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북한 유학생과의 대화

이밥에고깃국 작성일 14.04.14 21:3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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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北 유학생 2명기자 묵던 호텔 찾아와
"잘살게 된 남조선 보면 북도 잘할 수 있을 텐데 왜 못하는지"라며 한숨
'對美종속' 외치는 이들, 克日의 대한민국史 되돌아보길

  2011112901371_0.jpg  icon_img_caption.jpg 홍준호 논설위원

시위대가 연일 거리를 휘저으며 "한·미 FTA는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떠드는 걸 보면서 21년 전 일이 떠올랐다.

1990년 3월 김영삼 민자당 최고위원의 소련 방문을 취재하러 모스크바에 갔을 때였다. 야심한 시각 호텔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건장한 20대 남자 2명이 눈앞에 서 있었다. 대뜸 "북한 유학생인데 얘기를 듣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 몇달 전부터 동유럽이 무너져내리고 소련은 해체되기 직전이었던 때였다. 긴장한 탓인지 유학생들의 얼굴 근육은 잔뜩 굳어 있었으나 눈은 호기심으로 반짝이고 입은 너무 많은 궁금증들을 참아내지 못했다. 방안 꼬마 냉장고의 보드카를 차례로 비우며 이들과의 대화에 날이 새는 줄 몰랐다.

한국 소식과 한국이 잘살게 된 과정을 듣고 싶어하는 유학생들에게 기자 버릇을 누르지 못하고 질문부터 먼저 해댔다. 이들은 북한 엘리트의 자제였다. 한 유학생의 아버지는 군 장성이고 다른 한 유학생 부모는 대학교수와 의사였다.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북한 유학생들이 모스크바에 수백명 있는데 동유럽으로 간 유학생들 대부분이 이미 본국으로 소환됐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도 언제 소환령이 떨어질지 몰라 초조해한다고 했다. 당시 동유럽 북한 유학생 중 상당수는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으로 왔다.

그보다 한 해 전인 1989년 문익환 목사, 평민당 서경원 의원, 임수경 학생이 차례로 밀입북한 일이 있었다. 임수경을 어떻게 봤느냐고 물었더니 두 유학생 모두 '통일의 꽃'이라며 흥분하는데 연방 입에서 침이 튀었다. 한 유학생은 한동안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고 "조선 민족이 잘살게 돼서 꼭 한 번 일본에 원수를 갚아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갑자기 고개를 떨궜다. 긴 한숨과 함께 "남조선이 잘사는 걸 보면 같은 민족인 북조선 인민들도 충분히 잘할 수 있을 텐데 우린 왜 이 모양인가…"라면서.

해방 후 대한민국사(史)는 일본 따라잡기의 역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1965년 30억달러였던 한국 GDP는 일본 900억달러의 30분의 1에 불과했다. IMF가 예상한 올해 한국 GDP는 1조126억달러로 일본의 5조8000억달러의 5분의 1 가까이 따라붙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일본의 절반 수준이니 남북한이 합쳐 일본이 결코 만만하게 보지 못할 국력을 갖춘 통일 한국을 꿈꾸는 것도 허세로만 비치지 않게 됐다.

21년 전 모스크바의 북한 유학생들은 북한이 계속 문을 걸어 닫고 가면 일본을 이기기는커녕 살길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가 방향을 바꿀 것으론 보지 않았다. 북한 경제는 워낙 구제 불능이라 개혁한다고 해봐야 "고목(枯木)에 접붙이는 꼴"이라고도 했다. 그땐 설마 했는데 21년을 지나고 보니 그 유학생들 말대로 북한은 그 후 고집스럽게 '쇄국의 길'로만 나갔다. "한국 학생들은 과거 독재 정권과 맞서 싸웠다. 임수경 학생은 감옥갈 걸 뻔히 알면서도 걸어서 판문점을 통해 한국에 돌아왔다. 북한 학생들은 임수경 학생엔 환호하면서 왜 북한의 잘못된 정책엔 저항하지 않는가"라고 물어봤다. "우리나라는 댐에 구멍을 내 물이 쏟아지면 구멍 낸 사람부터 휩쓸려가기 때문에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미 FTA 발효 이후에도 우리 경제를 어느 수준까지 개방하는 것이 적정한가를 둘러싼 고민은 계속될 것이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자유무역의 무한정 확대만이 능사인가란 의문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FTA의 유·불리를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따지는 것과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 경제가 미국에 예속되는 21세기판 신(新)식민주의 시대라도 도래할 것처럼 몰아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 한·미 FTA를 우리의 필요에 따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철저하게 장사 논리로 한다"고 했다. 지금 한·미 FTA 저지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의 홈페이지엔 '미.친(美親) 놈들을 손들게 합시다'는 슬로건이 내걸려 있다. 세계 최대 경제시장인 미국과 친해지는 것 자체를 미.친 짓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대한제국을 강탈한 일본은 나쁜 나라이고 그런 일본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넘긴 이완용은 매국노다. 맞다. 그러나 그것만 계속 떠들다 정작 우리가 왜 일본에 먹혔는가를 잊으면 곤란하다. 우리가 일본에 먹힌 진짜 이유는 힘이 없어서였다. 힘을 길러 '극일(克日)을 이룬 대한민국'과 제국주의 운운하며 '남 손가락질만 하다 깡통 찬 북한'의 차이를 알게 된 후 나라의 앞날을 고심하던 북한 유학생들도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을 것이다. 혹 그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그들이 부러워하던 대한민국에서 한·미 FTA를 추진했다는 이유로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한 수많은 정치인과 관료들을 제2, 제3의 이완용으로 몰아가며 욕보이는 이 괴이한 현상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드는지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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