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도 감당 못하는 '슈퍼 파워' 국정원 [오주르디님 글]
윤석열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수사할 때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은 사실상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와 선거법위반 혐의 적용을 노골적으로 막아서 논란이 된 바 있다.
제1차 찍어내기, 채동욱 총장 강제 사퇴
검찰과 법무부의 대치 상황이 한동안 이어졌다. 드디어 검찰 수사가 정치적 외압에 흔들리지 않도록 수사팀을 보호하려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 측과 황 장관 측 사이에 절충이 이뤄진다. 구속영장 청구를 포기하는 대신 선거법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것으로 일단 결론을 냈다.
원 전 원장에 대한 공판이 시작되면서 다시 긴장감이 조성됐다. 특별수사팀의 공소유지 의지는 강했다. 공판을 거치며 원 전 원장의 지시에 의해 국정원 심리전단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새로운 증거들이 속속 드러났다.
이때였다. 조선일보가 ‘채동욱 혼외아들’ 의혹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다. 보수언론들과 새누리당은 채 전 총장을 향해 도덕성에 흠결이 있다며 융단 폭격을 했다. 결국 채 전 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에 대해 정상적인 수사를 계속하려 하자 검찰 수장을 찍어낸 것이다.
<야당 의원들이 윤석열 팀장 수사 배제 결정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돋보였던 윤석열 팀장의 ‘소신 수사’
보호막이 돼 주던 검찰총장이 강제사퇴 당했지만 윤석열 특별수사팀은 흔들리지 않았다. 특히 윤 팀장의 소신은 변함이 없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 그가 한 말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총선, 대선에 개입하라고 지시한 것은 명확한 데도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지금 수사지휘권을 행사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종북 좌파가 여의도(국회)에 이렇게 많이 몰리면 되겠느냐. 종북 좌파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하라’고 지시했고 종북 좌파에는 ‘문재인 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이는 명백한 총선, 대선 개입 지시다.”
“선거개입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종북대응이라고 생각하고, 중간 간부에 의해 실행됐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코미디다.”
“국정원 중간 간부들도 검찰에 이미 윗선의 지시에 의해서 한 것이라고 시인했고 대검 공안부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는 데 동의했다. 채동욱 총장도 자리가 아까워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이 사건을 최소한 불구속 기소라도 해서 공소유지를 해보려고 참고 있던 것이다.”
채동욱-윤석열 ‘소신 라인’ VS 김기춘-황교안 ‘은폐 세력’
윤 팀장의 폭로성 발언에 대해 황교안 법무부장관과 청와대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황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신경민 민주당 의원이 “원세훈 전 원장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 청구하는 것을 왜 막았느냐”고 묻자 “막은 일 없다”고 부인했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항의 방문한 야당 의원들에게 “청와대가 관여하고 개입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남재준-김기춘. 야당은 이들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은폐하려는 세력의 핵심으로 꼽는다.>
하지만 세간에는 원로 공안통인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과 골수 공안통인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윤석열 특별수사팀의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힘겹게 버티며 수사를 지휘해온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이 국정원 수사에서 손을 땠다.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전 보고와 결재 없이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해 압수수색과 체포영장을 집행했다는 이유로 윤석열 팀장을 특별수사팀에서 배제한 것이다.
제2차 찍어내기, 윤석열 팀장 국정원 수사에서 배제
채 전 총장에 이은 두 번째 찍어내기다. 제1차 ‘도끼만행’은 황교안 장관과 보수언론, 새누리당, 국정원 등이 총동원돼 감행됐고, 제2차 만행은 조영곤 지검장을 통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사단은 16~17일 사이에 일어났다. 특별수사팀은 윤 팀장의 지휘로 국정원 직원 4명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17일 아침 8시경 이들 중 3명에 대해 영장을 집행했다. 그러자 남재준 국정원장이 직접 검찰 수뇌부에 강력하게 항의했고, 검찰은 국정원장의 고함소리에 놀랐는지 즉각 '윤 팀장 찍어내기'로 반응했다.
17일 오후 6시10분 서울지검장이 윤석열 특별수사팀장에게 더 이상 국정원 수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또 국정원은 직원들에 대한 수사사실을 검찰이 미리 통보하지 않은 것은 국정원법 위반이라며 검찰을 압박했다. 윤 팀장이 물러나 힘을 잃은 특별수사팀은 결국 체포해온 국정원 직원들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직원들이 풀려난 때는 윤 팀장에 대한 수사배제 지시가 하달된 직후였다.
<채동욱-윤석열. 국정원 사건이 최소한 진실이라도 밝히고자 했던 검찰의 '소신 라인'>
윤 팀장을 찍어내야만 했던 저들의 사정
체포돼 조사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들을 수사하던 윤 팀장을 찍어낸 걸까.
불리한 것을 은폐하기 위해서 그랬을 것이다. 특별수사팀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이 트위터에서 여당을 지지하고 야당을 반대하는 글을 5만5689회에 걸쳐 게시해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을 위반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별수사팀의 수사가 댓글에서 트위터로 확대되는 시점에서 일어난 ‘만행’이다. 기소된 원 전 원장과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트위터를 통한 공직선거법 위반이 공소사실에 추가되고, 급기야 국정원 직원이 전격 체포되자 보고·결재 불이행을 빙자해 윤 팀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린 것이다.
SNS 대선개입 대규모 증거 공개될 시점에 일어난 만행
수사를 잘해 왔다면 상을 받을 일이다. 그런데도 벌을 받았다. 보고·결재 불이행은 윤 팀장을 찍어내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댓글은 삭제하는 방법으로도 증거 인멸이 가능하지만 트위터 등 SNS는 서버가 미국에 있어 증거 인멸이 어렵다.
대선 개입 정황증거가 대대적으로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윤 팀장을 배제한 것으로 밖에 달리 해석되지 않는다.
윤 팀장에게 수사 배제 지시를 내린 조영곤 서울지검장의 이력을 들여다보자. 전형적인 TKS(대구-경북-서울대) 출신이다. 영북 영천 생으로 경북고를 나왔다. 대구지검 차장검사, 대구지검 검사장을 거쳐 최근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인물이다. 이 정도 이력이면 어떤 성향일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 남는다.
‘소신 라인’ 해체... 불법 대선개입 얼마나 깊고 넓기에
제대로 수사해 국정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해 보겠다는 검사 한 사람이 또 잘려나갔다. 채동욱-윤석열로 이어지는 ‘소신 라인’이 남재준 국정원장과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이어지는 대선 개입 은폐 세력에 의해 해체되고 말았다.
윤 팀장은 검찰 옷 벗을 각오를 하고 수사검사로서 양심에 충실하려 했을 것이다. 보고·결재 불이행으로 인한 문책을 각오한 채 공소사실을 추가하고 국정원 직원들에게 체포영장을 집행한 것으로 보인다.
오죽 방해가 심했으면 그리했을까. 윤 팀장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참된 장수의 위용을 국민들에게 보여줬다.
불법 대선 개입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넓고 깊기에 제대로 수사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검사들을 죄다 찍어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