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논란, 가장 불편할 사람은 누구일까? [다람쥐주인님 글]
<민주당 홍익표 의원>
'귀태(鬼胎)'라, 기막힌 인용이다. 저자의 촌철살인에 박수를 보낸다. 어제 하루 때아닌 귀태논란으로 정국이 들썩였다. 11일 민주당 홍익표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라는 책을 언급하며 "책에 '귀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태어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태어났다는 뜻이다. 만주국의 귀태 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의 후손들이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 일본의 정상으로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최근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행보가 남달리 유사한 면이 있다.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구시대로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고 있고, 박 대통령은 유신공화국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며 대통령을 향한 신랄한 비난을 쏟아냈다.
야당의 원내 대변인이 국회에서 저런 원색적인 비난을 한 것이 옳은 행동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저 발언을 듣고 가장 먼저 느꼈을 감정은 분노가 아닌 부끄러움이었을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반응은 달랐다. 대통령은 청와대 대변인의 입을 통해 민주당을 향한 격노를 쏟아냈다. 어제 청와대 이정현 대변인은 홍 의원의 '귀태'발언을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부정"이라고 규정했다. '귀태'와 그런 것들이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청와대가 발끈한 까닭은 '귀태'라는 말을 '귀신의 자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같은 뜻으로 직역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차 인용된 표현의 적절성에 대해 판단하려면 사전적 의미가 아닌, 원저자가 표현한 비유의 맥락을 읽어야 한다. 어제 홍 의원이 언급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귀태'가 사용된 맥락을 보면 이 말이 조롱이나 비하라기보다는 매우 날카로운 촌철살인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시 노부스케(왼쪽)와 박정희. 출처 한겨레>
<대일본 만주제국의 유산>이라는 원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은 '귀태들(박정희와 기시 노부스케)'을 낳은 모성(母性)이 만주국에 있다고 말한다. 만주국의 기형적인 유산을 물려받아 한일 양국의 정치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로서의 박정희가 아닌, 만주국의 유산을 물려받은 정치인 박정희를 말한다.
흔히 만주국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따라붙는 수식어가 괴뢰국(傀儡國)이란 표현이다. 만주국은 20세기 세계사에 등장했던 국가중 가장 괴상한 형태를 가진 국가였다. 날조된 만주 철도 폭파 사건을 계기로 탄생된 만주국은 2차대전 패망전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대륙침략 전초기지이자 병영국가의 실험실로 '활용'되었다.
"계획경제, 수출 주도, 농촌진흥, 중화학공업 육성 등 전후 일본과 한국의 압축적 정치·관료 주도 성장전략과 한국의 새마을운동,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조회, 군사교육, 충효교육, 국민교육 헌장, 퇴폐풍조 단속, 반상회, 고도 국방 체제를 위한 총력안보 체제 따위의 통제장치들이 모두 만주국 실험을 거친 것들이었다." 한겨레 인용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만주국의 유산을 이용해 정치적 영달을 이뤘다. 저자의 '귀태'라는 표현은 이것이 한일 양국에 가져왔던 부정적 영향에 대한 비유인 것이다. 나는 근대사에서 사라졌어야 할 만주국의 기형(畸形)을 이용해 정치적 영달을 이룬 만주국의 후예들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하겠다.
<양국의 우경화를 이끌고 있는 두 정치인>
어찌됐든 청와대가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 말을 인용한 사람을 탓하기 전에 저자를 고발하는게 먼저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의 관계, 유사성에 관해 언급한 책은 수십수백권에 이른다. 청와대는 줄소송을 준비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그럴 수 없다. 홍익표 의원의 입을 막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이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책과 논문, 기사와 구전 모두를 없애는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분서갱유(焚書坑儒)를 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한 일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이 문제가 지나치게 '예의'나 연좌제의 문제로 함몰되고 있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다. 대통령이 '귀태'발언을 불편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불편함이 금기를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만약 이완용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매국노’라 부르는 사람들을 모두 고발한다면 어떨까? 이완용의 자녀들은 아버지를 매국노라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못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의 불편함’ 때문에 이완용을 매국노라 부르지 못할 이유는 없다. 같은 이유로 박근혜 대통령이 느낄 수치심이나 불편함 때문에 국민들이 다까끼마사오에 대해 쉬쉬할 이유는 없다. 이완용의 매국행적과 다까끼마사오의 만주군행적이 갖는 공통점은 단죄하지 못한 과거라는 점이다. 이것이 금기가 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연좌제는 분명 철폐되어야 할 구습이다. 그러나 연좌제라는 비판이 성립하는 경우는 선대의 부덕이 후대에 와서 사라진 경우다. 아비의 부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딸이 아비에 대한 비난에 대해 "연좌제다"라고 항변한다면 그걸 누가 인정하겠는가. 어제 홍 의원이 '귀태'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지적하고자 했던 부분 역시 이것이었다.
대통령의 수치심과 맞바꾼 정국주도권
새누리당은 귀태발언에 맹공을 취함으로써 수세에 몰렸던 상황을 일시적으로나마 역전시키고 정국주도권을 빼앗아 왔다. 그런데, 급작스럽게 찾아온 '귀태정국'이 가장 불편한 사람이 누구일까? 어제 하루 어떤 식으로든 미디어를 접했던 사람들은 모두 귀태라는 말의 뜻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즉, 다까끼마사오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홍의표 의원이 다까끼마사오의 무덤에 살짝 ‘노크’를 했다면, 귀태정국을 주도한 새누리당과 청와대는 그의 관뚜껑을 열어 재낀 것이나 다름없다.
'귀태'란 말이 가장 불편했던 사람은 역설적으로 귀태정국에서 가장 큰 정치적 이득을 본 박근혜 대통령일 것이다. 논란이 된 '귀태'라는 말의 본질은 '귀신의 자식'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아닌, 그가 독립군을 때려잡던 만주국장교였다는 사실에 있다. 아버지의 과거행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귀태’논쟁이 달가울 리 없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그에게 아버지의 치부 다까끼마사오의 과거가 들춰지는 것만큼 불편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럼에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귀태'발언에 맹공을 퍼부으며 '귀태정국'을 조장했다. 대통령 개인의 불편함과 수치심을 정국주도권과 맞바꾼 것이다. 홍 의원의 '귀태'발언이 나온 뒤 청와대 대변인의 입장이 발표되기까지의 22시간은 아마도 이것에 대한 대통령의 고뇌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청와대가 '귀태'를 정략적 용도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국정원정국에서 느끼고 있는 위기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귀태'논쟁에서 발견되는 대통령의 한계가 있다. 그가 MB와의 선긋기는 가능할지 몰라도, 아버지와의 선긋기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불행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