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manne : 일본에서 독도 영유권분쟁을 연구 중이다. 일본 측의 자료는 충분히 연구하여 그 입장을 잘 알고 있으나, 한국 측의 시각은 일본의 자료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한국의 입장을 직접 듣고 싶어서 왔다. 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지만, 당신을 만나보라는 권고를 받았는데 시간을 내 줄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가능하면 영문으로 정리된 자료를 구하고 싶다.
홍 : 구하는 영문 자료는 없다. “독도문제는 일본의 주장에 대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입장이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외국인을 위한 홍보자료는 만들지 않은 것 같다.
Mormanne : 한국의 학자가 영문으로 쓴 논문도 구하기 어렵던데…
홍 :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 1996년 대담 당시의 상황을 말한 것임.)
Mormanne : 이해할 수 없다. 아무런 할 말이 없다는 뜻인가? 한국의 입장을 구두로라도 설명해 줄 수 있는가?
홍 : 1965년 한?일 기본협정 체결 회담 이래 지난 30여 년 간 한국 측의 입장은 “국제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너무나 당연히 한국의 영토이므로 사소한 트집에 대꾸하지 않는다”는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의문이 나는 사항에 대해 ‘개인적’ 시각으로 답해 줄 수는 있다.
[재판으로 가기를 거부하는 이유]
Mormanne : 일본은 독도분쟁을 재판으로 해결하자고 하는데 비해, 한국은 이를 반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쟁을 국제재판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일본의 입장을 한국은 왜 거부하나? 단적으로 한국이 법적으로는 자신이 없다는 증거가 아닌가?
홍 : “일본은 재판에 의한 해결을 희망하는데 한국은 이를 반대한다”는 인식은 상당히 왜곡된 것이다. 일본 정부의 홍보를 듣는 기분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이하 ‘ICJ’)에 가자고 했고 한국은 이를 거부했을 뿐이다. 즉, ICJ라는 특정의 법정에 가는데 대해 이견이 있었을 뿐이다.
Mormanne : 한국은 ICJ에 가는 것을 거부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뜻인가?
홍 : 물론이다. 아마도 ICJ에 가더라도 한국이 이길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두 가지 특별한 이유로 ICJ에 가야만 자신에게 약간이나마 승산이 있다고 보아 ICJ를 고집하는 것이고, 한국은 굳이 불공평하다고 느끼면서 ICJ에 갈 이유는 없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다. 우선 일본은 “ICJ에 의한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주장하면서 중국과의 ‘釣魚島(Tiaoyutai) 분쟁’, 즉 일본인들이 말하는 ‘Senkaku Islands(尖閣列島) 분쟁’은 ICJ에 가야한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Mormanne : 실효적으로 일본이 점유하고 있으니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홍 : 자기네가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에 갈 수 없고, 상대방이 실효적 점유를 하는 경우에만 재판에 가자는 것은 무슨 논리인가? 비슷한 문제를 두고 일관성이 없는 것이 좀 수상(fishy)하지 않은가?
Mormanne : 일관성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도 있다고 본다. 상대방이 점유 중인 독도 문제는 ICJ에 가져가지 못하면서, 자신이 점유하고 있는 Senkaku Islands(尖閣列島) 문제만 ICJ에 가져갈 수는 없지 않겠는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점유하고 있으니 ICJ에 가지 않으려는 점에서 한국도 일본과 비슷하다고 보는데…
홍 : 참으로 순진한(naive) 생각이다. 그렇다면 소위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에서는 러시아가 해당 섬들을 점유하고 있으므로 일본은 적극적으로 ICJ에 가자고 해야 할 텐데, 오히려 러시아가 적극적이고 일본은 러시아의 제의를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Mormanne : 사실이다. 무슨 이유라고 보는가?
홍 : 간단하다. 일본은 ICJ에 판사가 있는데 한국은 없으니, 한?일간 문제는 ICJ에 가는 것이 명백히 자기에게 advantage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ICJ에 각각 판사를 두고 있으니 일본이 ICJ에서 아무런 advantage를 기대할 수 없고, advantage가 없이는 ICJ에 못 가겠다는 것이다. “ICJ에 가면 불공평하니까 못 가겠다”는 한국과, “advantage가 없이 공평한 조건으로는 ICJ에 못 가겠다”는 일본이 어떻게 같이 취급될 수 있는가?
Mormanne : 흥미 있는 point 이다. 일본이 ICJ를 고집하는 이유가 두 가지라고 했는데 나머지 한 가지는?
홍 : ICJ의 보수적 성격상 ‘구시대의 악법’이라고 할지라도 명백히 무효화되지 않은 이상 그 타당성 여부를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법(lege lata)’을 엄격하게 적용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일본의 독도편입 조치는 제국주의?식민주의의 일환이며, 이는 당초부터(ab initio) 무효??라는 것이 한국의 입장이다. 그런데 일본은 “독도를 영토로 편입한 조치는 식민주의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지만, 내심으로는 보수적인 ICJ가 적어도 1905년 일본의 독도편입 당시에는 식민주의에 의한 조치도 합법이라고 판단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ICJ가 “식민주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 확인을 받기 위해 독도를 stake로 내 걸 생각은 없다.
[중재재판 가능성]
Momanne : 중재재판(arbitration)에 부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보는가?
홍 : 일본정부가 공식 제의해 온 적이 없으므로 한국 측도 그동안 별로 생각해 보지 않았다. 사실은 “일본이 제의해 올 가능성이 없으므로 검토할 필요도 없었다”고 얘기하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Mormanne : 그렇게 단정하는 근거는?
홍 : 30년쯤 전에 한국의 李漢基 교수가 ‘한국의 영토’라는 논문을 통해 학자 자격으로 “독도문제를 중재재판에 회부하자”고 제의한 적이 있으나, 일본 측에서는 정부든 학자든 이에 대해 일체 반응이 없었다. ‘응하지 못하는’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李漢基 교수는 독도문제에 관해 한국의 대표적 국제법 학자로서 정부에 자문을 해 왔으며, ‘한국의 영토’는 독도에 관한 한국 측의 대표적인 논문의 하나로서 일본의 학자나 정부에 의해 철저히 검토되었을 것이다. 단언하건데, 일본 측이 몰라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Mormanne : 李漢基 교수의 논문은 나도 보았다. 한글을 해독하지 못해 漢字로 된 부분만 읽느라 내용을 숙지할 수는 없었다. 상황이 바뀌어 나중에라도 일본정부가 중재재판을 하자고 제의해 오면?
홍 : 검토할 만하다고 보는 것이 개인적인 시각이다. 다만 “식민주의에 입각한 영토편입 조치는 법적으로 무효”라는데 대해 먼저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며, 이 부분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고 본다.
[한?일 양국이 독도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
Mormanne : 조그만 섬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兩國간에 독도문제가 돌출되면 일본의 언론은 비교적 냉정을 유지하는데 한국의 언론과 국민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홍 :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할 수 있었던 것은 독도가 일본영토라는 자기네 정부의 주장이 무리라는 것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네들이 말하는 소위 ‘북방 도서’와 관련하여 유사한 상황이 벌어져도 일본의 언론이나 국민이 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오히려 러시아 국민이 냉정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이 때 “러시아 국민은 mature 한데 일본국민은 왜 이렇게 nervous 하냐”고 물어 볼 것인가? 일본이 3개 영토문제중 독도 문제에 한해서만 재판(ICJ)에 가자고 요구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당초부터 일본의 영토가 아니니까 패소해도 잃을 것은 없고 어쩌다가 이기면 순이익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한국을 식민 지배했으니 자료입증 측면에서도 월등 유리한 입장이고…
그러나 소위 ‘북방영토’나 ‘尖閣列島(Senkaku Islands)’ 문제에서는 패소하면 낭패라고 생각하여 감히 재판의 위험부담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독도문제에 관한 한, 일본으로서는 일종의 ‘부담없는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이 스스로 주장하듯이 진정으로 ‘분쟁의 평화적 해결’ 정신을 존중한다면 먼저 ‘북방 영토’ 문제나 ‘Senkaku 열도’ 문제를 ICJ에 가져가는 것을 보고 싶다. 일본이야말로 ICJ에 가서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이유도 없는데…
Mormanne : 일본은 그렇다고 치고, 그래도 한국의 언론이나 국민이 그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제3자로서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자신이 없으니까 과민반응을 보인다”는 외부의 시각이 있는데…
홍 : 독도문제를 단순한 영토분쟁으로 인식하면 그런 의아심을 가질 수도 있다고 본다. 하나의 조그마한 무인도의 영유권 문제이니까… 실제로 일본국민 입장에서는 조그만 무인도를 둘러싼 영토분쟁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니까 비교적 냉정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고… 그러나 한국국민에게는 독도가 ‘주권과 독립의 상징’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20세기 초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 때 제1단계로 1905년에 독도를 빼앗고, 그 5년 후에 제2단계로 나머지 全국토를 빼앗아 식민지화를 완성하였다.
일본이 “다께시마(竹島)는 일본영토” 云云하는 것이 한국국민에게는 “너희는 아직 완전히 독립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우리의 식민지이다. 제2단계에서 식민지로 된 땅이 해방된 것은 인정하지만 이에 앞서 식민지가 된 독도를 언제 해방시켜 주었느냐. 아직 일본의 식민지로 남아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런 모욕을 받고 냉정해질 수 있겠는가? 독일이 지금 와서 프랑스더러 “빠리가 나찌 독일의 점령에서 해방된 것은 인정해 주겠지만, 알자스?로렌은 돌려받아야 하겠어. 빠리가 점령되기 전에 이미 독일이 점령한 것이잖아!” 한다면 프랑스 국민이 점잖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 재판으로 해결하는 게 좋겠어!” 라고 할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출처는 http://www.naeil.com/News/economy/ViewNews.asp?nnum=600362&sid=E&ti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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