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글 / 편집 요약)
김대중의 친일행위
당시 여운형의 학병 권유 격문(조선 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하여 학병을 지원하자는) 을 쓴다고
조선의 학도들이 선동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은 학생 연설에 선동된다.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김대중처럼 일제시대 말기에 학생회장이었던 자들은 일본의 조선인 황국신민화 정책의 앞잡이들이었다고 한다.
1. 김대중이 목포상고 학생회장 시절 일본군복을 입고 황군 입대 지원 권유 유세를 하였다.
(아래의 목포상고 졸업 앨범 사진들에서 일본군복을 입은 김대중의 모습이 주목된다.)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을 하는 김대중 사진 - 김대중의 목포상고 졸업 앨범
그 당시의 고등학생은 사회 유지로 여겨지던 시대에 목포상고 회장은 그 지역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바로 그때에 김대중이 몸소 일본군복을 입고 연극 공연을 하며 졸업 사진을 찍었다.
해방이 되자마자 여운형씨의 공산당 조직은 건준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김대중이 목포지부 간부가 되었다. 즉, 김대중은 일제시대에 여운형이 조선인 황군 지원 권유 격문을 쓰던 때부터 여운형의 추종자였으며, 일본군복을 입고 조선인 학생들을 선동했던 그 행동 대장이었던 것이다.
황국신민화 정책에 앞장서 출세한 인물이 바로 김대중이었다.
김대중의 일본식 성명은 도요다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하루아침에(? 엄청 빨리라는 뜻이겠지) 목포 선박회사 사장이 되었다.
도요다(김대중)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서는 남들은 다 징용이다 보국대다 끌려가는데 그는 되려 일본 선박회사에 취직을 했다.
당시 징용에서 빠지려면 관공서에 빽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조선인이 일본선박회사에 취직하기도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통의 선박회사는 군수물자를 나르고 대본영 소속기관이나 마찬가지였다.
김대중은 1997년 대선 유세 때 자신이 경제 대통령이라는 착각을 국민에게 주기 위하여 목포 선박회사 운영 경험을 국민들에게 자랑하였었다.
그런데, 그 회사는 하의도라는 섬 출신 김대중이 땀흘려 일으킨 것이 아니라, 일본군복 입고 설치면서 일본인들의 총애를 받아 얻은 것이었다.
자, 여운형이 딱딱한 글로 학도병 지원 권유를 한다고 청년들이 입대하는가?
김대중이 학생회장 직함을 달고 연설하며, 일본군복 입고 유세하니 김대중 자신도 인기를 끌고, 학생들 눈에 일본군 군복 입은 모습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되었던 것이다.
아래 사진은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난후 김대중이 여전히 히로히토 일왕에게 머리 숙이는 모습을 보도한다.
김대중
김대중의 일본식 성명은 도요다로 알려져 있는데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서는 남들은 다 징용이다 보국대다 끌려가는데 그는 되려 일본 선박회사에 취직을 했다. 당시 징용에서 빠지려면 관공서에 빽이 있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조선인이 일본선박회사에 취직하기도 하늘에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통의 선박회사는 군수물자를 나르고 대본영 소속기관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