생각될 때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치에 맞지 않기 때문에 항거한다. 인간은 이성이 있고 그것을 사용해야 하며, 이성에 맞추어 보았을 때 맞지 않는다면 발언해야 한다. 칸트 때부터 주구리줄창 얘기되어 왔던 것들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이성의 사용법이 다르다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 흔히 '빠순빠돌'이라는 비속어로 표현되는 청소년기의 과도한 팬심을 살펴보자. 그들의 추종은 맹목적이다. 경중으로 따졌을 땐 비할 수 없지만 기본 바탕으로 따지면 나치에 못지 않다. 나치는 도취와 열광을 끌어냈고,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그것을 따랐다. 파시즘으로 표현될 수도 있으나, 파시즘의 작동법과 비교해서는 좀더 하위층에 종속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러한 일련의 맹목적 추종의 형태를 이 글에서는 쉽게 '팬심'이라 지칭하기로 해보자. 대체로 그 팬심의 대상에 대고 비판적 평을 한다는 것은 격한 감정적 반응을 이끌어내기 마련이다. 이것은 위의 '이치가 맞지 않기에 심기가 불편해진다'는 매커니즘과는 다르다. 내가 숭배하고 있는 대상이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나의 숭배가 전혀 온당치 않다는 뜻이고, 고로 나에 대한 부정이 된다. 그렇기에 이들은 그 맹목적 숭배를 지키기 위해 파격적인 이성의 행보를 내보인다. 그것은 '끼워맞추기'이다. 청소년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그 아이돌쯤은 비교도 될 수 없는 높은 위치의 뮤지션과 연결했을 때 그 뮤지션을 무시하거나 까내리는 형태의 인터넷 댓글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보아 왔던가. 이 부류들도 이런 메카니즘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진보 역시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음은 주지할 사실이다. 적은 적을 닮아간다는 이 흐름은 언제나 프레임 상에서 굉장한 힘을 발휘했고, 결국 현재의 진보를 수렁으로 밀어넣었다. 이번 대선 때 방향성의 제고를 해야 할 때조차 계속 과거와 관련된 수사법 속에 묶여 있어야 했다. 미국의 예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마리화나와 난잡한 섹스, 과격하고 급진적인 형태의 주장과 무조건적인 평화에 대한 사랑 등등. 그런 60-70년대의 프레임 속에서 미국 진보는 죽어갔고, 현재 남은 것은 학자들의 먹물근성 정도 뿐이다. 그것으로는 미국의 진보 프레임을 다시 살리지 못한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지속되고 있다. 이런 부분은 응당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그리고 같은 입장 속에서의 비판도 나온다. 듣고 갑론을박들이 벌어진다. (이 부분으로 인해 왜 어그로 화법을 쓰는 종자들이 진보에 퍼붓는 비판이 온당하지 않은지에 대한 후논리도 나온다)
다시 '팬심'으로 돌아와보자. 보통 어그로 화법을 쓰는 종자들의 특징들은 보수주의의 맹목적 추종에 있다. 그런데 이들의 보수주의는 이론이나 어떠한 형태의 논리적 이념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람이다. 이승만부터 시작해 박정희, 전두환 등이 이들이 선망하는 인간들이다. 여기에는 개인이 권력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무의식적 불만이 작용한다. 흐름은 대강 이러하다. 개인에게 권력욕이 탑재된다. 그것은 가족에 의한 성장과정에서의 영향이나 자신이 보고 감동을 받았던 교육의 문제 등등으로 다양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개인속에서 점점 비대해진다. 그러나 현실이 그런 것을 맘대로 충족시켜 줄 리 만무하다. 이 해소되지 않는 부분은 결국 그것은 특정 대상을 통해 '투사'되고 '동일시' 된다. 이것은 점점 발전하여 권력을 남용하던 자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까지 동일시하게 된다. 그들이 한 모든 행동은 '그들이 했기에' '그 어떤 것도' 문제시되지 않는다. 그런데 자꾸 자신의 동일시와 상충되는, 비판적인 평들이 나온다. 전혀 맞지 않다고 이성보다 '팬심'이 먼저 발동한다. 남은 것은 그 '팬심'을 실망시키지 않으려 이성이 나름의 '끼워 맞춰진' 합리성을 발동하는 것이다. 그 상대들이 부정당하지 말아야 하다 보니 비민주를 정의로 판단한다. 그 상대들이 까내려지지 말아야 하니 그들이 한 어떤 반사회적 행동에 대해서든 입을 열지 말아야 한다. 경제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권력자들의 행동과 지향하는 바가 기준이고 정의가 된다. 그것들은 거대한 동일시의 패거리고, 그 외의 인식적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판은 곧 적이다. 토다는 것들은 쓸데없는 것들이다. 들을 필요도 없다. 그것이 내 권력욕을 대리충족시키고 있는 그들과 현실에 대한 방어이자 공격이다. 권력을 가진 자는 나와 같다. 그러다 보니 자기가 펼친 모순도 자신이 모른척 하는 사태까지 빈발하게 일어난다. 이게 어그로 화법을 쓰는 종자들의 인식적 밑천일 뿐이다. 이런 인식적 밑천 하에 놓인 사람에게는 무슨 얘기를 해도 들리지 않는 소리다. 이미 이성이 '팬심'을 위해 봉사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어그로 화법에 달리는 수많은 관심댓글들에 이들이 느끼는 것은 자신이 이만큼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구나, 라고 착각하고 있는 일그러진 권력욕에 다름 아니다. 악순환이 시작된다. 내가 그들을 나와 동일시함으로서 이러한 권력욕을 얻었으니 더욱 충성하자. 이런 흐름이 비단 인터넷에서만의 일일까?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진보에 던지는 비판은 사실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짜맞춰지고 지엽적인 문제에 국한된 부분들일 뿐, 대국을 바꾸거나 발전적인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끽해야 민주당은 라도이기 때문에 씹혀야 하고 정부에 반대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씹혀야 한다는 수준이다. 그것들이 나와 대척점에 있기 때문, 이라는 단순무쌍한 인식에 입각해 내놓는 말들일 뿐이다. 이것이 그들이 내놓는 진보에 대한 비판이 전혀 온당하지 않은 이유이다. 비판을 위한 비판만이 거듭되고 있는 과정이 지속될 뿐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일반적인 설명과 인식으로 다가가봤자, 시간과 정력낭비임은 이쯤에서 자명해진다. 왜냐,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이성을 발동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을 상대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며, 인정받기도 싫기 때문이다. 보다못해 구구절절한 설명이라도 달아놓는 상황이 되면, 상대가 그러함을 알면서도 자기만족을 위해 휘말리는 사태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것도 한 두번이고, 설명해주는 사람은 피로가 누적될 뿐이다. 그러나 상대는 멀쩡하다. 왜? 애초부터 에너지를 쓰고 있지 않았으니까. 이것이 바로 정경사 게시판에서 보수적 주장을 하여 논쟁을 부르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들인 것이다. 사실 그들의 주장은 보수적 주장이라기 보다는 앞뒤를 생각하지 않고 '팬심을 부양하는 논리'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