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사자 군단'에 입단한 구자욱(31)은 삼성 왕조 시절의 마지막 후예다. 팀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통합 우승(정규시즌·한국시리즈)을 차지했을 땐 1군 멤버가 아니었지만 정규시즌 5연패를 이룬 2015년 당당히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다만 1위로 직행한 한국시리즈에서 하위 팀 두산에 졌고, 그 이후 삼성 왕조는 막을 내렸다.
9년 전 막내로 한국시리즈를 경험했던 구자욱은 올해 팀의 주장이자, 간판 타자로 다시 같은 무대를 바라본다. 정규시즌 129경기에서 타율 0.343에 33홈런 115타점을 찍어 개인 최고의 한 해를 보낸 그는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해 두통과 어지럼증을 꾹 참고 LG와의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다.
몸 상태나 컨디션은 플레이오프를 준비할 때부터 좋지 않았다. 평소 편두통 증세를 자주 겪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13일 1차전 도중 구토 증세와 어지럼이 심하게 몰려왔다. 동료들 앞에서 아픈 내색을 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지킨 구자욱은 3회 3점 홈런을 터뜨리는 등 4타수 3안타 3타점 맹타를 휘둘렀다.
삼성의 승리를 이끈 그는 1차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으나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하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2차전이 취소된 14일 구자욱의 컨디션은 한결 나아졌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는 "경기 전부터 컨디션이 안 좋고 두통이 있어 최대한 쉬다가 경기를 했다"며 "눈과 머리 쪽이 아파서 문제였는데, 그렇게 걱정할 정도로 안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몸이 안 좋다 보니 경기 중에 긴장할 겨를이 없었다"면서 "몸 상태와 경기 내용은 정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최악의 상황에도 무서운 화력을 뽐낸 구자욱은 앞으로도 중심 타선을 지키고, 좌익수 수비도 소화할 계획이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플레이오프를 시작하기 전부터 몸 상태가 썩 좋지 않았는데도 집중력을 발휘하고, 주장으로서 팀을 이끄는 것을 보며 리더답다는 생각을 했다"고 주장의 투혼에 고마움을 나타냈다. 구자욱은 "내가 빠지면 팀에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이 정도 아픈 건 참고 뛰어야 한다"며 책임감을 강조했다.
2015년 10월 두산과 한국시리즈 1차전 이후 3,275일 만에 포스트시즌 승리 맛을 본 그는 새로운 왕조 건설을 꿈꾸며 한국시리즈 진출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 구자욱은 "최대한 분위기를 빨리 잡아서 최소 경기로 한국시리즈에 올라가는 게 목표"라며 "(우승을 위해서는) 투수들의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