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명 대통령 앞에 선 검찰의 선택은? [오주르디님 글]
검찰이 세 개의 산 앞에 서있는 형국이다. 이 산을 넘으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씻고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개혁과 쇄신의 칼날 앞에 그나마 남아있던 자존감까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검찰이 넘어야 할 세 개의 산
그 '산'은 전현직 대통령과 관련이 있다. 1672억원이라는 거액의 추징금 회수 문제와 아들의 유령회사로 불법 비자금이 흘러들어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첫 번째 산이다. 두 번째 산은 불법사찰과 도곡동 사저 부지와 관련해 고소고발을 당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의 최종 배후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마지막 산은 국정원 대선개입의 최대 수혜자인 박근혜 현 대통령이다. 검찰 수사팀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해 국정원법 위반뿐만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적용해 구속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검찰과 관련해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법무부장관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반대해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 관심이 ‘세 개의 산’ 과 검찰에 집중돼 있는 상태다. 불신과 비난을 받으며 벼랑 끝에 몰려 있는 검찰이 세 명의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정치검찰이라는 고약한 악습을 되풀이 할까, 아니면 국민의 편에 선 결단을 내릴까.
전두환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검찰
검찰은 ‘전두환 추징금’ 회수와 관련해 “(전두환)의 신발하나라도 잡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뛰겠다”고 강조했다. 장남 전재국의 역외탈세 의혹 뿐 아니라 다른 아들들의 재산도 꼼꼼이 들여다보고 필요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다짐했다. 버스 떠난 뒤 손 흔드는 꼴이다. 진즉 이랬다면 미납 추징금의 태반을 벌써 회수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뒷짐 지고 있는 동안 비자금이 철저하게 세탁돼 추적조차 불가능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상태다. 회수가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검찰의 분발 여하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아들들의 재산 형성 과정과 탈세와 탈루 등 불법 여부를 철저하게 수사해 들어간다면 의외의 소득도 가능할 수 있다. 아들들의 불법 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의 잣대를 적용함으로써 우회적인 추징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직계 가족의 재산이 2천억원에 이를 거라는 분석이 있다. 장남 전재국 500억원, 둘째 재용 400억원, 셋째 재만의 직간접 재산 1230억 원, 딸 효선 15억원(시공사 지분 포함) 등이다. 이들이 재력가가 행세를 해온 건 오래전 일이다. 돈의 출처가 어디였겠는가. 아버지의 불법 비자금으로 형성된 재산일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2004년 검찰은 전두환 차남의 조세포탈 사건을 조사하다가 75억원 상당의 비자금 채권을 찾아낸 바 있다. 그 당시 ‘사해행위취소소송’을 냈더라면 이 돈을 추징금으로 환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검찰이 과거의 과오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이번 수사에 임한다면 상심한 국민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을 정도의 성과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불법행위, 검찰 수사는?
이명박 정권 내내 불법사찰과 공작정치가 극심했다. 총리실에서 정치인과 민간인을 사찰하고 국정원은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내던진 채 ‘정권 보위’에 열을 올렸다. 방송을 장악하기 위해 MBC, KBS, YTN 등을 ‘낙하산 인사’로 완벽하게 틀어쥐었고, 보수신문들에게 방송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 ‘원 컬러 방송시대’를 열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을 업무상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해 수사를 앞두고 있다. 또 불법사찰 등 직권남용, 세금을 유용해 불법사찰에 사용한 횡령혐의, 정당한 노조활동 방해 등으로 YTN노조에 의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함께 고소를 당한 상태다. 이외에도 4대강 담합 의혹 등 굵직한 의혹이 한 둘이 아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도 국민에게 큰 관심거리다.
국정원 대선개입의 최종 배후라는 의혹도 있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독단으로 대선 여론조작이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사찰 내용까지 꼼꼼하게 보고를 받았던 이 전 대통령이다. 크고 중요한 내용이 담긴 국정원 보고이니 더욱 챙겨 보지 않았겠나. 국정원장과의 독대도 잦았다. 원 전 원장은 ‘충성된 활약상’을 자랑하려 했을 것이고, 이 전 대통령은 어떤 지침을 하달했을 수도 있다. 4대강과 반값등록금 등 당시 현안이 국정원의 공작에 포함 된 것이 이를 방증해 준다.
원 전 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게 검찰의 확고한 입장이다. 그렇다면 최종 배후에 대한 수사도 진행해야 할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이 원 전 원장의 독단적 결정에 의해 진행된 게 아니라 이 전 대통령과의 교감 아래 이뤄졌다는 보기 때문이다. ‘국민의 검찰’이 되려면 이미 고소고발장이 접수된 사건뿐만 아니라, 대선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이 전 대통령을 엄정하게 수사해야 할 것이다.
황교안의 과잉충성과 박 대통령
검찰총장부터 서울중앙지검장, 그리고 수사팀까지 원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해야 한다는 일치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임박함에 따라 지난달 25일 경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려 했지만,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이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10일 넘도록 묶여 있는 상태다.
법무부장관은 검찰의 구속 입장에 맞서 수사지휘권이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황 장관의 이 같은 태도는 공직선거법 혐의가 적용될 경우 부정선거 논란이 불거지며 박 대통령의 정통성에 금이 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원 전 국정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은 박 대통령 당선의 ‘공신’들이다. ‘공신’들을 구속하는 건 박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과 배치된다고 판단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과 법무부가 대치할 경우 검찰이 질 수밖에 없다.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 때문이다. 하지만 법무부에게도 크게 부담스러운 일이 된다. 수사지휘권까지 발동해 끝내 원 전 원장의 구속을 막을 경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는 것? 선택은 검찰의 몫
검찰총장의 사퇴는 물론 국민적 비난 여론이 비등할 것이고, 황 장관 또한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박근혜 정부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검찰에게는 ‘겉으로는 지지만 내용적으로는 이기는 싸움’일 수 있다.
국민의 불신이 가장 큰 정부기관 중 하나가 검찰이다. 정치검찰, 부패검찰이라는 오명과 함께 ‘정권의 시녀’라는 불명예를 표찰처럼 달아 왔다. 이번이 기회다. 국민적 신뢰를 얻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를 거머쥔 셈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수사를 보여준다면 국민적 신뢰를 얻어 낼 수 있다. 좋은 기회가 찾아 온 것이다.
세 명의 전현직 대통령이라는 산을 잘 넘어 국민의 검찰로 거듭날지, 아니면 정치검찰이라는 관성에 젖어 또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나락으로 떨어질지 그 선택은 검찰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