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으로서 동성애를 지지할 수 없다"라는 발언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좀 황당한 얘긴데 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라고 볼 수 있는 인권 헌장을 만들었던 시민들이 애초에 그에게 동성애를 지지하라고 한 적이 없기 때문이죠. 그들이 요구한 것은 단지 '동성애를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헌장을 통과시키라고 한 것일 뿐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겠지만, 동성애는 타인이 지지하고 반대하고 할 일 자체가 아닙니다. 나는 이성애를 반대한다거나 지지한다라는 말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들립니까? 이건 나는 당신의 뱃살을 찬성한다거나 고향을 반대한다와 같은 말만큼 황당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건 인권이나 동성애 이슈에 대해 눈곱만큼의 관심이라도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공유하는 기초적인 명제예요. 무려 '인권 변호사'출신인 박원순 시장이 그걸 모를리 없죠. 게다가 그의 말이 틀렸음을 지적할 참모들도 아마 주변에 한 트럭이 넘게 있을 겁니다. 결국 알면서도 저러는 겁니다. 일부러 논점을 비트는 거죠. '성적 지향을 이유로 차별하지 말라'는 입장을 '동성애를 찬성하라'로 왜곡하는 게 극렬 개신교도들의 수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러는 겁니다. 본인 말이 어떻게 이용되고 인용될지 알면서도 저러는 거죠.
시민위원회가 통과시킨 인권헌장을 거부하는 결정 자체도 문제지만, 그것이 불러온 정치적 위기에 박 시장이 대응하는 방식이 실망의 정도를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일개 사안에 대한 입장 문제를 넘어서 졸렬하고 비겁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자꾸 주고 있어요.
"당신은 입장은 무엇이냐"는 지지자들의 질문을 며칠씩 피하는 동안 목사들 앞에 가서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이것이 들통나니 그제서야 확인해 준 공식 입장은 초보적 수준의 논점 비틀기입니다. 지지율 1위 차기 대선후보의 초라한 몰골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네요.
* 박원순 시장 "죄송하다" 관련 기사 : http://www.kidok.com/news/articleView.html?idxno=89130
* 박원순 시장 공식 입장 관련 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6675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