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아들 훈이는 죽었지만, 미력이나마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인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중대 소대장 고(故) 김훈(당시 25·육사 52기) 중위 사망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백방으로 뛰어온 아버지 김척(75·육사 21기) 씨는 1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훈 중위는 지난달 31일 국방부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결정으로 순직 처리됐다. 세상을 떠난 지 19년 만에 순직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에 따라 김 중위는 국립묘지에서 영면할 수 있게 됐다. 김 중위의 유골함은 아직도 경기도 고양시 벽제에 있는 육군 부대 컨테이너에 보관 중이다.
김 중위는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JSA 소초(GP)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해 숨진 채 발견됐다.
군 수사당국은 서둘러 사건을 자살로 결론 내리고 덮으려고 했지만, 타살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김 중위의 사망이 의문사가 된 이유다.
사건 현장에서는 타살 가능성을 암시하는 흔적이 나왔다. 김 중위의 손목시계와 사건 현장의 지뢰 박스 등이 부서져 있어 김 중위가 사망 직전 누군가와 격투를 벌인 게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다.
김 중위의 왼손에서 화약흔이 발견된 점도 타살 의혹의 근거가 됐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국방부와 함께 김 중위의 사망 당시 사격 자세로 권총 발사 실험을 했는데 실험 참가자 12명 중 11명이 오른손에서 화약흔이 나왔다.
일각에서는 김 중위 소속 부대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군 GP를 오가는 심각한 군기문란 행위를 저질렀고 이를 뿌리 뽑으려던 김 중위가 살해됐을 수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김 중위의 의문사로 유가족의 삶도 송두리째 바뀌었다. 예비역 중장으로, 명예롭게 군 생활을 마친 김척씨는 사건의 진상규명과 아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군을 상대로 지난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타살 의혹이 불거지자 국방부는 특별조사단을 편성해 사건을 재조사했지만, 김 중위가 자살했다는 결론은 바꾸지 않았다. 사건 직후 군 당국이 현장 보존을 제대로 하지 않는 등 부실한 초동 수사를 한 탓에 진상규명 자체가 어려웠다.
김척 씨는 1999년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2006년 12월 군 당국에 부실한 초동 수사의 책임이 있다며 유가족에게 정신적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당시 주심 재판관은 김영란 전 대법관이었다.
대법원은 군 당국이 초동 수사에서 현장 조사와 보존을 소홀히 하고 주요 증거를 확보하지 않았으며 소대원들의 알리바이 조사도 형식적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김척 씨는 "수사팀이 조작을 하지 않았다면 19년 동안 이 고통을 겪었겠는가, 가정이 파탄이 났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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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2년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국방부에 김 중위의 순직 처리를 권고했지만, 국방부는 5년이 지나서야 김 중위 사망의 공무 수행 관련성을 근거로 순직 처리하게 됐다.
국방부는 정확한 사망 원인을 알 수 없는 '진상규명 불능' 사건도 사망의 공무 수행 관련성이 인정될 경우 순직 처리할 수 있도록 군인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 중이다.
김척 씨는 "군 당국이 아들의 순직을 인정하지 않아 오랜 세월 고통을 겪었다"며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인정하는 게 국민의 군대"라고 말했다.
군 사건 수사에도 민간 전문가를 포함한 '제3의 기관'이 참가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게 김 씨의 주장이다.
그는 "의문사도 세상에 알리고 공론화해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며 "그런 노력을 통해 제2, 제3의 김훈 중위 사건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