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대중이 목포상고 학생회장이었는가?
-아님.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간 반장을 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학생회장은 아님(당시 목포상고는 5년제). 다만, 일본 군복을 입고 있는 사진은 실제 김대중이 맞다는 것이 중론(반론 있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사진은 반장으로서 목포상고 학생회 간부임을 나타내는 기록이 아닐까 함.
2. 그럼 학창시절 김대중은 친일 행동을 한 것은 아닌가?
-특별한 기록은 없음. 다만, 김대중 자서전이나 관련 서적에서 고등학생 김대중은 "반장을 하였으나, 학년이 오를 수록 성적 하락, 일본인 학생들과 불화 등으로 반장까지 그만두었다"는 기록은 있음. 특히, "반일 사상과 관련된 작문"으로 인해 학교에서 요주 인물로 낙인되었다고 함.
-이와 같이 제한된 사실에 기반한다면, 어찌되었든 고등학교 재학시절, 학년이 오를수록 학교에서 원하는 모범생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판단됨.
3. 그럼 적극적인 독립 운동, 반일 투쟁은 해왔는가?
-없었음. 유년 시절 김대중에게 반일 감정을 키우는 사건은 있었다고 하나, 실제 적극적인 반일 운동에 참여한 이력은 없음. 김대중에게 유리한 문서들을 보아도 학창시절 김대중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지 독립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음.
-다만 김대중에게 변명의 여지를 준다면 김대중이 성년이 되었을 즈음에 해방이 됨. (24년 출생, 45년 해방) 즉, 독립 운동의 의무를 씌우기에는 좀 어린 나이였음.
4. 창씨 개명 문제는?
-15세 때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로 개명함.
-이와 관련해서 또 다시 김대중에게 변명의 여지를 준다면, 창씨 개명은 일제의 강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김대중이 15세 때 개명이라는 점, 개명을 하지 않으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점을 들 수 있음.
-사족이지만 창씨 개명을 했다고 해서 김대중을 까는 것은 김대중이 친일과 관련해서 까일만한 것이 없었다는 반증 밖에 안 됨.
5. 그럼 김대중의 친일 행적에 대한 너의 결론은 뭔가?
-일단 친일이네 독립운동이네 하기에는 당시 김대중은 너무 어림.
-독립운동가 출신 아님. 다만 사업가 김대중은 독립 운동가들과 친분이 있었고, 해방 후에 정치인으로서 독립운동가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음.
-김대중에게 유리한 서적들을 근거로 해봐도 일본 사람들과 친분이 있었다고 보임. 김대중납치사건 때도 일본의 비호로 목숨을 건짐. 하지만 친일행적이라고 볼만한 성격이 전혀 아님. 근거 전혀 없음.
-결론은 독립운동 한 사람 아님. 하지만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할 정도의 친일파도 아님.
김대중을 친일과 엮는 것은 빨갱이로 엮는 것보다도 근거가 빈약하고 설득력도 떨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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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 일제 강점기 김대중은 조낸 꼬꼬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