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늘 먹이를 먹으러 오던 외출이가 어느 날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거의 열흘이 넘도록 보이지 않아 하루는 녀석이 사는 곳으로 찾아가보았다.
외출 고양이에서 지금은 길고양이로 살아가는 외출이가 낳은 삼색 아기냥이 둥지의 파이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사실 외출이 녀석이 사는 곳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없다. 외출 고양이로 살다가 어느 날 유기묘로 전락했다가 지금은 길고양이의 삶을 사는 탓에 외출이는 늘 ‘동가식서가숙’하곤 했다.
둥지에서 나를 발견한 외출이가 둥지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위).
둥지의 스티로폼 위에서 두 마리의 아기냥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외출이(아래).
그런데 폭군냥 주황이가 거처하던 곳에 외출이가 있었다. 그것도 두 마리의 새끼를 낳은 채. 한 마리는 삼색이, 다른 한 마리는 턱시도 고양이다. 본래 폭군냥 주황이가 거처하던 둥지는 희봉이와 깜냥이가 살던 둥지로, 예전에 가끔 찾아와 들여다보곤 하던 곳이었다.
갑자기 어미가 뛰쳐나가자 어리둥절해 하는 아기냥들(위).
'엄마 가지 마!' 하는 표정으로 외출이를 바라보는 삼색 아기냥(아래).
그러나 어느 날 희봉이가 영역을 떠났고, 홀로 남아 둥지를 지키던 깜냥이의 영역조차 주황이가 빼앗는 바람에 먹이 걱정 없는 이 ‘황금의 둥지’는 폭군냥 주황이 차지가 되었다.
둥지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삼색 아기냥.
그런데 그곳에 떡하니 외출이가 새끼를 낳은 것이다. 현재로선 폭군냥 주황이가 아빠일 가능성이 높다. 어쨌든 외출이는 주황이를 내보내고 이 황금의 둥지에 두 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둥지 밖으로 나와 난간에 앉아 있는 외출이.
그날 이후 나는 외출이가 오지 않는 날이면 가끔씩 둥지를 찾아가 외출이에게 먹이를 주곤 했다. 혹자는 길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기르는 둥지가 사람들에게 들키면 둥지를 옮긴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전적으로 옳은 얘기는 아니다.
둥지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순진무구한 표정의 턱시도 아기냥.
외출이는 둥지에서 새끼에게 젖을 먹이다가도 내가 오면 얼른 일어나 달려나오곤 했다. 오래 전 얌이와 멍이를 낳았고, 최근에 또 5마리의 새끼를 낳은 어미냥 또한 내가 녀석들의 둥지를 엿보는 것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았다. 아마도 먹이를 주고, 해코지를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일지도.
둥지의 커다란 파이프관 위에 앉아 있는 두 마리의 아기냥.
그러나 몇 개월 전 PC방 골목에서 처음 만난 주황이 식구들은 내가 둥지를 알아내고 다음 날 먹이를 들고 찾아갔더니 둥지가 텅 비어 있었다.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 것이다. 연대감이 없는 사람의 둥지 엿보기는 어미에게도 새끼에게도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고, 결국 둥지를 떠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겠다.
둥지에서 서로 장난을 치는 아기냥들.
두어 번 내가 외출이 둥지로 찾아가 먹이를 주고 세 번째 찾았을 때는 사진도 몇 컷 찍었다. 한달 남짓된 아기냥 두 마리는 약간 놀란듯 눈이 뚱그래졌지만, 이내 안정을 찾고 둥지 옆의 커다란 파이프에 올라가 장난도 치고 숨바꼭질도 했다.
현재 외출이가 새끼를 낳아 키우는 둥지는 과거 희봉이와 깜냥이가 살던 둥지였다.
이후로 외출이는 다시 매일같이 집 앞을 찾아왔고, 나의 둥지 엿보기는 세 번으로 끝이 났다. 가끔 나는 책이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고양이에 대한 상식들을 보기 좋게 깨뜨리는 길고양이의 세계를 목격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녀석들이 '미궁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처 구름과연어혹은우기의여인숙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