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육아와 주거 지원, 사교육 얘기 많이 하는데,
일단 대도시 주택 가격 문제는 물론 심각하다.
하지만 대도시의 주택가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장 일본, 미국, 서유럽국가들 도시들만 가봐도 집값에 입이 떡 벌어질걸.
게다가 한국이 의료 환경이나 사회 복지의 측면에서 외국과 비교해보면,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할 정도의 나라는 결코 아니다.
오히려 국가 경제력이 비례해서 상당히 많은 지원이 되고 있고,
그 지원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왜곡된 지향과 가치관이
이 문제의 심각한 하나의 원인이겠지.
한국에서 젊은 세대는 대체로 자본주의 사회 체제를 당연시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 현상이다.
고소득 가정에서 부의 대물림을 위해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고비용 사교육을 시키고, 해외여행이나 체류 등
여러 특혜를 통해 대입을 비롯한 향후 진로에서 유리한 길을
깔아주려고 한다.
어릴 때 애들 명품으로 치장하고 한 달 150만원 이상 들여가면서
영어유치원 보내고, 주말이면 수영 개인교습 보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건
자본주의 체제 하의 국가라면 어디서든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이 특별히 더 심한가?
내가 외국 나가봐도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한국 사람들이 동경하는 미국에서는 기여입학제도도 활성화되어 있다.
하버드대, 프린스턴대 등 미국의 명문 사립대학들은
대학 발전에 공로가 있거나 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의 자녀들이
입학시에 엄청난 특혜를 준다.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제도다.
내 말은 그게 좋은 제도라는 게 아니다.
그지 같은 현실이지.
체제 자체의 부조리와 문제점들에 대해
부모 복을 타고나지 못한 젊은이들은 충분히 불만을 가질 수 있다.
빈부 격차가 사회적 차별로 이어지는 사회적 구조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그 문제를 개선하려고 나서야지.
결국 그 불만을 근본적인 체제 개선의 동력으로 삼을만한 역량이 있는지의 문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 이들은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누리는
상층부의 사람들을 그저 막연히 동경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 같다.
저들에게 미치지 못하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에 느끼는 울분과 좌절감에
스스로 주저앉는데 그치고 마는 것이다.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과 체제에 대한 개선 요구가 아닌,
왜곡된 가치관을 스스로 거부하지도 못한 채,
일그러진 ‘우상’을 막연히 동경하다가
결국 그들과 같아지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체념.
신분 상승의 꿈이 여의치 않은 사회 시스템에 대한 냉소,
그리고 결국 자신의 혼인과 후사를 포기하고 소심한 자살을 택하는 사람들.
그게 과연 얼마나 동정할 가치가 있는 건가.
소심한 저항은 그저 소심하게 끝날 뿐이지.
자기 유전자도 못 남기고 슬프게 사라져 가는 행동이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4~50년뒤에 한반도에서 살아남을 인간들이 과연 지금 젊은 세대의 소심한 ‘자살’을
과연 기억하고 동정이나 하겠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아이들이 불쌍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