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택배 기사의 이야기...

산왕거미 작성일 12.06.02 16: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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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글이라는걸 미리 밝혀둡니다.

 

 

생활정보지를 뒤적거리다 보면 흔하게 보게되는 택배기사 구인광고...

평소 택배기사가 힘들다는 말은 들었지만

평균 12시간 근무에 180만원을 준다하니

가족부양을 해야하는 나로서는 괜찮은 조건이었습니다.

막상 가서 면접을 보니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는 집하(도착한 택배 말구 보내질 택배를 수거하는 거라고 해야하나..) 때문에

두어시간 정도는 늦을 수도 있다고 하였지만 '까짓거~'이라며 기쁜 마음으로 출근을 시작하였습니다.

 

아침 7시까지 터미널이라는 곳에 오라며 차를 내어주었기에 6시에 일어나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격하게 달리면 20분 정도면 도착하는 터미널에 도착하였습니다.

긴 레일 양 옆으로 택배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레일 끝에서 물건이 흘러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제 옆에 있던 소장은 제가 오늘부터 돌게 될 구역의 물건만 잘 보고 있다가 챙겨보라고 하였습니다.

친절히 도와주는 소장님 때문인지 왠지 자신감도 생기고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한 이틀정도 같이 정해진 지역을 돌아 보았습니다. 경력 10년차의 소장은 평균 120개 정도의 물건을

5시간도 안걸려 배송하더군요. 그건 마치 아침에 신문을 배달하듯 고객이 집에 있으면 있는데로 없으면 없는데로

어김없이 배달이(?) 되더군요. 그리고는 일을 마치니 평균 3~4시면 일이 끝났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처음엔

여러가지 상황때문에 좀 늦게 마치겠지만 참고 견디면 자신처럼 일찍 끝내고 갈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하면 할수록 보람도 있고 괜찮은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렇게 2~3일간의 견습생활을 끝내고 제 구역이 활당된 후

선임자의 인수인계를 받고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마침 첫날이 화요일이었고 화요일은 일주일중 가장 물건이 많을 때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첫날 배달하게 된 물건은

180개 정도였고 송장떼어내고 돌게될 코스따라 송장을 분류하니 시계는 오후1시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긴장이 되기 시작하면서 걱정도 되더라구요.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아무튼 출발하여 정신없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더구요....

첫째, 택배물품을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둘째, 지번으로 되어있는 지도를 보고 집 위치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사실이지만 다섯집중에 한집만 집에 사람이 있고 나머지는 없습니다.

암튼 이런 이유로 저녁 11시가 넘어서까지 배송했지만 70여개가 남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딴 사무실은

보통 7시 넘어가면 소장이나 사장이 나와서 같이 돌아준다던데...저희 사무실은 에누리 없더군요.

처음에 한두번 전화와서 '힘들지?','몇개 남았어? 도와줄까?'하던데 막상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준다는 사람이

연락이 없습니다. 아무튼 그래도 참고 했습니다. 그래도 월요일의 갯수가 50여개로 많이 적어 지난주에 못돌린 물품을

결국 월요일이 되니 해결이 되더라구요. 되면 뭐합니까? 다시 화요일인데요...ㅋㅋ

그렇게 전쟁을 치르다보니 정말 두어달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듯 감쪽같이 지나가 버리더라구요.

두어달쯤 되니 모든것에 익숙해져서 평균 120개 정도는 6시 정도면 끝이 났고, 180개도 9시정도까지 하면 마무리가 되더군요.

그러면 무엇합니까? 집하가 기다리고 있는데...여기저기서 발송되어질 물품을 수거해서 탑차에 가득채우고는 터미널로 향

합니다. 터미널에서는 많은 차들이 아침의 역방향으로 레일을 따라 물건을 흘려보내는데요. 이것도 한정된 시간에 많은 차

들이 몰리다보니 눈치봐가면서 하면 보통 9시에 끝이 납니다.

즉...결국 일을 잘하든 못하든 택백기사의 근무시간은 오전 7시에서 오후 9시로 14시간 근무입니다.

이제부터 불평불만을 좀 해볼까요...

180만원 월급에 핸드폰요금이 4만원 지원됩니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서 택배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하루에 100개를 배송하면 80여개는 무조건 전화를 해야 합니다.

전화를 받고 용건만 간단히 해주시면 10초라도 전화를 끊게 되지만 열에 아홉은 질문을 해옵니다.

'어디서 온 택배죠?'

'택배 올게 없는데 누가 보낸거죠?'

'택배내용은 무엇이죠?' 등등...물론 물어볼 수도 있는 거지만 일단 택배기상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면 기본 1분의 통화가

발생 하게 됩니다.

그렇게 불어난 통화량은 제가 아무리 성질 내가며 전화를 빨리 끊어도 한달이면 추가 5만원정도는 더 나옵니다.

웃긴건 핸드폰요금 지원4만원이 따로 주는게 아니라 택배사에서 지급하는 휴대폰의 기본요금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또한, 오전 7시에 나와서 오후 9시에 집에 가게 되면 기본 한끼는 사먹게 되고 중간중간 배고픔을 달래려 이것저것 사먹게

되는데요. 담배를 안피는 저도 평균 만원은 쓰게됩니다.

나머지는 자잘한 사고들인데요. 단순 접촉, 기물 파손(가게앞 천막같은거) 등등 두어달에 한번정도는 꼭 일이 생기는 데요.

평균 3만원 잡으면 될듯하네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분실건들...혹시나 택배 하실 분들이 알아야 할 건데요.

택배는 일단 없어지면 무조건 택배기사 책임입니다. 어디 맡겨라, 집앞에 두고 가라 등등 일단 고객손에 쥐어주고 싸인 안받

은 물건이 없어질 시에는 일단은 택배기사에게 책임이 있다고 보셔야 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신경써서 배달해도

한달에 한두건 꼭 터집니다. 보통은 회사에서 고객과 잘 협의를 해서 피해보상액을 줄인 다음 정황상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회사에서 물어주지만 이것도 확실히 해놓지 않으면 회사 그만둘때 다 끄집어내 청구합니다. 저도 마지막 월급은 많이 깍였

습니다.

이래저래 따지면 실상은 180만원 급여지만 막상 집에 가져다 주는건 130정도라고 봅니다.

주 84시간 근무에 130만원이라니...제가 근무한 지역은 거진 산악지대라 그런지 무지 뛰어다녔는데요.

솔직히 지금은 허리 디스크 초기 진단받고 재활하며 쉬고 있습니다.

막상 지나고 나니 택배를 한걸 정말 후회하고 있습니다.

보람...그런건 꿈도 꾸지 마십시오.

하루에 150개를 배달해도 수고한다는 말한마디 못 들은 적이 허다합니다.

출발전에 몇시쯤 도착이라고 문자를 보내는데 10분만 지나도 전화기 불납니다.

제 구역엔 학생들 원룸이 많았는데 아예 전화도 안받고 학교 갔는지 집에도 없습니다.

거진 모든 학생들이 괜찮다며 집앞에 두고 가라는데 없어져서 몇번이나 물어주었습니다.

가장 싫었던건 전화를 하면 대부분 조금 불쾌한 듯이 전화를 받더군요. 택배가 전화해서 불쾌한게 아니라

기본 감정상태가 조금 불쾌한것 같았습니다.

이전에도 사람 상대하는 일만 쭈욱 해왔는데 택배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전투적인 상태였던 같습니다.

택배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생각해 보았는데

이 모든 악순환의 원인은 택배비 단가라고 봅니다.

배달하면서 보면 평균 택배비가 2,000원인데요.

회사마다 틀리겠지만 택배회사, 집하점, 배송점이 4대3.5대2.5의 비율로 가져가는 데요.

결국 산넘고 물넘어 배송하는 기사와 기사가 속한 대리점은 500원을 가져간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택배 단가가 싸니 직원에게 급여에 비해 너무 많은 일을 시키게 되구요.

택배기사의 불친절, 택배파손분실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겠죠.

 

물론, 시장이나 쇼핑몰등에서 전문적으로 집하만 하는 개인 지입 택배기사님들은 돈을 무지 벌고 계시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같은 경우가 극소수 일지라도 누구든 구직을 원하시는 분이라면 참고해 두시면

좋을 것 같아 어설픈 글솜씨로 적어보았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감사드리네요.

나름대로 글 적다보니 결론은 택배단가네요...다 못받은 급여는 그 탓으로 돌리고 그냥 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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