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의 운명

초대완료 작성일 17.05.27 03: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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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생운동을 이끌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한 문재인. 결국 서대문 구치소에 투옥되면서 대학에서 제적 당함.출소 후에는 바로 군에 강제 징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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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 후, 다시 전두환의 군부독재에 항거하다가 청량리 구치소에 투옥되었고,옥중에서 경희대학교 조영식 총장의 신원보증 아래 제 22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한  후에 극적으로 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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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구치소에서 사법시험 합격 통지서를 받은 문재인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 박원순, 고승덕, 조영래 등의걸출한 인재들 속에서 수석을 하며 두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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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연수원 수석으로 연수원 내 최고상인 법무부장관상을 수상한다. 그러나,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성적이 차석으로 밀렸고, 원하던 판사는 물론 아무런 임용도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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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법 연수원에서 12등이었던 고승덕은 판사로, 상위권이 아니었던 박원순도 검사로 임용되었기에, 불합리한 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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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문재인은 김앤장 등 대형 로펌의 영입 제의를 거절하고 부산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그의 운명을 바꿔줄 변호사 노무현을 만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랜 시간을 인권변호사로 생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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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같은 과다."문재인은 그를 처음 본 순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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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권위적이고 엘리트 의식이 있던 선배 법조인들과 달리 7살 많은 노무현의 소탈한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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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잘나가던 선배 변호사 노무현이, 이제 갓 들어온 신참 변호사 문재인과 수익을 배분한 것은 노무현의 성품을 여실히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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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문재인 대통령, (우)노무현 대통령이 부산에서 합동법률 사무소를 운영하던 1980년대.
직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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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변호사 사무실은 부산 부민동에 있었다. 수수하다 못해 조금 허름한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그분을 처음 만났다. 차 한잔을 앞에 놓고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함께 깨끗한 변호사를 해보자고 했다. 그날 바로 같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그 만남이 내 평생의 운명으로 이어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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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그렇게 노무현 곁에서 부산 지방 변호사회 인권위원장,부산 민주 시민 협의회 상임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변호하는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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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노무현과 문재인이 이별한다.김영삼은 당시 노무현, 김광일과 함께 문재인에게 국회의원 영입 제안을 했지만, 문재인은 3명 중 유일하게 정치입문을 거절한다.정계입문을 결심한 노무현과 김광일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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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한 뒤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서도, 문재인은 부산에서 홀로 남아 부산 변호사 협회 인권위원장을 지내면서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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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2년 12월 19일,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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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은 노무현과 문재인을 가리켜 친구라고 말하지만, 문재인은 그와 친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오히려 자신을 친구로 불러준 것을 감사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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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동업자, 인권 변호사 출신의 새천년민주당 노무현은 48.9%의 득표율로 한나라당의 이회창을 누르고 대한민국 제 16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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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업무에 복귀하겠다."
대선 당시 곁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도왔던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후에 변호사 복귀 뜻을 여러차례 밝혔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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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면 책임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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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대통령이 된 절친한 선배의 말에 부산 출신의 인권 변호사는 생애 처음으로 청와대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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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청와대 경력.2003~2004 대통령 비서실 민정수석 비서관2004~2005 대통령 비서실 시민사회 수석비서관 2007~2008 대통령 비서실장. 청와대 정무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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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초대 민정수석을 지낸 문재인은 녹내장과 고혈압등의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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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sbs 힐링캠프에서 그가 했던 말을 인용하면, "청와대의 직함이 별로 영광스럽지도 않아서 사표를 내고 쉬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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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청와대의 연락을 거절한 그는, 네팔 산행 도중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노무현 대통령의 법정 대리인으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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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5년 다시, 청와대로 들어가 대통령 비서실 시민 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의 마지막 대통령 비서실장을 역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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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노무현 대통령 인생 최악의 순간에 그와 함께 했고, 허탈함과 안타까움을 뒤로한채 노무현 대통령과 청와대 생활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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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9년 5월 23일.문재인의 30년 인생의 동반자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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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봉하산에 올랐다가 떨어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병원으로 후송 중인데 상태가 엄중하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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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새벽에 봉하산에 올랐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은 것이었다.""힘들어는 했지만, 굉장히 강인한 분이었다. 어렵지만 견디실거라 생각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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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사망 직후 문재인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첫날에는 가슴이 찢어지는데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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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상주로서 수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했다.그의 사인을 확인하고, 국민들에게 전 대통령의 사망 사실을 알리는 것도 모두 그의 몫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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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그의 눈물은 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국민장 '노제'에서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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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과 1982년 '변호사 노무현.문재인 합동 법률사무소'를 개업한 이래.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친구이자 동지로서 한 시대를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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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유서를 항상 지니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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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첫 출마 때 만든 선거 명함도, 항상 지니고 다닌다.차마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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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는 정치의 길로 들어서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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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그가 정치에 들어선 이유는, 노무현 대통령의 뜻과 새로운 정치를 위함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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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으면 적당히 안락하게, 그리고 적당히 도우면서 살았을지도 모른다.그의 치열함이 나를 늘 각성시켰다. 그의 서거조차 그러했다. 나를 다시 그의 길로 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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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유서에서 '운명이다'라고 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나야말로 운명이다.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
-2011년 그의 저서 <문재인의 운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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