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 박근혜, 교황 평화 메시지 하루 만에 무시, 생생보도
-내셔널가톨릭뉴스, 경찰 대거 동원 김영오씨 산보길 막아
-유민아빠 김영오씨 국민과 정부의 분열의 표징
내셔널가톨릭뉴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화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박근혜가 그녀의 경찰을 대거 동원하여 한국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자를 에워싸고 막아 나섰다고 비난했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15일 ‘Police confront Korean ferryboat victim’s father-한국 여객선 피해자 아버지를 막아선 경찰’이라는 제목으로 단식 중인 김영오씨의 산책길을 막아 선 경찰의 모습은 박근혜가 교황에게 ‘교황의 방한으로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과 모순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기사는 ‘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자를 꼽자면, 그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 팀을 구성하고 죄가 드러난 자들은 누구든지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박근혜정부에 요구하며 33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 씨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 며 박근혜와 그녀의 경찰이 김영오씨의 산책길을 막아섰다고 전했다. 단식 중인 김영오씨는 날마다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며 산책을 하고 있었고 이날도 산책을 나서던 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현장사진 5장과 함께 이 소식을 전했는데 내셔널뉴스는 산책길에 나서기 직전부터 김영오씨와 인터뷰를 진행 중이었던 관계로 생생한 현장 뉴스를 포착해 전 세계에 알릴 수 있게 됐다. 내셔널가톨릭뉴스의 폭스 기자는 경찰이 김씨를 둘러싼 현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그가 계속 머물고 있는 광장에서 김 씨와 내가 함께 대화하던 중, 그가 때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우리가 앞으로 움직이자, 처음엔 경찰 십 수명이, 다음엔 수십 명이 우리 앞에 저지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저지선 안에 갇혔고, 경찰이 김 씨에게 돌아가라고 말했고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몇 분 만에, 한 사람 대 경찰 수십 명 간의 대치상태는, 더 많은 경찰이 그를 저지시키는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확대되었다.(중략) 김 씨는 발걸음을 돌려 광장 발치에 있는 그의 흰색 텐트로 조용히 돌아갔다.>내셔널가톨릭뉴스의 이 뉴스로 박근혜와 그녀의 정부가 얼마나 기만적이며 위선적인가가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광복절을 맞아 텅 빈 도시의 모습을 전하며 단지 한 곳, 여객선 참사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수의 사람들이 모인 시청 광장만이 예외이고 이곳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노란 리본들과 기도 리본들이 광장을 장식하고 있다고 현장의 모습을 전했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김영오씨가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그에게 우리의 독립적 수사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간청하기 위해 버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한국인들이 김씨의 쇠약해진 어깨 위에 희망을 올려놓은 것 같다며 김영오씨가 국민적 상징, 즉 국민과 정부의 분열의 표징이 되었다고 전했다.
내셔널가톨릭뉴스는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는 교황의 한국과 세월호 희생자들, 그리고 유족들을 위한 기도문을 소개하며 기사를 마무리했다.
한편 경찰이 김영오씨를 막아 선 것은 같은 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기념행사에 박근혜가 참석하기 때문에 경찰이 과잉반응을 한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국민TV의 뉴스에 따르면 아침마다 하는 산책을 하기 위해 김영오씨가 걸음을 옮겼고 10시로 예정된 광복절 기념식이 시작되기 30분 전인 오전 9시 30분경, 김영오씨와 도철스님, 김 씨를 부축하는 유가족 1명, 천주교 사제 등 4명은 광화문 광장을 한 바퀴 돌려고 했지만 경찰에 가로막혀 40미터도 나가지 못하고 돌아왔다고 전했다.
김영오씨는 이에 대해 ‘“대한민국이 이런 곳입니다. 제가 아침저녁으로 한 바퀴 도는데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이래요. 나 혼자고 유가족 몇 명밖에 없어요. 딱 4명 갑니다. 매일 하는 운동을 지금 못하게 합니다. 이래서 대한민국 국민이 더 일어나는 겁니다. 모르십니까?’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그녀는 한 달이 넘는 단식으로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이 남자가 무엇이 그리 무서워 대거 경찰병력을 동원해 막아서는 것일까?
어둠과 사악한 곳에 있는 자들은 진리와 정의, 그리고 해 아래 서기를 두려워한다. 김영오씨는 목숨을 내건 단식으로 진실과 정의를 온 삶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김영오씨를 막아서는 박근혜와 경찰들, 그들이 막아서는 이유는 그들 자신이 어둠의 세력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닐까?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내셔널가톨릭뉴스의 기사전문이다.
번역 감수: elisabeth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rGGN2b
Police confront Korean ferryboat victim’s father
한국 여객선 피해자 아버지를 막아선 경찰
National Catholic Reporter by Thomas C. Fox | Aug. 15, 2014
NCR’s Tom Fox interviewing father of ferryboat victim before police moved in (photo by Hoa Fox)
경찰이 진입하기 전 여객선 피해자의 아버지와 인터뷰 중인 NCR 기자 톰 폭스
Kim begins walk on plaza set for beatifications (photos by Tom Fox)
김 씨가 시복식을 준비 중인 광장을 걷기 시작
Police tell Kim he must stop walking
경찰이 그에게 걸음을 멈추라고 지시
Police cordon off Kim
김 씨를 둘러싼 경찰
Ferryboat victim supporters confront police
경찰에 맞서는 여객선 피해자의 지지자들
SEOUL, SOUTH KOREA ? Less than a day after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told Pope Francis, here on a five-day visit, that she hoped his trip would “begin an era of peace and reconciliation,” her police were out in force Friday and cordoned off and confronted the man most widely seen as the soul of the vulnerable and voiceless of South Korea.
한국 박근혜 대통령이 5일 일정으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그의 방한으로 “평화와 화해의 시대가 시작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그녀의 경찰은 금요일 병력을 대거 동원해 한국에서 가장 나약하고 힘없는 영혼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남자를 에워싸고 막아섰다.
There is an irony here. Pope Francis, speaking Thursday afternoon to Park, assembled dignitaries, and later to the Korean bishops, also called for reconciliation. He told the bishops they must live in solidarity with the poor and vulnerable.
여기에는 모순이 있다. 목요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박 대통령 및 주요 공직자들과의 만남에서, 이후에 만난 한국 주교단에게도 화해를 주문했다. 교황은 주교들에게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과 연대해 살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No one in South Korean society more visibly represents the vulnerable of the nation than does Kim Young-oh, who has been fasting for 33 days while demanding the Park government set up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into the ferry disaster that took his daughter’s life, calling for legislation to prosecute anyone found culpable.
한국 사회에서 힘없는 자를 꼽자면, 그의 딸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에 대한 독립적인 수사 팀을 구성하고 죄가 드러난 자들은 누구든지 기소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박근혜정부에 요구하며 33일째 단식 중인 김영오 씨보다 눈에 띄는 사람은 없다.
Korean Catholics are celebrating two feast days Friday. The first, Liberation Day, a national holiday, commemorates the Korean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at the end of World War II. The second is the feast of the Assumption. Offices are closed. The streets of the city are quiet. The exception is City Hall plaza, where countless thousands are gathered in support of the families of the ferry disaster. Countless yellow ribbons, prayer ribbons, adorn the plaza.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금요일 2개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첫 번째는 한국이 제2차 세계대전 말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을 기념하는 국경일인 광복절이다. 두 번째는 성모승천 대축일이다. 사무실들은 문을 닫았다. 도시의 거리들은 조용하다. 여객선 참사 가족들을 응원하기 위해 무수의 사람들이 모인 시청 광장만이 예외이다. 셀 수 없는 노란 리본들과 기도 리본들이 광장을 장식한다.
Pope Francis on Friday morning was celebrating Mass in Daejeon, South Korea, 90 miles south of here. He will spend the rest of the day with young Catholics there, gathered for Asian Youth Day. He briefly met families of ferry victims as he stepped off his plane Thursday. Today, he will encounter young Koreans the very age of those who died in the ferryboat sinking, which took the lives of 306, most of them high school students, one of them Kim’s 17-year-old daughter, Kim Yoo Min.
금요일 오전,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에서 남쪽으로 90마일 (역주: 약 145 킬로미터) 떨어진 대전, 한국에서 미사를 거행하고 있었다. 그는 이 날 나머지 시간을 그곳에서 아시아청년대회를 위해 모인 젊은 가톨릭신자들과 보낼 것이다. 그는 목요일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여객선 희생자 유가족들을 잠시 만났다. 오늘 그는 대부분 고등학생들이었고 그 중 한 명이 김 씨의 17살 딸 김유민 양인, 306명이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사망한 이들과 똑같은 나이의 젊은 한국인들을 만날 예정이다.
Three days ago, on the 30th day of his fast, Kim told me his fondest memory was of his daughter coming up from behind him each day, hugging him and calling out, “Father, Father.”
3일 전, 단식 30일째인 김 씨가 가장 애정 어린 기억은 그의 딸이 매일 그를 뒤에서 안으며 “아빠, 아빠”하고 부르던 것이라고 내게 말했다.
Today, on the 33rd day of his fast, I visited with Kim again and asked him how his spirits were holding out. “I am holding on,” he said. “I am hoping I can meet Pope Francis. I will beg him to support our demands for an independent investigation,” he told me through an interpreter.
오늘, 단식 33일 째, 나는 김 씨를 다시 방문해 그가 정신력으로 어떻게 버티고있는지 물어보았다. “버티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에게 우리의 독립적 수사요구를 지지해 달라고 간청할 것이다”고 그는 통역을 통해 내게 말했다.
Scores of ferry victim relatives began a fast one month back, trying to draw attention to their demands. All but Kim has dropped out. He is weak and bone thin. He has a difficult time standing. He leaned upon a cane when I met him Friday.
한달 전 많은 희생자 유가족들이 그들의 요구에 관심을 끌기 위해 단식을 시작했다. 김 씨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중단했다. 그는 쇠약하고 뼈밖에 없이 말랐다. 그는 서있는 것도 힘들어 한다. 금요일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지팡이에 기대어있었다.
“I’m still hopeful I can speak with the pope,” he repeated more than once. ”
교황님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고 그는 반복해서 말했다.
As the days have passed, Koreans have focused more and more on Kim, seemingly placing their own hopes on his weakened shoulders. He has become a national symbol, increasingly a sign of a divide between the people and their government. He has become the voice of the marginalized that Francis on Thursday called his bishops to become. Kim’s picture can be seen on placards throughout the city. His face appears in newspapers daily. They are following his fast, which daily seems to grow in importance to the Korean people.
날이 갈수록, 한국인들은 김 씨에게 더욱더 집중해 왔는데, 이는 그들의 희망을 그의 쇠약해진 어깨에 올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국민적 상징이 되었고 점점 더 국민과 정부 간 분열의 표징이 되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그의 주교들에게 되어야 한다고 주문한 소외계층의 대변자가 되었다. 김 씨의 사진은 이 도시 전역의 플래카드에 올려져 있다. 그의 사진은 일간신문에 게재되고 있다. 사람들은 그의 단식을 뒤따르고 있으며, 이는 한국인들에게 매일 더욱 중요해지는 듯하다.
As Kim and I spoke together on the plaza where he has remained for the past month, he walked slowing, leaning at times on his cane. As we proceeded, dozens, then scores, of Korean police began forming a line in front of us. Soon we were being cordoned off, and the police told Kim he would have to turn around, that he could no longer walk forward.
지난 한 달 동안 그가 계속 머물고 있는 광장에서 김 씨와 내가 함께 대화하던 중, 그가 때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서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우리가 앞으로 움직이자, 처음엔 경찰 십 수명이, 다음엔 수십 명이 우리 앞에 저지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저지선 안에 갇혔고, 경찰이 김 씨에게 돌아가라고 말했고 그는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Within minutes, what became a confrontation between one man and a few dozen police had escalated as scores of police added to the ranks of those stopping Kim.
몇 분 만에, 한 사람 대 경찰 수십 명 간의 대치상태는, 더 많은 경찰이 그를 저지시키는 대열에 가담함으로써 확대되었다.
Within a few more minutes, dozens, then scores, of Kim supporters were lining up face-to-face with the police. The Kim supporters started chanting through megaphones, demanding legislation to investigate the ferry disaster. The protesters held placards over their heads ? and in the faces of the police ? with Korean characters printed on them demanding the legislation.
몇 분이 더 흐르자, 수십 명의 김 씨의 지지자들이 경찰과 얼굴을 맞대며 대열을 갖췄다. 김 씨의 지지자들은 세월호 참사를 수사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확성기를 통해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시위자들은 그들의 머리 위로 ?그리고 경찰들의 얼굴 앞에? 한국어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구호가 인쇄된 플래카드를 들었다.
Kim stepped back and returned quietly to his white tent at the foot of the plaza.
김 씨는 발걸음을 돌려 광장 발치에 있는 그의 흰색 텐트로 조용히 돌아갔다.
Saturday, on the same plaza where the police confronted Kim, Pope Francis is set to beatify 124 18th- and 19th-century martyrs. The police want Kim and the other ferry victim families out of Gwanghwamun Plaza by the end of the day Friday so it can be readied for the beatification ceremony.
토요일, 경찰이 김 씨와 대치한 같은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124위의 18-19 세기 순교자들을 시복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경찰은 시복미사 준비를 위해 금요일까지 김 씨와 다른 희생자 유가족들이 광화문광장에서 철수해주기를 원하고 있다.
The families have reluctantly agreed to leave by 4 p.m. to avoid violence. They have been told by city officials they can return to the plaza after the ceremony.
유가족들은 물리적 충돌을 피하기 위해 오후 4시까지 철수하기로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시복식 후에 광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시청직원의 말을 들었다.
While Catholic officials here hope the beatification ceremony will stir the souls of the faithful, renewing their faith as Christian disciples, it is clear that many Korean souls have already been stirred, and that in the process, they are giving more attention to the vulnerability of others as well as their own vulnerability.
가톨릭 측은, 시복식이 신자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들의 신앙을 새롭게 할 것으로 바라고 있는 가운데, 많은 한국인들의 영혼은 이미 동요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나약함 뿐 아니라 타인들의 나약함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것은 자명하다.
One day before a planned historic beatification of Korean martyrs, this nation, including the Catholics within it, are struggling to seize the ghosts of the past, martyrs from different ages ? 19th-century Catholics and 21st-century children ? implore their memories to renew the hearts and souls of a nation to give it direction in the years ahead.
예정된 한국의 순교자들을 위한 역사적 시복식을 하루 앞두고, 가톨릭 신자들을 포함한 이 나라 국민들은 과거의 영혼들, 다른 시대의 순교자들?19세기 가톨릭 순교자들과 21세기 아이들?을 붙잡아 그들에 대한 기억으로 국가의 심장과 영혼을 새롭게 하여 이 국가의 앞날에 방향을 제시하기를 애원하며 분투하고 있다.
How Francis understands this moment and helps shape it in the hours ahead could make a significant difference for the health of the church and wider Korean society for years to come.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순간을 어떻게 이해하여 앞으로 주어진 시간에 그것을 형상화할 것인지에 따라 가톨릭 교회의 성장과 다가올 한국 사회의 지평에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There are early indications he does, and that he is ready to touch the souls of this nation. In Daejeon on Friday, in his Angelus remarks, he entrusted to Mary “all who lost their lives in the sinking of the Sewol ferry, as well as those who continue to be affected by this great national disaster.”
일찍이 그는 행동으로 이 나라 국민들의 영혼을 위로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금요일 대전에서, 그의 삼종기도문에서, 그는 “이 국가적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뿐만 아니라, 세월호 선박 침몰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사람들”을 성모님께 의탁했다.
“May the Lord,” he prayed, “welcome the dead into his peace, console those who mourn, and continue to sustain those who so generously came to the aid of their brothers and sisters. May this tragic event, which has brought all Koreans together in grief, confirm their commitment to work together in solidarity for the common good.”
“주여” 그는 기도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서 모든 한국 사람들이 슬픔 속에 하나가 되었으니, 공동선을 위해 연대하고 협력하는 그들의 헌신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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