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SNS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 전투’를 보면서 느낀 단편적인 감상을 몇 자 적어 봅니다.
먼저 가장 전투적인 그룹 중 다수가 자기들이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선구자이자 첫 세대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메갈리아 활동을 하면서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는 글도 꽤 봤습니다. 한국 페미니즘 운동의 역사가 100년에 가까운데, 이들은 그 역사를 아예 모르거나, 무시해도 좋은 것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운동은 ○○운동이 아니었다. 진정한 ○○운동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는 모든 분야의 운동사에서 숱하게 나왔던 말입니다. 새 세대가 운동에 참여하면서 선배 세대를 비판하거나 배척하고 '새로운' 운동 방식을 고창하는 건 어느 분야에서나 있었던 일이지만,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운동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게 놀라웠습니다. 게다가 과거에도 이런 주장은 대개 근본주의와 극단주의로 이어졌습니다. 레닌이 이런 증상을 ’소아병‘이라 명명한 건 아주 적절했다는 생각입니다. 어릴 때는 대다수가 걸리지만 나이가 들면 저절로 나을 병이라는 거죠. 그런데 옛날에는 ’두창‘이 대표적인 소아병이었지만, 종두법이 발명된 덕에 지금은 소멸했습니다. 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아병‘에는 ’역사‘가 백신이자 치료제입니다. 저들은 지금 백신이 있는 걸 몰라서 앓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둘째, 무식한 저보다 훨씬 많이 아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들의 혐오스런 모습을 그대로 반사하는 미러링이라는 방법이 한국 남자들에게 통할 거라고는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다”거나 “미러링이라는 방법을 이해하고 자신을 성찰하기에는 한국 남자들의 수준이 너무 낮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면서도 “이 방법이 한국 사회의 성 차별 현실을 드러내고 여성들을 각성시키는 데에는 큰 성과가 있었다”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더군요. 메갈 덕분에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제가 이슈화할 수 있었다는 거죠. 그런데 과거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느낌입니다. “우리의 이번 투쟁은 비록 적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했으나, 전선을 명료히 하고, 우리 내부의 기회주의적 요소를 배제하며, 대중을 각성시키고, 운동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20년대부터 여러 차례 반복된 일종의 자기 최면이었죠. 역사적으로 보자면, 이런 주장은 대체로 “우리 운동이 곧 위기에 봉착할 것이며, 당분간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언에 상당했습니다.
셋째, 페미니즘에 ‘동정적’인 - 이 자체가 넓은 의미에서 여성혐오적 태도에 해당하겠지만 일부러 썼습니다 ? 남성들을 포함하는 일부는 메갈이 생산하고 확산시키는 담론의 패륜성을 알면서도, “약자인 우리 편이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데 강자인 상대편을 들 수는 없다”는 태도를 취합니다. 강약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진영논리’라고 치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로남불’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중언부언할 필요도 없이, 이런 태도는 모든 사회적 갈등을 단순한 ‘쪽수 싸움’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약자의 주력 무기가 ‘쪽수’와 도덕적 정당성인데, 이 운동의 ‘우리 편’ 쪽수는 최대치가 50%입니다.
끝으로,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 역사교과서에 페미니즘 운동에 관한 항목이 하나도 없더군요. ‘메갈 활동을 하면서 페미니즘이란 말을 처음 알았다’는 아이들을 탓할 일만도 아닙니다. 역사를 모르면 과오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건 철칙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