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짬이 애매해서 결국 짬에 밀려 갔습니다.
어제 투표소 설치하고
아침 6시~ 저녁 6시까지 하고나서
돈 더 줄테니까 7시 30분까지 콜? 하는걸
ㄴㄴ 됐어요 하고 도망쳐 왔습니다.
점심 먹으면서 짱공유를 보다보니
역대급 선거 사고에 대한 게시글을 봤습니다.
선거부정이다 뭐다 하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일단 오늘 따끈따끈하게 선거 사무원으로 활동을 해본 상황에서 말씀드리자면
의도를 가지고 선거부정을 했다기 보단
사무원의 실수 + 투표 참관인의 직무유기일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경험해 보니
시스템적으로 부정을 저지르기 힘들더라구요.
선거 시작 1시간 전에
투표소 책임자 + 선거 사무원 + 정당별 참관인들이 모두 모여서
투표함이 비어있는걸 확인하고, 투표함을 봉인하는 절차를 진행합니다.
이때 봉인에는 정당별 참관인들의 서명이 들어가고요
봉인은 비닐 느낌나는 스티커인데 그걸 조작하기 위해
떼네려 들다가는 누가봐도 꾸깃거리는게 티가 날 겁니다.
거기에 투표해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투표함이 투표소 한가운데 떡하니 있고, 투표함 앞에 사무원이 각각 한명씩 지키고 있는 이른바 오픈된 상황이라
투표상황중에는 투표함에 조작을 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정당별 참관인들이 앉아서 지켜보기 때문에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이의제기가 나오고요.
이렇게 시스템 상으로는 앞서 봤던 100여명 하이패스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보이고
제 상상력의 한계 때문인지
게시글 보자마자 아니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하지?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일단 시스템은 완벽해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
지독한 우연에 우연이 겹친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이 모든 일을 지켜보면서 관리 감독 조율을 해야 하는 책임자(공무원) 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생기면서
동시에 책임자를 보조하는 실무자(역시 같은 계 소속의 공무원으로 추정됨) 역시 자리를 비웠거나 아니면 짬 안되는 초짜라 제대로 조율을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관찰해 보니 둘중 하나는 투표소를 지키고 있는 시스템으로 돌아가는거 같더라고요)
이렇게 컨트롤 타워가 부재하거나 통제가 미비한 상황에서 투표 사무원역할을 수행하는 분들 (결국 이들은 하루짜리 임시 업무 수행입니다… 저처럼요)은
맡은 일을 하다가 뭔가가 꼬여버린게 아닐까 추정합니다. 거기에 시스템이 철저히 분업화 되어있기 때문에 바로 옆에 2차 투표지를 주는 역할을 하는 분이 주는지 안주는지 체크하기가 어려워요.
제가 맡은 파트는 네명이서 신분증 보고 번호 부여하는 것이라 네명이서 자체적으로 눈치껏 로테이션으로 하다보니 서로의 일이 체크가 됐지만 투표소 안은 분업이 잘 되어있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2차 투표지를 주는 분은 한참을 멍때리다가
“어랍쇼? 아까부터 왜 나한테 투표용지 받으러 아무도 오지 않지?”라는걸 깨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걸 깨달은 뒤엔 100여명이나 투표지를 못받아간 희대의 사건이 되어버렸을 것 같네요.
사실 이런 일이 생기면 투표 참관인들(정당에 소속된)이 문제 제기를 해야하는게 맞긴 한데
열두시간 가까이 자리에서 앉아있는게 보통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분들도 짬이 나면 잠깐 밖으로 바람 쐬러 가시거든요.
아마 여섯 일곱 시간 자리에 앉아서 반복되는 일을 멍하니 보다보면 최면에 걸린듯이 멍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눈 앞에서 뭔가가 잘못 돌아가도 문제를 인식하기는 쉽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현 시점에서 제일 쫄리는 분은
2차 투표용지 배부 역할을 맡은 투표사무원
그리고 투표책임관이지 싶습니다.
아마 높은 확률로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야 이번에 니 차례임 사무원 하러 가라” 해서 왔을텐데
그와중에 이런 빅 건수가 나버렸으니 말이죠.
공무원은 결국 연금 보고 가는 직업일텐데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고의적으로 부정선거 놀음을 한다? 연금빵으로?
음…. 제가 볼 때는 현실성이 높아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그분들은 실수를 한 것이고
아마 지금 하늘이 노래져서
“어떤 징계를 받으려나 ㅠㅠ” 하고 계실것 같습니다.
이상 투표 사무원으로 따끈따끈하게 활동한 것을 근거로 한 뇌피셜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