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시사인 남문희 기자가 폐북에 올린 글을 인용함>
지소미아 관련 발표가 난뒤 어제 일본은 벌어진 상황을 줏어담느라 난리를 쳤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별개라고 떠들어왔는데 협상 결과가 그게 아니었던 거다. 한국의 종료 유예 결정과 수출규제 철폐를 위한 국장급 대화가 연동된 게 누가 보아도 확연했다.
당연히 일본 우익들이 난리를 쳤고 그렇잖아도 사쿠라 스캔들로 궁지에 몰려있던 차라 늘 하던대로 악성 언론 플레이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고 있다. 자기 스스로 상황 분석 능력을 상실한 한국 언론은 또한 늘 해오던 대로 일본 언론 보도에 기대어 한국 정부 때리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우군인지조차 혼란스럽다.
심지어 진보언론을 자처해온 모 신문은 이번 사태로 한미일관계에 대한 미국의 상황통제력, 일본 치중 그리고 한국외교의 한계가 드러났다고 하기도 했다. 한번 묻자.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나? 미국이 한미일 관계를 주관하고 일본에 우호적이며 한국은 변방 취급해온 일이 새롭게 알려진 일인가? 보수언론들은 애당초 그렇다치고 소위 진보언론이라면 똑같이 보이는 현상 속에서 무엇이 새롭게 드러났는지 파악하고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할 수 있는 안목과 기백이 있어야 할 줄로 믿는다.
지소미아 사태는 미국의 한미일 통제력과 일본 편중에 방점이 찍힌 것이 아니라 한미일 관계의 변방에 있던 한국이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정면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한국이 경우에 따라서는 노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고 쉽게 봤던 미국과 일본이 처음으로 당황해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드러낸 사건이다.
우선 일본에 대해 확실하게 대등한 위상임을 보여줬다.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만으로도 정권 교체급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거라던 아베 정권의 착각은 불매운동과 여행 안가기, 부품소재 국산화 3종세트로 간단하게 무너졌고 이제 자기 정권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 됐다. 게다가 우리는 별거 아니라고 봤던 지소미아가 일본의 급소라는 점이 확연해졌다.
지소미아 카드를 쓰기 전 꿈쩍도 않던 일본이 지소미아 이후 대화하자고 먼저 나왔다는 우리 측 주장은 적어도 팩트로 보인다. 엊그제 발표한 지소미아-수출규제 관련 발표의 시발점은 일본의 대화제의가 원점이었으며 앞으로 수출규제 관련 협의를 전향적인 방향으로 진행토록 하겠다는 약속이 분기점이었다는 것이 협상을 막후에서 진행한 고위당국자 설명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종료 유예는 애초에 불가능했다는 정의용 실장 얘기에 무게가 실린다.
미국 역시 처음에는 외교 안보 당국자들이 총출동하면 한국의 팔을 쉽게 비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과거에는 물론 그랬다. 지금 청와대 앞에서 단식이라는 걸 하고 있는 모씨가 대표로 있는 그 정당 시절에는 그랬다. 나는 그 정당이 나라를 운영하던 시절 단 한번도 미국의 고위당국자들이 마치 전세기라도 타고 온양 워싱턴을 비우고 서울로 서울로, 그것도 돈이라면 부들부들 떠는 트럼프 정권에서 그 비싼 비행기값을 지불하며, 몰려든 사례를 알지 못한다. 그 며칠간의 융단 폭격에도 서울이 꿈쩍을 않자 그들은 발길을 도쿄로 돌려야 했다. 도쿄 찍고 서울이 아니라 서울 찍고 도쿄인 것이다.
거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국에 대해 그토록 완강해보이던 일본의 태도가 단 며칠만에 정말 봄바람에 버들가지 휘날리듯 야들야들 해졌다. 11.22일의 발표에 이어 막후 협상을 직접 책임졌던 고위당국자의 백브리핑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지소미아와 수출규제는 무관하다던 일본이 지소미아 종료 유예와 수출규제 해제를 위한 국장급 대화의 연동을 받아들인 것은 누가 보아도 일본 태도의 180도 변화다.
처음부터 일본이 노린 건 그게 아니었다. 한국이 지소미아 카드를 꺼내든 건 자충수라고 판단한 일본은 자신들이 아무것도 안하고 버티기만 해도 미국이 알아서 한국의 팔을 꺽을 것으로 생각했다. 즉 수출규제 해제 없는 한국의 지소미아 일방적 연장이 일본의 노림수 였다. 문재인 정권에게 완벽한 패배를 안겨줌으로서 애초에 노렸던 내년 4월 총선까지의 주도권 장악이 가능하리라 봤던 것이다.
그런데 미국 당국자들이 도쿄로 발길을 돌려 몇번 들락날락 하고 나서 완전히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 나니 일본 내부에서 우익들이 난리를 펴기 시작했다. 수출규제와 지소미아가 별개라더니 이게 뭐하는 짓이냐라는 상황이 벌어졌고 언론에 대고 그 특유의 안면 몰수 플레이가 진행된 것이다.
그러나 아베는 이제 뒷덜미가 잡힌 형국이다. 단적으로 정의용 안보실장이 아베가 양심이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극언을 퍼부었음에도 한마디 대꾸조차 못하는 게 그 방증이다. 자기들은 부인하지만 경산성의 발표나 최근의 언론 플레이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항의하자 이면에서 사과했다는것도 사실로 보인다.
우리가 재협상 종료라는 카드를 쥐고 있는 한 아베 정권이 할 수 있는 건 일본 내에서 언론갖고 장난치는 것 뿐이다. 우리가 종료 카드를 꺼내기 전에 도쿄를 방문해 밑그림을 그렸던 미국 당국자들이 가만 안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종료 카드를 쓸 수 있다는 정의용 실장의 경고대로 일본의 망발이라는 확실한 명분 하에 우리가 지소미아를 더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하면 미국도 더이상 우리를 막을 도리가 없다. 그동안 엉거주춤 빼어든 것처럼 보이던 지소미아라는 칼이 최근 1~2주의 막판 힘겨루기 과정을 통해 확실한 카드가 된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외롭다. 적은 많고 우군은 없다. 원래 일국의 언론은 대외정책이나 외교 사안에서는 일단 자국의 국익을 중심으로 논지를 펴는 게 기본이다. 일본 언론은 그런 면에서 확실하다. 심지어 비판적인 논조의 아사히 조차 일본의 국익이라는 기본선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의 언론에게 그런 것을 기대하는 것은 이미 사치가 된지 오래이나 그래도 가오가 있지 일본 산 가짜뉴스의 나팔수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나? 국익을 떠나 언론인으로서의 배알조차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