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희.
교과서에선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80만 거란 군을 화려한 외교술로 물리고 강동 6주를 받아냈다라고만 배웠는데 아니더군요.
우선 링크.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1392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C%82%AC_%EC%83%81%EC%8B%9D%EC%9D%98_%EC%98%A4%EB%A5%98%EC%99%80_%EC%A7%84%EC%8B%A4
위는 네이버케스트고 아래는 위키백과 한국사 상식의 오류와 진실 입니다.
대충 요약을 해보자면
거란 소손녕이 8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입한다. 이에 따라 고려도 이에 대응하여 군대를 꾸린다. 그중 서희가 중군사를 맞는다. 소손녕은 우선 항복권고를 하나 조정은 대책을 못새우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고 소손녕은 그 것을 못참고 안융진을 공격한다. 하지만 기적이 일어난다. 대도수와 유방이 거란군을 물리쳐 이긴다.(정확한 피해내역은 없지만 대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패한 소손녕은 제차 항복권고를 하고 고려조정은 서희가 대표로 가서 외교적으로 해결한다. 거란이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고려와 화친을 맺을려고 하나 니들이 무시하니 한거다라고 말했는데 서희는 `오해다. 중간의 여진이 있어 육로로 가는게 무리다.여진을 물리치고 그 땅을 차지하는 것을 인정해주면 화친을 하겠다.`라고 주장한다.
소손녕은 바로 조정에 알려 승락을 받고 군을 철수 시킨다. 또한 서희는 직접 군사를 일끌어 여진족을 몰아낸뒤 강동 6주를 차지한다.
교과서 내용을 뒤집는 내용입니다.
말로써 물리친게 아니라 고려군의 힘으로 또한 그 힘을 이용한 외교술로 이겨낸 겁니다. 교과서는 이 내용을 너무 축약을 했네요.
고려 초기에는 그렇게 약한 국가가 아니었나 봅니다.
- 안융진 전투를 대승으로 판단한 이유는 소손녕의 전투후 행동을 보면 판단할수 있습니다. 80만이라는 군대가 있었습니다. 한차례전투의 패로 전투를 그만두고 항복권고를 한다는게 이해가 안됩니다. 물론 80만이라는 군대가 다 전투병과는 아니지만 작은 패라면 계속해서 전투를 하면 됩니다. 하지만 한번 전투 패한 걸로 항복권고를 한다는 건 병사나 소손녕 자신의 정신적인 충격이 있을 정도의 패가 있었다고 판단이 됩니다. 대충 이런게 아닐까요?
`이 작은 진을 차지하는데 이정도라면 내륙에는 얼마나 있는 걸까? 이길수는 있으나 나또한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거란은 그 당시 송과 대치중이라 80만 대군을 끌고온 것 자체가 사실인지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분명 많은 군대를 가지고 왔고 고려를 지도에서 지울정도의 규모가 아닐까 판단이 됩니다. 작은 전투로 사기가 꺽여 그냥 쌀만 축내는 돼지 집단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판단한게 후퇴의 명분을 받기위한 항복권고.
이 외교로 고려는 그 동안 눈의 가시였던 여진을 쳐 강동 6주를 얻고 거란과 화친을 해 국방의 안전을 꾀합니다. 거란은 한번의 전투로 인해 외교적 우위를 빼았겼으며 듣이 될 만한 이익없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고려는 1석 3조를 얻은 거죠. 거란은 허울 좋은 화친만 가졌을 뿐이죠.
그 중심에 서희가 있습니다. 교과서는 말로써 거란을 물리치고 강동 6주를 얻었다고 한줄로 평가를 하지만 그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있는거죠. 그래서 역사가 재미있습니다.
위 글은 개인적인 판단으로 쓴 글이므로 문제되는 내용이 있으면 수정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