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측 체포, 원세훈 기소 물타기? [오주르디님 글]
우여곡절 끝에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하기로 결정한 게 불과 엊그제다. 그런데 검찰이 마치 여야의 균형을 맞추려는 듯 문재인 대선 후보 SNS 팀장을 긴급체포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문재인 SNS팀장 긴급체포, 왜?
서울남부지검은 13일 대선 당시 불법 SNS 선거운동을 벌인 혐의가 있다며 인재근 의원실 차모 보좌관을 긴급체포했다. 검찰은 수차례 소환요청을 했으나 차 보좌관이 불응해 왔고 공소시효가 임박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검찰이 차 보좌관에게 보낸 출석요구서에 “서울시 선관위가 수사의뢰한 선거법 사건”이라고 돼 있다며 “지난 대선 당시 새누리당 측이 윤정훈 목사 등 이른바 댓글 알바사건이 터지고 사무실이 드러났을 때 새누리당이 물타기용으로 제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던 이른바 민주당 제2당사 ‘신동해빌딩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에서 역할을 한 책임자가 아니라 보좌관들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내고 강제구인을 하는 검찰의 의도가 무엇이냐”며 의혹을 제기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기소를 앞두고 야당 대선 후보 캠프에도 같은 혐의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물타기를 하려는 게 검찰의 의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신동해빌딩(대선 당시 민주당 제2중당당사)>
보수언론까지 가세, 검찰과 박자 ‘척척’
언론까지 가세했다. 보수언론들은 ‘대선 당시 문재훈 후보 캠프의 SNS 팀장이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는 내용의 기사를 긴급 보도했다. KBS, MBC, 조선TV, 채널A 등이 속보 형태로 관련 뉴스를 내보낸 시점은 검찰이 차 보좌관을 강제구인한지 한두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을 맞췄다.
MBC는 차 보좌관이 ‘민주당 당직자’라는 엉뚱한 주장을 했고, KBS는 서울남부지검을 배경 사진으로 이 내용을 다뤘다. 조선TV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 후보의 대선 캠페인에 검게 칠한 남자를 등장시킨 그림을 배경화면으로 깔았다.
▲MBC 보도화면
▲KBS 보도화면
채널A는 아예 문재인 의원의 얼굴을 배경화면으로 등장시켜 마치 문 의원에게 선거법 위반 혐의가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다. 보도 행태만 봐도 의도적이라는 게 단박에 드러난다.
▲TV조선 보도화면
▲채널A 보도화면
왜 하필 이때 6개월 전 일 다시 들여다보나?
대선 당시 새누리당이 제기했던 ‘신동해빌딩(민주당 제2당사) 불법 SNS 선거운동’ 의혹은 윤정훈 목사의 ‘십알단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정황이 많았다. 불법 선거사무소를 차려놓고 알바를 고용해 박근혜 후보를 위한 조직적 선거운동을 벌인 증거물이 대량 입수되면서 새누리당이 곤경에 처한 상황이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내민 새누리당의 카드가 ‘신동해빌딩 불법 선거운동’ 의혹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번 검찰의 의도 또한 원 전 원장 기소에 따른 ‘물타기용’이라면 ‘신동해빌딩 사건’은 ‘물타기 재탕용’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신동해빌딩 사건’은 대선 5일 전인 지난해 12월 14일 새누리당 관계자가 선관위 직원과 조선TV 등 종편 기자를 대동하고 민주당의 불법 선거캠프라고 주장하며 신동해빌딩에 두 차례 난입했던 사태를 말한다. 하지만 신동해빌딩은 민주당의 제2중앙 당사라는 사실이 현장에서 확인돼 새누리당 관계자와 선관위 직원을 머쓱하게 만든 바 있다.
‘신동해빌딩’은 민주당 제2 중앙당사
당시 민주당은 선거법 제89조 “다만 후보자 또는 예비후보자의 선거사무소와 정당의 중앙당 및 시도당의 사무소에 설치돼 있는 각 1개의 선거대책기구 및 정치자금법에 의한 후원회는 그렇지(선거사무소로 등록해야 하는 의무) 아니하다”라는 단서조항을 들어 신동해빌딩의 SNS 선거대책팀은 선거법상 불법이 아니라고 밝혔다.
반면 당시 새누리당 조원진 불법선거감시단장은 “중앙당사 별관이라 하더라도 선거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선거사무실로 등록해야 하는데 민주통합당은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불법 SNS 선거운동을 자행해 왔다”고 맞섰다.
만일 신동해빌딩을 불법선거사무소로 지목한다면 당시 새누리당이 등록한 중앙당사 5곳 중 1곳을 뺀 나머지 4곳 또한 죄다 불법사무소가 된다. 당시 선관위도 “신동해빌딩에서 여론 수집과 분석, 선거운동 기획 등 정당의 선거대책 업무가 진행됐는지 직접 유권자를 대상으로 선거운동을 한 건지 확인할 수 없다”며 “불법 사실이 발견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물타기용’ 카드로 볼 수밖에 없는 이유
왜 하필 이때일까? 왜 문재인 후보의 SNS 팀장을 꼬집어 겨냥한 걸까? 정치검찰이 원 전 원장의 선거법위반 기소와 관련해 물타기용 카드를 빼든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최 보좌관의 혐의가 확실했다면 왜 6개월 동안 가만히 있었을까? 진즉 체포해 수사했어야 했다.
▲뒤늦은 체포는 원 전 원장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후보 측을 선거법위반으로 수사하면서 원 전 원장을 그대로 둘 경우 비난 여론이 들끓을 거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다.
▲원 전 원장의 선거법위반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면 박근혜 정권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여론을 희석시키는 데 ‘문재인 후보 불법선거운동’만큼 효과적인 카드가 또 있을까?
▲‘박 대통령이 국정원 불법선거운동의 수혜자'라면 문재인 후보는 불법선거운동 당자자’라는 논리를 펴기 위한 근거가 필요했을 것이다.
▲‘봐주기수사’를 하다 막판에 와서 ‘원세훈 기소’ 결정을 하다 보니 ‘물타기용’ 카드인 최 보좌관에 대한 공소시효 또한 임박해져 긴급체포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래서 ‘정치검찰’이다
검찰이 또 속보이는 행동을 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수사와 관련해 이런저런 눈치를 보는 동안에는 최 보좌관을 어쩌지 못하다가 끝내 원 전 원장 기소로 결말이 나자 촌각을 다퉈가며 대선 야당 후보 SNS팀장을 긴급체포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니 ‘물타기용’이라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원 전 원장이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다면 최 보좌관 또한 혐의 여부를 떠나 체포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니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는 거다. 정치적 물타기를 위해 인신을 구속하는 건 파렴치한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