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교학사 한국사 30만권을 사 주자

이밥에고깃국 작성일 14.01.31 17:3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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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ongak.net/board/index.html?id=nca123&no=5878

 

짱공유 회원분들은 교학사 한국사 사주기 운동에 적극 참여바랍니다.

 

아들, 딸,  손자, 손녀, 조카 형제들에게 한 권씩 선물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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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모 박성현 주필이 제안을 하기를 우리가 150% 구입하자고 했다.

박주필에 의하면 우리나라 한해 한국사를 구입할 수 있는 학생수가 20만명이란다.

그래서 우리 국민들이 십시일반으로 30만권만 사주면 좌빨들의 역사조작을

무너뜨릴 수 있고 이땅에 기생하고 좌빨들을 청소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여기서 내가 간단히 계산을 해 봤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가 대략 2300개이다. 이들 학교에서 20만권의 한국사를 구입한다니

200,000/2,300 하면 한 학교당 87권 정도 나온다.

교학사 채택율이 처음에 10개 학교 정도였다니 870권 정도 팔릴 것이었다.

 

현재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살리기'

홈페이지 http://www.policyconsumer.com/ 에서

예약을 받는데 지금 대략 1000권 정도는 예약이 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원래 교학사가 팔려고 했든 870권은 초과 했다. 이것이 국민 여론의 힘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아예 몇십만권을 팔아주는 것이다.물론 나도 몇권 살 것이다.

그래서 얼마 전 초등학교 임용 시험 치른 아들놈과 대학교 1학년 딸레미에게 읽힐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후세들이 옳바른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공부해서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게 된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살리기'

홈페이지 http://www.policyconsumer.com/ 


 

 

게시 시간: 2013. 06. 14.

이영훈 박효종 교수가 대표로 있는 교과서 포럼이 '한국 근현대사'를 내놓자 좌파 민족주의 진영에서 친일파의 부활이라며 연일 포문을 열고 있다.

"친일파!"는 한국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 단어다.

'빨갱이!'라는 말과 비슷해서 일단 라벨을 붙이기만 하면 쉽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다.

일종의 주술이다.

참여정부 과거사 위원회를 통해 남발되었던 바로 그 딱지다.

친일파라면 일진회(一進會)를 빼놓을 수 없다.

당시의 한 기록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갑오경장 이후 동학도(東學徒)의 잔당들은 각지에 잠복하고 있었지만 안으로는 백성들의 화제거리도 되지 않았고 밖으로는 지방대에 탄압되어 아무 횡포도 부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 모르게 부서를 정해놓고 국가의 유사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때 윤시병 등이 일진회를 창설하자 그들은 사람을 각지로 보내 일어나 호응하므로 10일도 되지 않아 13도의 동학도들이 모두 일어나 혹 진보회라 하기도 하고 혹 일진회 지회로 칭하기도 하였으며 그들을 따르는 사람이 날로 늘어났다."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매천(梅泉) 황현이다.

그는 한일합방의 그날 음독 자결로 생을 마감했다.

그의 일기 매천야록은 합방전 정세를 누구보다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1930년대의 다른 기록 또한 다르지 않다.

동학의 큰 물줄기 하나가 진보회 일진회로 나아가는 과정을 기술한 자료들이 남아있다.

교과서 포럼이 혁명 아닌 봉기로 규정해 민족주의 진영의 반발을 불렀던 바로 그 동학에 관한 일부 기록들은 이처럼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민족운동 천도교의 줄기를 생각하면 이들 기록에도 적지않은 왜곡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학의 이면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다.

미화할 이유도, 폄훼할 이유도 없다.

무능한 양반 지배층에 고통받던 상당수의 동학 농민들에겐 근대화라는 대안을 제시하는 일본이 차악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러시아에 비기면 더욱 그랬을 것이다.

문제는 조선의 자력 근대화 가능성이라고 하겠지만 지배계급이었던 유림(儒林)이란 존재는 과연 어떠했나.

사대주의의 총화요 주자학의 거두였던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만동묘(萬東廟)라는 사당을 만들어 놓고 명나라 신종과 의종을 거국적으로 제사 지내왔던 그들이다.

농민들에게서 제사비용까지 약탈해 갔다.

만동묘를 오르는 계단은 유독 폭이 좁고 가파르다.

누구든 기어서 올라가야 했다.

"황제의 위패가 계신 곳이다!" 상상만 해도 숨막히는 장면이다.

이 기괴한 시대착오가 끝난 것은 명이 망하고, 청도 망하고, 병합도 7년이 더 지난 1917년의 일이었다.

한때의 교과서는 이를 일제의 문화침탈이라고 썼다.

그러나 시대착오와 문화침탈, 둘 중 과연 무엇이라고 해야 하나.

1937년 12월에 발행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는 유림 10여명이 야밤에 또 만동묘에 숨어들어 제사 지낸 일을 실로 딱하게 기록하고 있다.

오늘의 탈레반이나 북한처럼 스스로는 더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정신과 물질이 모두 궁벽한 나라였다.

20년대의 동아일보는 학교 교실이 모자라 비어있던 향교에서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몰아낸 유림에 관한 기사를 쓰고 있다.

향교에서 신교육을 하면 "공자님의 혼령이 어지러워 하신다!"는 이유였다.

동아일보는 '유림의 본질이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이를 개탄하는 긴 사설을 썼었다.

식민지근대화 아니면 또 다른 무슨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것인지 궁금하다.

자신의 실패에는 눈을 감고 오로지 피해의식만 내세우는 우스꽝스런 민족주의 교과서는 이제 접을 때가 되었다.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않겠다는 바보의 아둔함이요 주자학적 고지식이다.

 

남, 북한 초대 내각 라인업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 - 상해임정 초대 대통령
부통령 이시영 - 상해임정 재무총장
국회의장 신익희 - 상해임정 내무총장 
대법원장 김병로 - 항일변호사
국무총리 겸 국방장관 이범석 - 광복군 참모장
외무장관 장택상 - 일제시대 청구구락부 사건으로 복역
내무장관 윤치영 - 일제시대 때 흥업구락부 사건으로 복역 
재무장관 김도연 - 2·8독립선언으로 복역
법부장관 이인 - 항일변호사
문교장관 안호상 - 철학교수
농림장관 조봉암 - 좌익이었다가 전향

상공장관 임영신 - 독립운동가, 교육가
사회장관 전진한 - 일제시대 노동운동가

교통장관 민희식 - 교통전문가. 
체신장관 윤석구 - 교육 사회운동가. 
무임소 장관 이청천 - 광복군 총사령관. 
무임소장관 이윤영-  독립운동가 조만식의 제자. 
국회부의장 김동원 -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복역

국회부의장 김약수 - 좌익계열 독립운동가

 

대부분이 항일독립운동가들이다. 몇몇은 항일독립운동 경력이 없다 뿐이지 친일파가 아니었고.

그럼 민족의 태양, 백두혈통의 개조(開祖)께서 세운 내각은 어떨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영주 - 북한 부주석, (일제시대 헌병 보조원, 그리고 김일성 동생)
장헌근 - 북한 임시 인민위원회 사법부장 (일제시대 중추원 참의)
강양욱 - 북한 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 (일제시대 도의원)
이승엽 - 남조선 로동당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일제 식량수탈기관 "식량영단" 이사)
정국은 - 북한 문화선전성 부부상 (일제시대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기자)
김정제 - 북한 보위성 부상 (일제시대 양주군수)
조일명 - 북한 문화선전성 부상 (친일단체 "대화숙" 출신, 학도병 지원유세)
홍명희 - 북한 부수상 (일제시대 임전대책협의회 출신)
이활 - 북한 인민군 초대공군 사령관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허민국 - 북한 인민군 9사단장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강치우 - 북한 인민군 기술 부사단장 (일제시대 일본군 나고야 항공학교 정예 출신)
최승희 - 일제시대 친일예술인 총연맹 회원
김달삼 - 조선로동당 4.3사건 주동자 (일본군 소위. 시다바리 노릇하던 만주군이 아니라 대일본제국 정규군이다.)
박팔양 - 북한 노동신문 창간발기인, 노동신문 편집부장 (친일기관지 만선일보 편집부장, 문화부장)
한낙규 - 북한 김일성대학 교수 (일제시대 검찰총장)
정준택 - 북한 행정10국 산업국장 (일제시대 광산지배인)
한희진 - 북한 임시인민위원회 교통국장 (일제시대 함흥철도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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