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오류

길가다꿍했져 작성일 13.05.20 12: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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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 같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후세에 비난을 받거나 옹호를 받는 대통령은 

아마 없는 듯 합니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파괴한 '민주주의'라는 가치와 대통령 시절 이룩한

'물질적 풍요', 이 두가지 가치 중 어느 것 하나 포기하기 어렵다는 반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순히 말하면 이상과 현실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 누구라도 망설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경제발전을 바라보는 시각들 중 박정희 대통령을 옹호하는 

시각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오류가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 과를 평가할 때 항상 박정희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당시의 어려웠던 경제상황에 비추어 5.16 군사정변과 유신체제는 '필요악'이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내놓아야 합니다. 

'왜 민주주의를 포기해야만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는가?  이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은 

불가능 한것인가?'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은 인정을 합니다만 왜 두가지 가치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까?

박정희 대통령을 옹호하는 측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쿠데타와 유신이 없었다면 발전도 없었다'는 식의 논리를 

내세우는 바 그렇다면 거꾸로 묻고 싶습니다. 

'쿠데타와 유신'이라는 극단적인 수단만이 경제발전을 담보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독일의 전후 경제발전(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는)이나 

50년대 중반 이후의 일본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쿠데타와 유신'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까?

물론 위에서 언급한 두 나라와 대한민국의 사정은 다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쿠데타와 유신'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의 유일한 답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되지 않습니다. 

'쿠데타와 유신'이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 있었던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과 그 통치체제의 유지였지

경제발전이 아닙니다. 


물론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이 두가지 성과를 동시에 성취하는 것은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두 가지 목표 중 하나에 치중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헌법에서 보장하는 근본적인 가치마저

철저히 파괴하면서 얻은 경제발전이 어떤 의미를 가지겠습니까?


미국의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이 지금껏 존경 받고 위대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것은 그가 미국의

경제발전을 주도한 대통령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미래의 미국에게

물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진정 위대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사람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위대한 지도자는 ' 미래적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어야만 합니다. 

즉, 미래세대에게 정신적 가치를 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지도자만이 위대한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습니다. 


백범 김구선생, 도산 안창호 선생,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등이 후세에 존경 받는 것은 '자주와 독립'이라는 

미래적 가치를 평생에 걸쳐 스스로 실천하고 삶을 통해 그것을 증명해 내었기 때문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그러한 측면에서 평가한다면 철저히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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