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이하 경칭 생략)의 총리 낙마엔 ‘아들 병역특혜설(說)’이 한몫했다. 의경 10개월 만에 본청 ‘꽃보직’으로 옮겼다는 것. 경무관 시절 그 아들을 데리고 있던 치안감을 취재했다.
“진실은 정반대다. 2010년 말 ‘핵안보정상회담’ 기획단장이 됐다. 외국 경호팀과 잦은 업무연락 때문에 영어에 능통한 의경이 필요했다. 본청에서 토익 점수 순으로 5명 명단이 왔는데, 내가 그 친구를 골랐다. 맨 먼저 ‘대원외고-서울대 경영대’의 학력에 눈길이 갔다.”
“의경은 ‘빽’을 차단하기 위해 자대에 배치되면 4개월간 보직이동 금지다. 내무반에 적응하고 후임도 들어오기 때문이다. 입대 4개월 직후면 몰라도, 그 친구는 입대 10개월 때 옮겨 왔다. 오죽하면 ‘(그렇게 오래 서초경찰서 방범대에 방치했다니) 네가 안대희 대법관 진짜 친 아들이 맞느냐’고 놀렸겠는가. 안대희의 강직한 공직상을 칭찬해야지 엉뚱하게 ‘병역 특혜’로 둔갑시켜 황당했다.”
이 치안감은 “병역특혜로 난도질하려면 당사자인 나에게 확인은 해야 하지 않는가. 그 어떤 기자도 취재 전화 한 통 없었고, 당신이 처음”이라 했다. 대한민국의 진실은 이렇게 처참하게 휴지통에 나뒹군다.
지난 주말 MBC가 ‘문창극 총리 후보 긴급 대담’을 내보냈다. 그의 교회 강연 풀 동영상을 내보내 6.6%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앞 뒤 문맥을 잘라 친일로 몰고간 KBS와 비교된다. “잘 보았다”는 칭찬 글이 MBC 게시판에 넘치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진실에 목마르다는 반증이다. 이날 긴급 대담의 압권은 동영상이 끝난 뒤 한 진보 패널의 반응이다. “공영방송 MBC가 저런 동영상을 저렇게 오래 틀어도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번 사태의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방송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왜곡 편집을 하면 안 된다는 것. 보도의 원칙은 자기가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시청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필요한 사항을 빠짐없이 보여주는 것. 둘째, 네티즌들도 미디어에 속아 금방 흥분하는 버릇을 버려야 한다.” 이 발언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진보 쪽 ‘토론지존’인 진중권이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때 쓴 ‘MBC의 유치한 보복’에서다. 그는 또 입장을 바꿔 지금은 “도대체 내 세금으로 왜 일본국 총리대신(문창극) 월급을 줘야 하는지…”라 조롱하고 있다.
정치 판도를 보면 문창극이 총리가 되기는 쉽지 않다. 동교동계와 친노 쪽은 주군(主君) 미망인들의 눈치를 보며 오버 액션 중이다. 가신들은 과잉충성으로 정치 생존을 도모하는 법이다. 새누리당 당권 주자들도 소장파 표를 노려 선명성 경쟁의 제물로 삼고 있다. 먼저 야당이 문창극을 마구 찌르고, 마지막으로 여당이 지지율과 재·보선에 방해된다며 그의 목을 조르는 분위기다. 이런 여야의 자진사퇴·지명철회·청문회 반대 주장에는 하나의 공통분모가 있다. 청문회에서 “문창극≠친일파”의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운 것이다. 억울하면 풀어줘야지 “억울해도 물러나라”는 건 비겁한 모순이다. 비리 전과자 국회의원이 문창극의 청렴성을 따지고, 자식들이 해외 시민권자인 야당의원이 그의 애국심과 국가관을 검증하겠다고 덤비는 것부터 웃기는 일이다.
이런 자의적 고무줄 잣대로 안대희에서 문창극까지 ‘인격살인’의 야만적 굿판이 꼬리를 물고 있다. 국무총리 적합도를 따지기에 앞서 이는 한 인간을 대하는 예의에 관한 문제다. 언론들부터 일방적으로 몰고 가기보다 그냥 팩트라도 제대로 보도했으면 한다. 총리 청문회도 반드시 열려야 한다. 그것이 합법적 절차이고 민주주의다. 좌우의 진영논리와 정중한 거리를 두고 가만히 지켜보았으면 한다. 결국 최종 판단은 국민들의 몫이다.
이철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