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내가 살던 산은 아름다웠다.
형형색색 생명의 색들이
색색대로 청순했고,
아스라이 흐느지던 낙엽들은
주황빛으로 순수했다.
삶들이 지나가고, 삶들이 메아리치고,
삶들의 호흡이 남아있던 곳.
소녀들의 은행잎깔 삶의 자취들이,
은행처럼 고된 냄새 속에
아름답게 흐느져 있었다.
창을 내다 보노라면,
아름답게 펼쳐진 광경이 있었고,
또 아름답게 펼쳐진 장면이 있었다.
어느새 장면은 나의 시각이 되고,
나의 추억이 되고, 나의 목표가 되었다.
인식이란 제한적이다.
제한적이다고 말하는 것 또한 제한 속의 것인데
정말 제한적일까.
삶들이 시작되고 삶들이 지나간다.
삶들의 자취가 남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정말 남는 것일까?
1초 전의 나와 현재의 나가 같은 나일까.
삶이란 무엇일까.
벤젠처럼 우리의 의식이 수많은 생명 속에
공존하는 가운데,
은행잎깔 자취처럼 이곳이 빛나는 게 아닐까.
어릴 적 엄마 손잡고 택시에 내려서
은행나무 가로수 은행잎 낙옆진 곳을
취나물 향 소리내며 걸었던 추억처럼.
나는 앞을 바라보고,
장면이 앞에 있고,
하이얀 십자가가 말없이 은은히 색을 퍼뜨리고 있다.
하얀 색은 어릴 적 명절날,
아빠가 운전하는 차타고 시골길 가다,
창문 사이 새어 들어오는
시원하고 정겨운 밤하늘 공기를,
장난스럽게 흐느져 있던 별들의 색이 아닐까.
아름답다. 아름답다고 느낀다.
아름답다고 느끼고 싶다.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까?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삶은 자취가 있다고 여기는 가운데,
이 시도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