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옆 테이블을 보니 어떤 지갑이 있었습니다.
"응? 누구거지? 내가 카운터에 들고 가져다줄까? 아니, 괜히 만져서 카운터로 갖다주다가
내가 돈이라도 뺀 걸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그냥 알바한테 말하자."
해서, 부근에 알바가 마침 빈 자리들을 치우러 왔을 때 오른쪽 빈자리에 지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알바가 아무 말도 한숨을 쉬면서 가져가는 겁니다.
보통의 알바라면, "네, 알겠습니다" 또는 "아, 감사합니다. 주인 찾아드리겠습니다."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잖습니까?
그런데, 평상시에도 이 알바가 마음에 안 들었었습니다. 인사도 안하고,
얼굴도 반반하게 생겼는데 말투나 행동거지나 표정에서 뭔가 불신감이나 거부감을 주는 타입 있잖습니까?
평상시에도 말도 잘 안하고 속으로 호박씨까고 불만 많을 타입들...
이러니, 웬지 불길하더라구요. 저는 설마 이 알바가 먹겠어 했습니다.
그랬는데, 저도 게임 그만하고 집에 가려는 찰나, 다른 자리에서 게임하던 고딩이
지갑을 찾는 겁니다. 알바한테도 가서 말하더라구요. 저는 겜에 열중하던 지라, 늦게 알아차리고
반응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 알바가 제가 아까 지갑을 줬으니 주인에게 돌려주겠다 싶어서
스스로 "내가 일 잘했네."하며 기분좋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고딩이 게속 우왕좌왕하면서 지갑을 찾으면서 알바한테 호소하더라구요.
그러더니 알바 대답이 지갑을 못 봤다는 겁니다. 저는 멀리서 살펴보고 있었는데요.
정말 황당하더군요. 그리고 그 고딩이 다시 제 옆자리로 와서 지갑을 찾으려 할 때
"아까 옆자리에 지갑있어서 알바한테 인계했다."라고 말해줬죠.
그런데, 저는 그 지갑을 자세히는 보지 못했지만, 대략 색깔과 두께는 봤었는데, 그 고딩이 말하는 것과 일치했습니다.
그 고딩이 "알바가 모르겠다고 하던데요? 누가요?"라고 하길래 그 알바를 제가 지목했죠.
"저쪽 알바." 그랬더니 그제서야 알바가 "아~" 하면서 자꾸 말 돌리더라구요.
그러다가, 알바가 알바 자신의 지갑으로 생각되는 것을 꺼내더니 "이 지갑요?" 하는 겁니다.
당연히 고딩은 자기 지갑이 아니니까 아니요라고 하죠. 고딩도 알바가 사기치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습니다.
정말 임기응변은 쩔더군요. 하지만, 저는 제가 괜히 나섰다가, 그 알바가 훔친 게 되거나,
다툼만 일어나고 하게 될까봐, 나서지 않고, 다시 그 고딩한테만 확실히 오른쪽에 지갑이 있었고
나는 손도 안대고 알바한테 인계했다라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면 알바가 알아서 지혜롭게 해결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상황만 하더라도 알바가 자신이 까먹었더라던가 하면서 지갑을 언제든 내줄수 있었으니까요.
만약 자기 가방 등에 들었더라면, 화장실 간다고 하고 빼 올 수도 있고 방법은 얼마든지 많았습니다.
카운터 안에는 손님이 볼 수가 없는 구조였거든요.
그리고는 후속 알바가 와서 기존 알바한테 인계받고 기존 알바는 가더라구요.
후속 알바가 "CCTV도 있고 다음날 아침에 사장님 오시면 확인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는 그 고딩도 다음날 아침에 사장이 있을 때 오기로 하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후속 알바한테 제가 본 모든 정황을 말했습니다.
후우... 웬지 제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아 그 고딩한테 미안하네요.
그리고 그 CCTV가 카운터에만 있고 제 옆자리는 비추지 못해서
만약 기존의 알바가 CCTV를 눈치채고 사각지대에서 감췄으면 못 찾게 될 텐데요...
저는 그 알바가 어리길래 실수도 할 수 있고 해서 제가 가만히 적당히 사실만 말해서 압박을 주면
"아, 맞다. 그 지갑 여깄어요!" 하면서 돌려준다라거나 하는 좋은 방식으로 해결할 것 같아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것인데요... 이거 참... 그 알바 자식, 들킬까봐 두려웠던 건지,
아니면 양심이 없는 건지... 제가 너무 착한 건지...
그리고 제가 가끔 자주 잠깐식 가는 피시방이라서 서로 얼굴 붉힐 일도 만들기 싫었거든요..
내일 그 피시방 한번 다시 들려볼 생각입니다.
이거 살면 살수록 행동거지나 인상이 그 사람 인성을 드러내는 것 같으니 씁쓸합니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된다고 하는데, 그 알바는 평상시에도
웬지 제게 거부감을 주더라구요. 저 같은 경우는 친구들한테 부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관용적인 성격인데 저한테도 그런 거부감을 주는 사람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본 모든 정황을 고딩이랑 후속 알바, 기존 알바가 있을 때 그대로 말했으니
제 할 일은 했다고 봅니다. 경찰 부르거나, 기존 알바가 도둑놈으로 낙인 안찍히고 좋게 해결되길 바라고
차분히 나섰던 것인데, 성격 강한 분들은 저를 비판하실 것 같네요.
집에 오는 길에 생각해봤더니 제가 지갑을 인계할 때 그 알바가 한숨을 내쉰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보통 그 피시방은 빈 자리는 바로바로 치우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지갑이 있다는 것은
이미 알바가 발견했을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아마도 몰래 그 지갑에서 돈만 빼고 지갑은 그대로 놔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옆자리에 제가 앉고 알바한테 인계했으니 알바 입장에서는 빼도 박지도 못하게 된 것이죠..