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사원의 보살 고양이

쿠라라네 작성일 09.11.18 19:5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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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어디일까?
아마도 스페인이나 그리스, 일본이나 태국이 상위권에 들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견해로는
고양이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는 라오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라오스에서는 길거리에 개만큼이나 많은 고양이가 돌아다닌다.
이 녀석들은 거의 행동의 제약이 없다.
거리를 떠돌다 집안으로 들어가고
노천카페 테이블 위에 버젓이 앉아 있는가 하면,
사람이 다니는 인도에 누워서
행인이 와도 비켜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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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랑프라방 왓 파파이미사이야람 사원 대법당 앞에서 만난 보살 고양이. 이곳에는 모두 5마리의 아기 고양이와 한 마리의 어미 고양이가 있다.

이곳을 여행하는 여행자들 또한 그런 고양이의 자세가 당연하다고 여긴다.
라오스에서는 고양이가 사람의 눈치를 거의 보지 않고,
사람들도 거의 고양이를 개의치 않는다.
특별히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것도,
일부러 먹이를 챙겨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고양이는 고양이의 삶을 살도록 놓아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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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서 만난 아기 노랑이(위)와 비닐 봉지를 깔고 낮잠을 자고 있는 카오스 고양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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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 고양이와 길고양이의 구분도 따로 없다.
이 녀석들은 대부분 길과 집안을 자유롭게 오간다.
그리고 또 하나 라오스만의 특별한 풍경이 있다면,
사원마다 일명 ‘보살 고양이’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무슨 보살이 될 수 있겠는가마는
사원에서 탁발로 얻어온 음식을 고양이들에게 나눠주며
몸소 자비와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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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중인 주지 스님 방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기 노랑이.

내가 루앙프라방에 머무는 동안
나는 숙소에서 가까운 ‘왓 파파이미사이야람’ 사원을 하루에도 몇 번씩 찾은 적이 있다.
순전히 그것은 사원에 거주하는 보살 고양이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곳에는 어미 고양이 한 마리와 5마리의 아기 고양이가 살고 있었는데,
어미는 노랑이였고, 5마리의 아기 고양이는 노랑이가 2마리, 삼색이가 한 마리, 깜장이가 한 마리, 카오스가 한 마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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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들어가게 해 주세요" 문밖에서 스님 방안을 기웃거리는 카오스 고양이.

녀석들은 법당에도 자유롭게 출입했고,
심지어 주지 스님이 기거하는 방안에도 스스럼없이 드나들었다.
한번은 주지 스님이 앉은뱅이 책상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고 있는데,
노랑이 새끼 한 마리가 느닷없이 스님에게로 달려들어갔다.
그러더니 스님의 무릎에 앉았다가 방안을 돌아다니며 한참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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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 스님 방앞에서 놀고 있는 노랑이와 카오스(위). 사원의 5마리 아기 고양이 어미인 노랑이(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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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젊은 스님이 들어와 노랑이는 쫓겨났지만,
이번에는 카오스 녀석이 스님의 방을 기웃거렸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는 새끼 노랑이 한 마리가 버젓이 대법당에서 걸어나와
법당 앞 계단에 척 걸터앉았다.
비가 오면 이 녀석들은 법당이나 수도승 숙소로 피신을 하고,
해가 나면 사원의 대법당 앞마당으로 나와 햇볕을 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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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여러 번 사원을 찾았더니 나중에는 이 녀석들이 내 발밑에 와서 잠을 청하거나 무릎 위로 기어올랐다(위).   처음 볼 때부터 녀석들은 사람의 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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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의 스님들은 아침 탁발을 다녀오면
탁발해온 밥을 가장 먼저 불탑과 법당에 공양하고
그 다음으로 고양이들에게 공양한다.
그러나 고양이들은 스님들의 아침 공양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이곳에서는 아예 고양이 밥 주는 스님이 따로 있어서
하루에 두 번씩 고양이 사료를 챙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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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당 마당에 앉아 있는 삼색이와 깜장이.

그래도 어쩐지 아기 고양이들이 너무 마른 것 같아서
나는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참치캔을 하나 사다가
한밤중 스님들 몰래 고양이들에게 먹였다.
그러나 아뿔싸! 캔을 치우는 것을 깜박했다.
이튿날 늦은 아침 다시 사원을 찾았더니
이제 나를 알아보고 인사까지 건네는 젊은 스님이 나를 보고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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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당을 걸어나와 계단에 걸터앉은 노랑이.

스님의 뒤를 졸졸 따라갔더니
숙소 앞에 고양이 3마리가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스님은 잘 보라는 듯이 사료 포대를 꺼내
접시에 듬뿍 사료를 담아 고양이에게 내놓았다.
이렇게 사원에서 사료를 주니 참치캔 따위는 사올 필요가 없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루앙프라방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왓 파파이미사이야람 사원을 열 번도 더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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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스님들이 기거하는 숙소 앞에 오종종 앉아서 사료를 기다리고 있는 아기 고양이들.
짧은 날들이었지만, 나중에는 고양이들도 나를 알아보고
나에게 모여들었다.
어떤 고양이는 내 발밑에서 잠을 청했고,
어떤 고양이는 일주문 바깥까지 나를 따라왔다.
만약 스님이 데려가지 않았다면 그 녀석 한국까지 따라왔을지도 모른다.     출처 구름과연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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