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지지율 급락, ‘거품 날개’ 꺾였다 [오주르디님 정리글]
역대 그 어느 대통령도 이만한 지지율을 보이지 못했다고 희희낙락했다. 야당이 정부 정책에 대해 비판할 때마다 여당과 청와대는 ‘그래도 지지율이 70%에 육박한다’며 국민이 우리 편인데 쓸데없는 정쟁을 부추기라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그래도 지지율 70% 육박” 이게 청와대의 자랑거리였는데
한동안 정말 그랬다. 윤창중 성추행 사건이 터져도, 정부조직법 개편안이 늦어지며 국정에 공백이 생겨도, 국정원이 NLL 대화록을 불법 공개해도, 시민들이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촛불을 들어도, ‘박근혜 지지율’ 고공행진은 꺾이지 않았다.
이렇다 할 국정운영 성과도 없는데 지지율만 고공행진하는 ‘기현상’에 대해 집권 초기 기대심리와 민생 개선에 대한 기대감 등 ‘거품’이 작용한 결과라는 지적을 내놓아도 청와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민심을 등에 업고 있다고 큰소리칠 정도로 오만했다.
‘박근혜 지지율’이 반석위에 세운 집이 아니라 모래위에 지은 집에 불과하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 건 추석 직후부터다. 70%에 육박하던 지지율이 60%로 급락했다가 10월 첫째주 한국갤럽 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 전화조사 응답률 18%)에서는 56%로 추락을 거듭했다. 이반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오만한 청와대... 지지율 반석 위에 지은 집 아니다
국정원을 정권 보위를 위한 최전방 야전군으로 활용해 논란을 야기했다. 대표적 복지공약들이 파기되거나 대폭 축소되는 일이 연이어 일어났고, 3자회담을 통해 불통정권임이 재확인 됐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진영 전 복건복지부 장관 문제로 정치적 논란의 중심에 청와대가 있다는 게 확인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운영을 잘못하고 있다’고 보는 부정적 평가는 급등했다. 9월 둘째주 19%였던 것이 10월 첫째주 조사에서는 무려 15% 상승한 34%를 나타냈다. 이 정도면 역대 대통령들의 수준이다. 청와대가 더 이상 지지율을 자랑거리로 삼을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국정운영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답한 이들의 36%가 ‘공약실천 미흡과 공약에 대한 입장 선회’를 그 이유로 꼽았다. 그 뒤로 ‘국민 소통 미흡, 국정운영 불투명’(10%) ‘잘못 검증된 인사’(10%) 등이 뒤를 이었다. 복지공약 파기·후퇴, 소통부재, 인사 논란 등이 지지율 급락을 견인한 셈이다.
지지율 급락, 부정적 평가 급증
지지율 추락의 가장 큰 원인은 공약 파기와 후퇴. 대체 어느 정도이기에 치솟던 지지율 상승세가 급락 추세로 반전된 것일까.
태반의 약속이 깨졌다. 대표적 공약들이 파기되거나 후퇴했다. 현란한 복지공약과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앞세워 중도층의 환심을 사 당선된 대통령이다. 공약이 이 정도 후퇴했다면 ‘먹튀 선거’ 논란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노인층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겠고 큰소리치며 내놓은 기초연금 공약도 대폭 수정됐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1인당 20만원을 지급하겠다더니 소득하위 70%를 대상으로 국민연금과 연계해 10만~20만원 사이에서 차등 지급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독소조항도 있다. 정부가 발표한 안에는 매년 물가상승분만 반영해 기초연금 최댓값을 결정하는 것으로 돼 있다. 기초노령연금액이 현재 가치 20만원 이상 인상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복지부는 지난 2일 입법예고한 기초연금법안에서 최소수령액을 10만원으로 확정하지 않고 대통령의 재량권으로 남겨 놓았다. ‘지급대상자에게 최소 10만원 보장’이라는 문구가 법안 제정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올 게 온 것, 급락 견인한 건 ‘공약 파기·후퇴’
이 과정에서 ‘친박 실세’로 통하던 진영 복지부장관이 ‘정치적 항명’을 하며 사표를 냈다. 주무장관인데도 자신조차 모르는 법안을 청와대가 밀어붙이고, 법안의 내용 또한 자신이 준비해 추진해온 것과 딴판이라면 완전히 ‘물먹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 질환등 4대 중증질환 진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약속은 당선되자마자 인수위 때부터 어긋났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학적 비급여(캡슐내시경 등)의 일부에 대해 진료비의 20~50%를 지원하고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간병비 등 3대 비급여에 대해서는 추진을 유보한다고 발표했다. 공약 파기 수준이다.
소득하위 80%에게 등록금 절반을 경감시켜 주겠다던 ‘반값 등록금’ 공약도 물건너 갔다. 말로는 시지를 재조정하겠다지만 사실상 파기로 봐야 한다. 2017년부터 고교 전면 무상교육을 실시하겠다던 약속도 달라졌다. 2014년부터 도서, 벽지부터 실시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단다. 시늉만 내겠다는 얘기다.
국민 현혹시켜 표 얻더니 말 바꾸며 ‘조삼모사’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최저 생계비라는 절대 개념에서 소득에 따른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하고, 기준을 완화해 수혜자를 늘려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하지만 실제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국민을 현혹시키는 ‘조삼모사’ 정책이라는 게 확실해진다.
혜택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현행 기초수급자들도 혜택이 부족해 고충을 겪는 상황인데 여기에 수급자 수를 대폭 늘릴 경우 파이가 줄어들어 소득 최저층의 고통만 증가하게 될 것이다. 국민을 현혹시키는 정책 중 하나다.
저소득층 영아 지원 공약도 물건너갔다. 저출산 대책의 하나로 12개월간 조제분유와 기저귀를 지원하겠다던 공약은 ‘여성 감동 대한민국 6대 실천과제’에 들어 있었다. 결과는 말 뿐. 관련 예산(162억원)이 정부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고위험군 임산부에 대한 지원 공약도 마찬가지다. 조기 진통과 수혈 대상 임산부들에게 10개월 동안 월 100만원씩 지원하겠다더니 이 약속 또한 폐기처분됐다. 기획재정부가 관련 예산(100억원)을 전액 삭감했고, 국무회의는 그대로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했다.
‘약속 대통령’의 약속 깨는 소리 ‘요란’, 고용분야 공약 후퇴도 심각
고용분야 공약도 파기되거나 대폭 후퇴한 경우가 수두룩하다. 공공기관 비정규직에 대해 2015년까지 정규직 전환을 완료하겠고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15년까지’라는 기한을 삭제했다. 공약을 대폭 후퇴시키거나 파기하겠다는 속내다.
봉급 130만원 미만의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 보험료를 100% 지원하겠다던 공약도 대폭 후퇴했다. 50%만 지원하겠단다. 정년 60세 법제화 공약도 2017년까지 단계적 추진으로 바뀌었고, 아동안전·돌봄·다문화가족 지원 등 사회공헌형 일자리 80% 확대 공약은 아예 삭제된 상태다.
‘약속을 지키는 대통령’의 약속 깨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니 지지율 상승세가 멈추고 급락세로 돌아설 수밖에. 복지 공약 대폭 후퇴에 대한 비난과 논란은 한동안 계속되며 지지율 하락을 부채질 할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 고정 지지층’을 35% 정도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이보다 20% 정도 지지율이 더 높다는 것은 아직도 중도층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부분 존재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들 20%는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복지공약 남발, 지자체에 부담 전가. 기초연금 지자체 추가 부담액 3조2000억원/자료: 중앙일보>
‘박근혜의 거품 날개’ 드디어 꺾였다
복지 공약이 대폭 후퇴함에 따라 박 대통령에게 걸었던 민생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위축되며 지지율 급락을 견인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를 만회할 마땅한 ‘호재’가 박 대통령에게는 없는 실정이다. 대북관계가 다시 위축되고, 경제는 여전히 어려운 상태다. 국정원 대선개입 정황이 속속 드러나며 여론을 악화시킬 우려도 있다.
국면전환용으로 ‘NLL 대화록 실종’ 카드를 들고 나왔지만 먹힐지 의문이다. 외치로 내치의 부족함을 벌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여론은 멀리 있는 것보다 가까이 있는 것에, 체감할 수 없는 것보다는 쉽게 체감할 수 있는 것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상승 일변도로 치닫던 ‘박근혜 지지율’이 고개를 숙였다. 최근 한달 사이에 11%나 급락했지만 다시 반등할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는 별반 없다. 추락이 계속되며 국정 지지율이 자신의 고정 지지선까지 밀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고공행진을 유지해 왔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거품 날개’가 꺾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