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를 옹호하는 저의 짧은 견해.

경종 작성일 16.02.01 23: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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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안철수에게 큰 감정을 이입해서 비판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안철수를 지지하는 사람이며,

안철수가 정치에 나오기 한참 전인 10년 전부터,

이런 사람이 정치에 나와 대통령이 되는 시기가

언젠가 대한민국에 올까 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설레였고요.

 

제가 안철수를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기존 사람과 다른 새로운 사람이며,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의대를 다니면서 기존의 학벌주의, 세속주의에서의 학구적 성공도 경험했고,

그러면서도 기존의 커리어를 마다하고,

새로운 소프트웨어 백신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데서,

그 사람의 진실한 열린 마인드를 보았습니다.

 

토론, 다원주의, 소프트웨어주의, 정보화사회에 맞는,

새로운 두뇌와 감수성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제가 안철수를 옹호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물론,

정치적 경험이 적고,

사회성이 뛰어난 사람으로도 보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도 소신이 일관되지 못한 면도 있고,

진보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보수주의 출신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 사람은 세속적인 성공과 보수주의의 정점에서

기존의 관성과 특권주의에 대한 집착을 유지할 수 있었으면서도,

 

새로운 패러다임의 중심에서 도전과 모험을 시도했고,

우리나라에서 세속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치고는

진보적이고 순수한 측면이 일부 있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그 사람이 많은 면에서 뛰어나거나,

진보적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으로는 생각되지는 않지만,

새 시대의 시작점을 열 수 있는 소양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을 얼굴 붉히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정치"

안철수 씨가 이 점을 크게 말하는 것을 보면서,

안철수를 더욱 지지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은 그 자체로 뛰어난 의견을 가질 필요도,

뛰어난 능력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카리스마를 가진 리더는 미래에는 필요없습니다.

 

각자의 의견, 사회 각 위치의 목소리들이,

조화롭게 국가 운영에 잘 반영되도록,

정반합의 시스템을 조정해주는 조정자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완벽을 추구할 수는 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각자의 관점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관점의 의견을 비난과 충돌, 억압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때,

 

스스로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체제는

곧 완전함이기 때문입니다.

 

머신 러닝이 대두되는 미래 기술계에서,

머신 러닝과 같은 학습이 이뤄지는 정치야말로,

정치의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머신러닝에서,

실패가 실패는 아닙니다.

그 자체로 미래를 배우는 하나의 귀중한 데이터일 뿐입니다.

 

아주 긴 시간이 지나면,

강한 대통령도 필요없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그저 약한 권력을 가진, 행정의 조정자가 필요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해

모든 국민이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그 목소리들이 일련의 소프트웨어적 과정을 통해

행정적 실천으로 산출되는 정치 말입니다.

 

안철수가 그 먼 시작점이 되길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문명에 대한, 아주 먼 미래의 이상을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중 2병 같은 얘기, 개잡소리, 허황된 얘기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과 악, 감정까지도,

뇌에 장착한 네트워크 시스템을 통해 조정될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을까요.

 

당장 1초 뒤에 자신이 죽어도 인간이 행복하게 죽을 수 있으며,

100년을 살더라도 그로 비롯되는 행복을 느끼지 아니하며,

점점 기존의 동물적인 사고와 정서적 반응을 뛰어넘어,

더 큰 시스템과 더 큰 철학적 틀에서,

인간의 선악과 만족과 쾌락이 성립되고,

 

죽은 자, 산 자, 너와 나 개체의 구별없이

거대한 양자 컴퓨터와 연결된 정보 덩어리로서

자신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시대 말입니다.

 

더 이상 기존의 억울함도, 증오도, 이기심도, 박탈감도, 좌절감도 필요없는

이상향 말입니다.

 

극단적 예를 들면,

만약 문명에게 필요하면 어떤 한 사람(개체)를 살리기 위해

십만명이 자살하는 것을 거리낌없이 수행할 수 있으며,

자살하는 자들도 그 희생의 진정성을 알고 행복감을 느끼며,

도리어 그렇게 살게 된 사람도 자신의 생명이 유지되서 행복한 게 아니라,

그저 문명을 위해 본인이 헌신할, 노동의 시간이 주어짐으로써

도리어 슬픈 시대.

 

각자의 파편화된 이기심, 동물적 경쟁에서 벗어난 시대.

그런 시대가 올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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