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로 올린 글의 중간 부분을 보충, 수정했습니다. 먼저 댓글을 다신 분들께는 양해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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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인터넷상에 올라오는 40-50 세대들의 글을 보자면,
‘나는 사회적으로 이뤄놓은게 이만큼 있어서 윤석열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집행해도 오히려 이익이다. 그러나 너희 2번남들은 사회적 약자라서 불행해질 것이다’는 류의 글이 많습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나 또한 너희들을 착취하는 대열에 동참할 것이다’라고 까지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다들 진정하시길 바랍니다. 드라마 ‘송곳'에서 안내상이 했던 대사를 기억하십니까? ‘서는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라는. 사람의 생각은 입장과 행동을 따라간다는 이치는 ‘인지부조화 이론’에 의해 실제로 입증된 원리라는 걸 잘 아실겁니다.
우리는 사회적 약자를 끌어안아야 한다는 이재명 후보의 정견에 동의하며 지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이들이 약자를 혐오하는 입장에 서서 말과 행동에까지 나선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영향을 안 끼칠리가 없어요. 그 기간이 길어지면 질수록 자신의 생각도 기득권의 방향으로 끌림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런 생각의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가 기득권이라 비판했던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이 실제로 겪은 과정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가 내걸었던 대의명분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측면도 생각해보세요. 선거가 패배로 끝난지 얼마 안되었으니 그 분노의 심정도 충분히 함께 공감하고 있습니다만, 당사자 이재명 후보의 마지막 발표처럼 패배의 책임은 우리 스스로에게 돌리는게 맞는 겁니다.
제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은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2번남이라는 사람들을 영원히 적으로 돌리는게 진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바인가요? 그리하여 대한민국에 극우 정당이 탄생하도록 내버려두실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지금과 같은 조롱과 혐오를 멈춰야 합니다.
2번남들이 ‘설마 윤석열이 최저임금을 정말 폐지하는 건 아니겠지?'라면서 불안해한다는 것은, 그들 역시 보수정당의 정책에 실제로 피해를 보게 되었을때에 생각을 바꿀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궂이 쫓아다니며 조롱하는 것은 자존심을 자극하여 지금의 생각을 바꾸지 않고 오히려 고집하고 강화할 가능성이 생기게 될 겁니다. 그럴 경우 자신의 어려운 처지에 따른 분노를 정권 교체 에너지로 승화시키기 보다, 외국인노동자, 성소수자, 여성혐오 등에 몰두하며 더욱 엇나갈 가능성이 있어요.
이러한 현상이 만연되면 대한민국에 마리 르펜이나 트럼프 같은 인종주의 극우 정치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극적으로 높아질 겁니다. 지금의 20대가 이미 그렇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그들의 보수 성향이 고착화된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한 백인 남성들이 40-50이었다는 걸 생각해봅시다. 사회 경험이 쌓인 끝에 극우화 되는 것이 훨씬 무겁고 오래가는 겁니다. 지금은 이준석의 시도가 일시적이고 대단히 불안정한 지지기반위에 있기 때문에, 당선 직후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여가부 폐지가 안 될 가능성이 많아요. 그만큼 아직까지 2번남만으로는 극우정치가 실현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도 혐오 사상이 고착화된다면 어떨까요? 그것에 지금 40-50의 ‘조롱’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면요?
2번남을 조롱하는 분들을 포함하여, 우리 모두는 20대였던 적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봅시다. 저도 10대 후반 고딩 시절 정치 과목을 배우면서 국제 사회는 약육강식이라는 내용에 크게 감흥한 적이 있습니다. 세계가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돌아간다면, 우리 사회도, 인생도 그런것이라는 생각에 약자가 도태되고 강자가 승리하는게 당연한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제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남성들이 선천적으로 공감능력이 약한 이유 때문에, 사회경험을 통해 약자의 처지를 경험적으로 이해하기 전인 어린 남성들은 본능적으로 약육강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거라 생각합니다. 즉 젊은 시절의 남성들은 어느정도 우파적인 기질을 원래 갖고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이재명 후보 역시 ‘나도 옛날에는 일베처럼 생각했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
저는 그런 기질을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패기라고 볼수 있어요.
원래 젊은 남성들은 패기와 자신감이 있잖습니까. 종잣돈을 마련하려면 원양어선 한번 타거나, 눈 딱감고 1,2년 정도 공사판을 뛰면 가능하다는 그런 생각을 다들 젊었을때 해보셨을 겁니다.
이로인해 젊은 시절에는 자신이 약자가 되어 도태될수 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아요. 그러다 사회경험을 오래 하다보면 누구나 단 한번의 교통사고, 질병, 보증, 가족 문제 등으로인해 몰락하고 약자가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더이상 대학이 진보 사회운동의 요람이 아닌 현 시대에서, 젊은 남성들이 이처럼 경쟁을 선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라 생각해요. 따라서 그들이 인천공항 사태처럼 공채시험이라는 경쟁을 통해 입사하지 않은 자들을 채용하는 것을 반대한 것도 그러한 연장선이라 봅니다. (물론 저는 그 생각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2번남이라 불리는 세대 역시 직장생활, 연애, 결혼, 육아 등의 인생 경험이 쌓이게 될겁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해 더 이해하게 되고, 사회에서 약자의 처지란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아무리 자기가 노력하고 실력을 발휘해도 구조적으로 약자를 착취하는 사회에서는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날이 올수 있을 거라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번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투표하고 패배한 사람이지만, 개인적으로 이번 선거가 좋았던 점이 있어요. 그것은 젊은 세대들이 정치에 대해 효용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투표에 가장 무관심하던 저 세대가 남녀 각각 서로 다른 방향으로 투표했지만, 어쨌든 ‘내 힘으로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는게 가장 큰 효능이라 봐요. 사실 우리세대만 해도 과거에 투표율이 엄청나게 저조했었죠. 우리가 투표의 효능을 깨달았던건 노무현 당선, 2016년 총선 승리 등의 몇차례의 기회 덕분이라 생각해요.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20대 초반의 ‘첫 선거’에서 효능감을 깨달은 사람들이 (승리했건 패배했건 간에) 많았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정치 관심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게 된 겁니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결국에는 옥석이 가려지게 마련입니다. 거기서 점수를 따기 위해 진보 정치권이 노력을 하면 되는 일이구요.
그러니 우리 분노의 감정을 저들에게 돌리지 맙시다. 윤석열을 승리하게 만든 주 동력은 20대가 아니라 오히려 60대후반 이후 노년층이었음을 생각해볼때에도 그래요. 우리가 60-70에게 분노를 표하지 않는게 왜 그런지 생각해보셨나요?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할때에는 그가 나와 가깝기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화 이후 30여년의 세월동안 흔들림없이 민정계 보수정당을 투표한 노년세대들을 설득할 생각을 우리는 대체로 포기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그들보다 훨씬 적은 투표율의 20대에게 분노를 느끼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알만한 사람들이 왜 저러지’라는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기대와 희망을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유시민의 말처럼, 젊은 사람들은 늘 이전 세대보다 나았습니다. 지금의 2번남들은 분명히 우리 사회를 잘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가 될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를 포기하지 맙시다.
그들에 대한 분노는 선거 후유증이 잠잠해질때까지만 하시고, 혐오의 표출은 스스로 자제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